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 대표 "전통공연용 한복 만들기 30년…후대 위해 백서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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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전통공연 한복계의 샤넬.’ 맞춤 한복을 입고 공연하는 무용수 사이에서 옷짓는원은 이렇게 불린다. 무대 조명을 받았을 때의 색감까지 계산해 원단을 직접 염색하는가 하면 금박 장인을 찾아가 치마에 금박 문양을 입히고, 옷깃 동정 등 중요한 부분은 다 손바느질하는 등 그야말로 ‘명품’이기 때문이다.
'올해의 한복인 상' 받는 김지원 모리노리 대표
무대 조명까지 계산해 원단 염색
'전통공연 한복계의 샤넬'로 불려
실용적 일상한복 '모리노리'엔
자유로움과 한국적 '시크' 담아
옷짓는원은 김지원 대표가 1994년 내놓은 맞춤 한복 브랜드다. 전통무용, 창작극 등 무용가들을 위한 맞춤 한복을 주로 만든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한복, 국립무용단과 국립국악원의 공연용 한복, 청와대 국빈행사용 옷 등이 김 대표의 손을 거쳤다. 그는 20일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최하는 ‘2023 한복문화주간’ 기념행사에서 한복문화 확산과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의 한복인 상’을 받는다.서울 종로구에 있는 매장에서 만난 김 대표는 상을 받는 일에 기뻐할 겨를이 없어 보였다. 손과 입을 계속 움직이면서 직원들과 소통하며 한복을 지었고, 중간중간 걸려 오는 전화는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전화할게”로 응대했다. 매장을 방문할 무용수가 입어볼 옷을 빨리 완성해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상을 받는 건 감사한 일”이라면서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하루에 전화가 100통 넘게 온다”고 했다.
그는 모리노리 대표로서 한복인 상을 받는다. 2017년 첫선을 보인 모리노리는 ‘메멘토 모리+놀이(노리)’의 합성어로, ‘죽을 만큼 무언가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위한 옷’을 지향한다. 옷짓는원이 예술가를 위한 전통 맞춤 한복이라면 모리노리는 일상복 스타일의 현대 한복이다. 물빨래할 수 있는 소재 등 실용성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눈을 반쯤 감은 듯한 로고를 디자인한 것은 전통을 눈 크게 뜨고 직시하는 게 아니라 반쯤 감고 관조하자는 의미”라며 “시커먼 블랙이 아니라 달빛 어스름 내린 듯한 희끗한 블랙을 쓴 것도 블랙으로 가고 있는, 생명을 가진, 진행형인 색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모리노리는 한복을 약간 변형한 자진모리, 일상복으로 입기 편한 중중모리, 한국식 ‘시크’를 표현한 휘모리 등의 제품군으로 나뉜다.김 대표는 “옷짓는원이 한국적 철학을 담은 맞춤 전통 복식이라면 모리노리는 전통에 국한되지 않는 자유로움과 편안함”이라며 “최근엔 외국에 사는 한국인, 외국인 등이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건수가 늘고 있다”고 했다. 모리노리는 기성복을 지향하지만 소비자가 원하면 5만원가량 추가해 맞춤복으로도 입을 수 있다. 옷을 대량 생산하거나 매장을 빠르게 늘릴 수 없는 이유다.한복을 전공한 건 아니다. 대학 때 전공은 한국무용. 어릴 때부터 무용에 관심이 많다보니 공연을 많이 봤고, 키가 작은 탓에 대학 1학년 때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김 대표는 “2학년 때부터 방학 때마다 동대문 선미한복학원을 다녔고 국제복장학원, 궁중복식연구원 등 배울 수 있는 곳마다 찾아갔다”며 “1994년 대학 졸업하고 그 해 4월에 매장을 열었는데 친구들 졸업발표회용 옷을 만드는 등 지인들이 일거리를 물어다줬다”고 회고했다.
학사 전공은 아니었지만 석사, 박사 학위는 모두 한복 논문으로 받았다. 김 대표는 “공연들이 다 취소됐던 메르스 위기 때 석사를, 세월호 위기 때 박사를 받았다”며 “석사는 성균관대에서 무형문화재인 이매방 선생님의 승무, 살풀이용 의상에 대한 논문으로 받았고 박사는 홍대 미대에서 진도 축제식 상장례의 복식에 대한 논문으로 취득했다”고 했다.전통과 현대, 옛 세대와 현 세대 간의 ‘소통’이 모리노리의 중요한 키워드다. 김 대표는 “한복을 젊은층이 가깝게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고 했다. 그래서 모리노리의 제품 하위 카테고리를 ‘입을 만한 웃도리’, ‘변변한 아랫도리’, ‘어디갈 때 걸릴 거리’, ‘가볍게 두를 거리’ 등 재미나게 지었다.
그는 한 번도 중장기 목표 같은 걸 세워본 적이 없다. 하루하루 그날의 목표를 위해 바쁘게 살았다. “어릴 때 골수암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라고도 했다. 김 대표는 “내년이 한복한 지 30년 되는 해인데 구체적 목표를 세우진 않았지만 내가 (한복 만들고 싶어하는) 누군가의 꿈이 되어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작업물 사진과 옷의 이름, 특징 등을 한데 묶어 ‘전통 공연용 한복 백서’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한 것도 그래서다. 김 대표는 “후대에 전통 한복과 전통 공연, 공연용 의상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책이 없다는 건 우리 문화 계승에 있어 큰 문제”라며 “내 머릿속에 있는 작업물을 총정리하는 일을 곧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