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기업은 봉건지주, 우리는 그들의 노예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그리스 재무장관 지냈던 야니스 바루파키스
빅테크가 만들어낸 ‘기술봉건주의’ 비판

온라인서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
“아마존, 시장처럼 보이지만 시장이 아냐”
Getty images bank
그리스는 지난 10여 년간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겪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중앙은행(ECB), 그리고 유럽연합(EU) 등으로부터 세 번의 구제금융을 받는 동안 그리스 정치권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야니스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는 가장 앞장서서 구제금융을 반대했던 인물이다.

진보 경제학자인 그는 ‘그리스 경제의 구원투수’로 기대를 모으며 재무부 장관에 취임했지만, 구제금융이 결정되자 반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그는 여러 책을 출간하면서 자본주의의 폐해와 모순을 거침없이 고발하고 있다. ‘1인 1표’를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와 ‘1원 1표’의 시장 자본주의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하며,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자본주의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영국에서 최근 바루파키스의 신간 <기술봉건주의(Technofeudalism)>가 인기를 끄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현상이다. 이번 책에서 저자는 “자본주의는 죽었다”고 선언하며, 빅테크기업의 소유주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 ‘봉건지주’가 됐는지 낱낱이 파헤친다. 금융 위기와 팬데믹의 여파로 투입된 막대한 공적자금이 모든 측면에서 빅테크기업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결국 그들의 뱃속을 불리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조명한다.
“자본주의의 두 기둥인 ‘시장과 이윤’은 빅테크기업의 ‘플랫폼과 임대료’로 대체되었고, 우리가 클릭과 스크롤을 할 때마다 자발적인 노예가 되어 봉건지주인 그들을 위해 일하는 꼴이 되어버렸다”라는 저자의 냉철한 지적은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섬뜩하다. 기술봉건주의는 이렇게 교묘하게 자본주의를 대체하고 있다.

“이런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당신이 갑자기 ‘아마존’이란 이름을 가진 마을로 순간이동을 합니다. 그 마을에서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습니다. 옷, 신발, 책, 노래, 게임, 그리고 영화를 사고파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알고 보니 물건을 파는 모든 상점과 모든 건물의 주인이 ‘제프(Jeff)’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더욱 희한한 점은 그 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이 각자 다른 거리를 걷게 되고, 서로 다른 상점을 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마을의 모든 것은 제프가 설계한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책은 전 세계인들이 가장 자주 찾는 아마존이 언뜻 보기에는 시장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절대 시장이 될 수 없다고 일갈한다. 아마존 주인 제프 베저스는 자본을 생산하지 않는다. 그는 그가 설계한 세계에 입점한 사람들에게 열심히 임대료를 청구하고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봉건주의이며,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기술봉건주의의 노예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열심히 올리는 게시물과 댓글을 통해 봉건사회 구축에 한몫하고 있다.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책을 통해 빅테크기업이 주도하는 혁명적인 변화가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노예로 만들고, 글로벌 권력의 규칙을 다시 쓰고 있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기술봉건주의를 전복하고 다시 진정한 자본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차분히 생각해볼 것을 제안한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