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는 잡았는데 문제는 전쟁·유가…美 긴축 장기화 불가피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추가 긴축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고금리 장기화'에 대한 시장의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급등한 유가가 인플레이션을 재차 자극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19일(현지시간) 파월 의장은 뉴욕 이코노미 클럽이 주최한 행사에서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대 물가로 떨어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현재 연준의 통화 정책이 충분히 긴축적이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파월 의장의 매파적 발언에 채권 시장은 요동쳤다. 이날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오후 한 때 5%를 웃돌았다. 10년물 금리가 5%대를 넘어선건 2007년 7월 이후 16년 만이었다. 10년물 금리는 4거래일 연속 올라 10월에만 4bp 넘게 상승했다.

인플레의 발목을 잡는 요인은 소비보다는 원유 같은 원자재 가격 급등에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재 미국의 민간 소비지표는 크게 둔화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중에서 에너지와 식료품을 뺀 근원 CPI의 상승세는 4% 초반까지 꺾였다.

여기에 10월부터는 코로나19로 유예됐던 학자금 대출 상환까지 정상화되며 개인의 소비 여력은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뉴욕 연은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 상환으로 줄어드는 소비 여력은 매달 56달러 정도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울러 2분기 미국의 신용카드 연체액은 사상 처음으로 1조 달러를 넘어섰고, 신용카드 부채 역시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30% 가까이 높아지는 등 민간 소비 여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선 향후 긴축의 향방이 유가와 중동지역 분쟁에 달려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이 본격화되며 배럴달 70달러 수준을 오가던 유가는 90달러 선까지 올라선 상황이다.

여기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규모 지원 예고도 금융 시장에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바이든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전쟁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긴급 안보 예산을 의회에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이 요청할 예산은 이스라엘 지원에 140억달러, 우크라이나 지원에 600억달러 등 1천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른바 ‘전례 없는 규모’의 지원 정책이 언급되자 국채 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대규모 자금 조달을 위해선 국채 발행량을 늘릴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결국 금리를 높이고 채권 가격의 추가 하락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5%까지 상승한 상황은 충분히 매력적인 부분"이라면서도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만큼 섣부르게 매수로 접근하기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전효성 기자 z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