건설사 중동법인 망했는데 세금 5300억

해외 환경 고려 안한 국내 세법이 문제 키워

10년간 자본잠식에도 현지 법체계 없어 파산 못해
못 받는 대여금 2.3조에 이자 수입 간주 법인세 과세
국내 대형 건설회사가 중동 사업에서 조(兆) 단위 손실을 보고도 10여 년간 수천억원의 법인세 폭탄을 맞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세법상 자회사가 파산해야 손실 처리가 가능한데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에 파산 관련 법 체계가 사실상 마련돼 있지 않아서다.

1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GS건설, DL이앤씨, 한화건설, HD현대중공업 등은 중동 현지 법인과 관련해 최근 10여 년간 약 5300억원의 법인세를 납부했다. 이들 건설사가 현지 법인에 제공한 대여금 2조3000억원에서 이자 수입이 발생한 것으로 간주해 세무당국이 매년 22%의 법인세를 부과한 것이다.문제는 해당 현지 법인이 이자는커녕 원금도 돌려주지 못하는 사실상 파산 상태라는 점이다. 국내 건설사는 2010년을 전후해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플랜트 사업에 적극 뛰어들었지만 △과당 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 △현지인 의무고용제 강화로 인한 비용 상승 △유가 하락에 따른 추가 발주 감소로 대부분 손실을 냈다. 현지 법인들은 10년 넘게 자본잠식 상태지만 대부분 중동 국가에 사실상 파산법이 없어 청산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정부는 이 같은 사정을 알면서도 건설사들이 대여금에 대해 법정이자율 4.6%만큼의 이자 수익을 매년 올린 것으로 간주하고 법인세를 부과해 왔다. 건설사들은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제도 개선을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정 업계의 사정만으로 세법 체계를 흔들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윤석열 정부 들어 기업 애로를 적극 시정하기로 하면서 문제를 일부 해소하는 법안이 지난달 국회에 올라왔다. 하지만 건설사가 이미 납부한 세금은 돌려받지 못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특수한 현지 법 체계와 국내 세제가 충돌해 건설사들이 이중고를 겪어 왔다”며 “네옴시티 등으로 중동에서 제2의 건설붐이 예상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건설사들이 마음 놓고 수주전에 뛰어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원종환/노경목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