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에 와도 700번대"…여의도로 몰린 '줄서기 민족' [돈앤톡]

메이플스토리 팝업부터 파이브가이즈 개점까지
여의도 지하도로 몰려든 사람들
"덕분에 트렌드 알고 갑니다" 여의도 직장인들도 반색
최근 진행된 메이플스토리 팝업스토어의 대기줄. 사진=제보자 제공 (네이버 블로그 bluene5mi)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거의 매일 기다란 대기줄을 봐요. 이젠 안 보이면 서운하더라고요. '동태 눈'을 하고 회사로 바삐 향하다가도 대기 중인 사람들의 또렷한 눈빛을 보면서 정신을 차리기도 해요."

최근 만난 IFC 오피스 내 금융사의 직원이 한 말입니다. 서울 지하철 여의도역 지하 무빙워크로 약 500m를 걸으면 '더 현대 서울' 지하 2층 매장입구와 이어지는데요. 평일 아침 7시 정도가 되면 이 무빙워크를 기준 삼아 한쪽엔 출근 줄이, 다른 한쪽엔 더 현대 입장줄이 만들어집니다. 조급하게 돌아가는 여의도 지하 한복판에서 '역대급 인내'를 요구하는 대기 줄이 늘어서다니, 낯선 풍경임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이곳 직장인들은 젊어지는 여의도 모습이 싫지만은 않다는 표정입니다.여의도는 사람들에게 더는 딱딱하고 재미없는 동네가 아닙니다. 평일 오후 5시만 넘어도 쥐죽은 듯 조용해진다는 얘긴 옛말이 됐죠.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지하도를 채우는 사람들이 '여의도의 변신'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줄 서기'의 성지가 된 여의도 지하보도는 당초 직장인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서울지하철 5·9호선 여의도역에서 IFC몰과 더 현대로 이어지게끔 한 것입니다. 특히 팝업스토어 등 줄 서기 문화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더 현대(파크원)와의 연결은 2018년 5월부터 2021년 1월까지 3년여 시간이 걸렸습니다. 여의도역과 IFC몰만 잇던 기존 지하보도를 파크원 준공 시기에 맞춰 수백미터 더 연장한 것이죠.
지난 8월 초까지 진행된 빵빵이 팝업스토어 대기줄. 사진=최윤서씨 제보
하지만 최근 몇년 사이 지하도 활용 범위는 단순 보행자 편의를 넘어섰습니다. 최근 여의도동에 2호점을 연 미국 햄버거 프랜차이즈 '파이브가이즈'의 경우 오전 6시부터 지하 연결통로에서 선착순 100명을 접수 받고 있습니다. 개점일엔 두 시간도 안 돼 현장 접수가 끝났죠. 유명 햄버거를 맛보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집을 나선 겁니다.지난 15일까지 엿새간 더 현대에서 열린 '메이플스토리' 팝업스토어도 지하도에서 아침 일찍부터현장 대기를 받았죠. '역대급 대기줄'로 회자되는 것은 지난 8월 초까지 진행된 캐릭터 '빵빵이' 팝업스토어인데요. 지하도에 오전 6시에 도착해도 700번대 대기번호를 받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곳을 매일 걷는 여의도 직장인들은 이런 변화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요.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이들 '불청객'을 내심 반가워하고 있었습니다. 일렬로 죽 늘어서기 때문에 출퇴근에 방해도 안 될 뿐더러 이들 덕에 요즘 감성을 배우기도 한다는 겁니다.

IFC에 입주해 있는 자산운용사의 한 직원은 "이른 아침부터 정장 입고 출근하다보니 편한 차림의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으면 무슨 행사라도 열린 건가 궁금증부터 생긴다"며 "여의도로 출근하는 한 트렌드는 놓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IFC 오피스 내 다른 운용사의 한 주식운용 담당 임원은 "여의도는 지라시의 대표적 생산지일 정도로 정보에 예민하지 않느냐"며 "트렌드와 직결되는 업인 만큼 유행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때문에 출퇴근하는 길이 예전보단 재밌어졌다"고 밝혔습니다. 인근 증권사 한 직원도 "솔직히 특정 브랜드나 캐릭터 때문에 무한정 대기하는 게 이해되진 않는다"면서도 "무언가에 꽂힌 열정이 부럽기도 하고 때론 자극도 된다"고 전했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