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MO Day 1] 면역항암제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면역항암제는 점점 더 포화되고 있습니다.(The IO landscape is becoming increasingly crowded)”

세계 3대 암학회인 유럽종양학회(ESMO)의 개막 첫날인 지난 20일(현지시간). 노에미 리가드 스페인 바르셀로나클리닉 종양전문의는 발 디딜 곳 없이 가득 찬 지하철 승강장 사진을 공유하며 이같이 밝혔다. 사진 안에는 가장 먼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시장에 나온 펨브롤리주맙(제품명 키트루다)부터 니볼루맙(옵디보)을 비롯해 아직 승인받지 못한 면역항암제까지 빼곡했다. 청중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거나, 박수를 쳤다. ‘ESMO 2023’은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다다른 면역항암제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한 자리였다.

유럽종양학회(ESMO)가 열린 첫날인 20일에는 더 나은 항암치료 효과를 얻기 위해 키트루다를 비롯한 면역관문억제제를 전에 없던 병용, 새로운 투여방법으로 이용한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대거 공유됐다. 성공사례도, 실패사례도 가감없이 함께 발표됐다. 자연스럽게 연사와 청중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됐다.
노에미 리가드 스페인 바르셀로나클리닉 종양전문의가 20일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면역관문억제제의 포화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우상 기자

HER2 양성 환자 대상 허셉틴과 키트루다 병용임상 첫 중간결과 공개

미국 메모리얼슬로언케터링암센터 소속 옐레나 잔지기안 암전문의는 HER2 양성 위암 및 위식도접합부(GEJ) 암 환자를 대상으로 트라스트주맙(허셉틴)과 키트루다를 1차 치료제로 함께 투여한 임상 3상 시험 ‘KEYNOTE-811’의 중간결과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키트루다·허셉틴 병용요법은 객관적반응률(ORR)을 근거로 이 적응증에서 202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속승인을 받았다. HER2 양성 위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HER2 억제제(허셉틴)와 항PD-1 면역관문억제제(키트루다)의 병용의 대규모 결과는 이전까지 알려졌던 바가 없어 현장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전 세계 20개국 168개 병원에서 환자 698명을 대상으로 한 결과였다.결론부터 말하면 임상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mPFS) 분석에서 키트루다·허셉틴 병용군은 10개월, 키트루다 없이 허셉틴만 투약한 대조군은 8.1개월로 나타났다(위험비(HR) 0.72). 전체 생존 중앙값(mOS)는 20개월 대 16.8개월이었다(HR 0.87).

PD-L1 발현률이 높아 키트루다가 더 잘 듣는 CPS 점수가 1점 이상인 환자들에게선 더 나은 효과가 나타났다. CPS 1점 이상 환자군에서 mPFS는 10.9개월 대 7.3개월, mOS는 20개월 대 15.7개월로 차이가 더 벌어졌다.

심각한 치료 관련 부작용(TRAE) 비율은 각각 26%와 23%였다.잔지기안 박사는 “허셉틴과 화학요법을 사용하는 1차 치료에 키트루다를 추가하면 특히 종양에서 HER2와 PD-L1의 이중 과발현이 있는 환자의 경우 PFS와 전체 반응률(ORR)이 의미 있게 개선됐다”고 밝혔다.

KEYNOTE-811은 전체 생존기간에 대한 분석 연구가 진행 중에 있다.
스페인 현지 시간 20~24일 마드리드에서 세계 3대 암학회라 불리는 유럽종양학회 2023이 열렸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연 부스에서 인파가 붐비고 있다. 이우상 기자

PD-1 후발주자 ‘젬펄리’의 도전장

후발주자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면역관문억제제 ‘젬펄리(도스탈리맙)’는 키트루다가 장악하고 있는 주요 적응증을 피하는 전략으로 FDA의 승인을 받아 출시됐다. 현재 젬펄리는 재발성 및 진행성 유전자복구결핍(dMMR) 자궁내막암 치료 목적으로 승인됐다.

우선 젬펄리를 시장에 출시한 GSK는 키트루다와의 직접비교 임상을 통해 키트루다가 보유한 적응증을 하나둘씩 공략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날 데이터가 공개된 임상 2상 ‘PERLA’는 비편평 비소세포폐암(NSCLC) 환자를 대상으로 한 키트루다와의 비교 시험이었다. 비소세포폐암은 키트루다의 ‘안마당’으로 꼽히는 적응증이다.

연사로는 슬로언지 피터 스위스 로잔대병원 종양학과 교수가 나섰다. PERLA는 비편평 NSCLC 환자 243명을 1대1로 두 개 그룹으로 나눈 뒤 젬펄리와 화학요법, 키트루다와 화학요법을 직접 비교하도록 설계된 임상이었다.

그 결과, 젬펄리와 화학항암제 병용요법은 키트루다·화학항암제 병용요법 대비 나은 효과를 보였다. 1차 평가지표였던 ORR은 46% 대 37%였다. 2차 평가지표 mPFS 또한 8.8개월 대 6.7개월로 젬펄리 병용요법 쪽이 더 우수했다. 전체 생존기간(mOS) 또한 19.4개월 대 15.9개월로 젬펄리 병용요법이 앞섰다(HR 0.75). 하지만 아직 미성숙한 데이터여서 OS 분석은 더 두고봐야 한다.

PD-L1 발현율에 따라 두 약의 효과가 달라지는 것도 ‘관전 포인트’였다. 일반적으로 PD-1 면역관문억제제가 잘 듣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TPS 1% 미만 환자에서는 키트루다·화학요법이 ORR 33%를 보여 젬펄리·화학요법 28% 대비 우위였다.

하지만 TPS가 높아질수록 다른 결과가 나왔다. TPS 1~49%에서는 ORR이 50%대 34%로 젬펄리·화학요법이 우세했다. TPS 50% 이상 환자에서는 74% 대 48%로 젬펄리·화학요법 크게 앞섰다. TPS 50% 이상 환자군에서 mPFS 또한 10.4개월 대 6.7개월로 젬펄리 군이 반응률 만큼 더 좋은 효능을 보였다.

양 치료군의 치료 후 이상반응(TRAE)는 서로 비슷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젬펄리의 ‘완승’.

하지만 피터 교수의 발표가 끝난 후 ‘바통’을 넘겨받아 연단에 오른 노에미 리가드 스페인 바르셀로나클리닉 종양전문의는 앞서 발표된 임상 결과를 리뷰하며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키트루다·화학요법이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로 승인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KEYNOTE-189’ 결과에 비해 키트루다 쪽 효능 데이터가 상대적으로 미진하다는 지적이다. KEYNOTE-189에서 키트루다·화학요법의 mOS는 22개월이었다(이번 PERLA에선 15.9개월).

리가드 박사는 예상되는 원인 중 하나로 환자군의 TPS 차이를 꼽았다. KEYNOTE-189에선 TPS 1% 미만 환자와 1~49% 환자, 50% 이상 환자가 각 31~32%로 고르게 분배된 반면, 이번 PERLA 임상에선 41%(<1%), 36%(1~49%), 22%(≥50%) 으로 각기 다르게 분배됐다. TPS % 차이에 따른 두 약물의 효능 차이가 효능 평가 결과를 가르지 않았냐는 지적이다.

애매한 결과, 또는 실패의 기록

성공을 논하기엔 이른 임상 결과도 가감없이 공유됐다. 고헤이 시타라 일본 동부 국립암센터 위장종양학과장은 이날 키트루다를 위암 및 위식도암 수술 전 항암요법으로 사용한 임상 3상 시험 KEYNOTE-585의 결과를 공개했다. 앞서 전신 치료를 받은 경험이 없는 환자 804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이었다.

환자군을 둘로 나눠 한쪽엔 키트루다와 화학항암제를, 다른 한쪽엔 위약과 화학항암제를 처방했다. 현재 위암 수술 전 항암요법는 FLOT(이라고 부르는 조합의 화학요법이 쓰이고 있다. 치료 후 암의 재발하거나 악화되기 전까지의 기간을 평가하는 무사건생존률 중간값(mEFS)에서 키트루다·화학요법 군은 44.4개월로 화학요법 단독 25.3개월 대비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HR 0.81).

문제는 전체 생존기간이었다. 수술 전 어떤 치료를 받았든 생존기간에선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HR 0.90). 키트루다를 함께 투약했음에도 수술 후 환자의 생존기간을 늘리는 데 실패한 것이다.

수술 전 항암요법으로 임핀지(더발루맙)을 사용한 임상 3상 ‘MATTERHORN’에서도 다소 아쉬운 결과가 나왔다. MATTERHORN은 절제 가능한 위암 및 위식도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면역항암제(임핀지)를 화학요법과 병용한 임상으로 앞선 KEYNOTE-585와 유사한 설계의 임상이다.

발표자로 나선 살라 에딘 알바트란 독일 UCT대 암센터 임상연구소장은 임핀지와 화학요법을 함께 투여한 환자군에서 병리학적인 완전관해(pCR)이 나타난 환자 비율이 크게 높았다고 밝혔다. 임상연구에 참여한 조사자들 평가 결과 pCR 비율이 22%대 8%였다. CR에 근접한 유사 CR(near complete pathological response)까지 포함하면 27%대 14%였다. 1차 평가지표는 EFS로 아직 데이터가 분석할 만큼 성숙되지 않았다.

이어 강연자로 오른 엘리자베스 스미스 영국 캠브리지 대학병원 박사는 MATTERHORN에서 수술 전 항암요법으로 쓰인 화학항암제의 효능이 앞서 진행된 다른 임상 연구 대비 낮게 평가됐음을 지적했다. pCR이 15%로 나온 다른 사전 연구들이 여럿 있다고 덧붙였다. 앞선 결과와 비교하면 임핀지를 더한 병용요법의 임상적 이득이 화학요법 단독 대비 크게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스미스 박사는 KEYNOTE-585에 대해선 환자 코호트를 세분화해 살피며 면역항암제가 잘 듣는 특성의 환자일수록 더 나은 결과가 나온 점도 확인했다.

그는 두 임상시험 결과에 대해 “면역항암제를 함께 썼을 때 pCR이 개선된다는 점은 양쪽 모두에서 확인됐다”면서도 “진행성 암 환자만을 대상으로 해 화학요법 결과가 이전 시험에 비해 낮은 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술전 항암요법으로서의 면역항암제가 미세종양을 없애고 면역세포를 불러모으는 효과가 있지만 약이 잘 듣는 ‘핫튜머’에서만 효과가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마드리드=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이 기사는 2023년 10월 22일 10시 37분 <한경 바이오인사이트> 온라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