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화폐는 쓰레기"라는데도…아르헨 대선 후보 '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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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화폐는 비료로도 못 쓰는 쓰레기다. 미국 달러화로 대체해야 한다."
"중앙은행은 지구상 존재하는 최악의 쓰레기다. 없애버려야 한다."
TV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과격주의자의 대사가 아니다. 아르헨티나의 유력 차기 대통령 후보의 실제 발언들이다. 지난 8월 대통령 예비선거 1위에 오른 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줄곧 선두를 달리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트럼프' 하비에르 밀레이(52세)가 그 주인공이다. 밀레이는 오는 22일 대선 본선 1차 투표를 통과해 1·2위 후보들이 진출하는 결선투표에 진출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로 꼽힌다.파이낸셜타임스(FT)는 18일(현지시간) "풍부한 천연자원으로 축복받은 국가임에도 수십년 간 이어진 잘못된 경제 정책들로 인해 저주받은 아르헨티나에서 '자유주의자' 밀레이가 던지는 메시지들은 분명 호소력이 있다"고 보도했다. 밀레이의 선거 유세장에 참석한 31세 카트리나 트론카는 "지난 10년 동안 투표를 한 적이 없다"며 "그동안 대선에 나온 후보들을 보면 쿨한 멍청이(shit)냐 뜨거운 멍청이냐의 선택 같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멍청이가 아닌 후보가 나왔다. 바로 밀레이다"고 강조했다.아르헨티나는 남미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좌파 국가로 불린다. 국가 재정을 늘려 각종 사회보장성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큰 정부를 표방한다는 점에서다. 여기에 더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원조로 꼽히는 페론주의로 유명한 국가이기도 하다. 페론주의는 20세기 대중 영합적 경제사회 공약들을 내걸어 두 차례 집권에 성공한 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의 정책 노선을 일컫는 말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6위에 오를 만큼 경제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이후 페론주의 유산에 갇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페소화를 과도하게 발행해 왔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는 수십 년 동안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전년 9월 대비 138.3%를 찍었다.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세 자릿 수에 달하다 보니 페소화 수요는 자취를 감춰버렸고, 외환보유액은 80억달러 이상 적자 상태다.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초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한번에 15%포인트 인상해 연133%까지 올렸다. 과도한 정부 부채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8월엔 국제통화기금(IMF)에 빌린 차관의 상환일이 임박했지만, 갚을 능력이 없어 허덕이다 중국 위안화와 통화 스와프를 맺어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일시 모면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경제난과 생활고에 아르헨티나 인구 10명 중 4명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퍼주기 정책을 근절해 국가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나선 밀레이의 등장에 아르헨티나 유권자들은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페소화를 퇴출하고 대신 달러화를 도입하겠다는 그의 공약은 최근 암시장에서 달러당 페소화 가치가 1000페소를 돌파하게 만드는 등 외환시장을 패닉에 빠지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기성 정치권을 "도둑"이라고 비난하며 "전부 갈아엎겠다"는 그의 외침에 유권자들은 열렬한 지지로 화답하고 있다는 게 FT의 평가다.일각에서는 밀레이의 정치 이력이 일천하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20년 이상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다 HSBC 이코노미스트를 거친 뒤 현재 초선 의원 신분이다. 또 밀레이가 내건 공약에 모순이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앙은행과 일부 정부 부처들을 폐쇄해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달하는 공공 지출을 삭감하겠다"면서도 "해당 공무원들을 해고하는 게 아니라 다른 분야로 재배치하겠다"고 공언한 게 대표적이다. 밀레이의 인기에 위기를 느낀 현 정부는 "정부가 보조금 등 지급을 중단하면 유권자들의 삶은 팍팍해질 것"이라며 맞대응을 펼치고 있다. 페론주의를 따르는 집권여당 '나라를 위한 연합'에서는 세르히오 마사 현 경제부 장관을 대선 후보로 내세웠다. 그는 8월 예비선거에서 득표율 3위(27.2%)에 그쳤다. 이날 아르헨티나 정부와 마사 장관은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한 또 다른 방책으로 '중국 자본'을 다시 내세웠다. IMF 구제금융 상환 자금을 대기 위해 중국과의 통화 스와프를 확대해 65억달러를 빌리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중앙은행은 지구상 존재하는 최악의 쓰레기다. 없애버려야 한다."
TV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과격주의자의 대사가 아니다. 아르헨티나의 유력 차기 대통령 후보의 실제 발언들이다. 지난 8월 대통령 예비선거 1위에 오른 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줄곧 선두를 달리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트럼프' 하비에르 밀레이(52세)가 그 주인공이다. 밀레이는 오는 22일 대선 본선 1차 투표를 통과해 1·2위 후보들이 진출하는 결선투표에 진출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로 꼽힌다.파이낸셜타임스(FT)는 18일(현지시간) "풍부한 천연자원으로 축복받은 국가임에도 수십년 간 이어진 잘못된 경제 정책들로 인해 저주받은 아르헨티나에서 '자유주의자' 밀레이가 던지는 메시지들은 분명 호소력이 있다"고 보도했다. 밀레이의 선거 유세장에 참석한 31세 카트리나 트론카는 "지난 10년 동안 투표를 한 적이 없다"며 "그동안 대선에 나온 후보들을 보면 쿨한 멍청이(shit)냐 뜨거운 멍청이냐의 선택 같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멍청이가 아닌 후보가 나왔다. 바로 밀레이다"고 강조했다.아르헨티나는 남미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좌파 국가로 불린다. 국가 재정을 늘려 각종 사회보장성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큰 정부를 표방한다는 점에서다. 여기에 더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원조로 꼽히는 페론주의로 유명한 국가이기도 하다. 페론주의는 20세기 대중 영합적 경제사회 공약들을 내걸어 두 차례 집권에 성공한 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의 정책 노선을 일컫는 말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6위에 오를 만큼 경제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이후 페론주의 유산에 갇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페소화를 과도하게 발행해 왔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는 수십 년 동안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전년 9월 대비 138.3%를 찍었다.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세 자릿 수에 달하다 보니 페소화 수요는 자취를 감춰버렸고, 외환보유액은 80억달러 이상 적자 상태다.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초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한번에 15%포인트 인상해 연133%까지 올렸다. 과도한 정부 부채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8월엔 국제통화기금(IMF)에 빌린 차관의 상환일이 임박했지만, 갚을 능력이 없어 허덕이다 중국 위안화와 통화 스와프를 맺어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일시 모면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경제난과 생활고에 아르헨티나 인구 10명 중 4명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퍼주기 정책을 근절해 국가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나선 밀레이의 등장에 아르헨티나 유권자들은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페소화를 퇴출하고 대신 달러화를 도입하겠다는 그의 공약은 최근 암시장에서 달러당 페소화 가치가 1000페소를 돌파하게 만드는 등 외환시장을 패닉에 빠지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기성 정치권을 "도둑"이라고 비난하며 "전부 갈아엎겠다"는 그의 외침에 유권자들은 열렬한 지지로 화답하고 있다는 게 FT의 평가다.일각에서는 밀레이의 정치 이력이 일천하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20년 이상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다 HSBC 이코노미스트를 거친 뒤 현재 초선 의원 신분이다. 또 밀레이가 내건 공약에 모순이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앙은행과 일부 정부 부처들을 폐쇄해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달하는 공공 지출을 삭감하겠다"면서도 "해당 공무원들을 해고하는 게 아니라 다른 분야로 재배치하겠다"고 공언한 게 대표적이다. 밀레이의 인기에 위기를 느낀 현 정부는 "정부가 보조금 등 지급을 중단하면 유권자들의 삶은 팍팍해질 것"이라며 맞대응을 펼치고 있다. 페론주의를 따르는 집권여당 '나라를 위한 연합'에서는 세르히오 마사 현 경제부 장관을 대선 후보로 내세웠다. 그는 8월 예비선거에서 득표율 3위(27.2%)에 그쳤다. 이날 아르헨티나 정부와 마사 장관은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한 또 다른 방책으로 '중국 자본'을 다시 내세웠다. IMF 구제금융 상환 자금을 대기 위해 중국과의 통화 스와프를 확대해 65억달러를 빌리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