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올라도 휘발유가는 급락…전쟁중 묘한 기름값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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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 무풍지대' 미국발 폐해 / 美증시 주간전망중동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전선이 하마스 뿐 아니라 헤즈볼라와 이란으로 까지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서방 국가들과 아랍 국가들 간 반목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커지는 지정학적 리스크…파월의 판단은
미국 GDP 쇼크?…유럽 긴축 중단은 호재일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까지 두 개의 전쟁을 감내하면서 곳곳에서 신음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긴축 장기화와 인플레이션 고착화는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자산 시장에선 고금리, 고유가, 고환율이라는 '3중고'가 재현되고 있습니다. 늘 그렇듯 고통은 공정하거나 평등하지 않습니다. 전쟁의 폐해를 직격탄으로 맞는 곳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무풍지대도 있습니다.
불평등한 전쟁 후폭풍을 중심으로 이번주 주요 일정과 이슈를 살펴보겠습니다.
국제유가 오르는데 미국 휘발유가는 급락
지난달부터 국제유가는 급등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 연장과 수요 증가 탓입니다. 그러다 너무 오른 피로감에 이달 초 잠깐 급락하다 다시 급등세로 전환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충돌이 유가 흐름을 바꾼 주인공입니다.무력 충돌이 있은 지 2주가 지난 뒤 국제유가는 계속 올랐습니다. 하지만 미국 기름값은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물론 같은 기간 한국 기름값도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하락폭은 L당 1795원에서 1775원으로 1.1% 가량입니다.이에 비해 미국 기름값의 하락폭은 2주 간 5%가 넘습니다. 한 달 간격으로 보면 그 차이는 더 극명해집니다. 미국 기름값은 한 달 간 8.5%나 떨어졌습니다. 한국 기름값은 소폭 상승하거나 거의 변동이 없었습니다.
커진 텍사스의 힘…떨어진 헤지펀드 약발
미국 기름값이 이렇게 많이 떨어진 건 왜일까요. 우선 기름값의 기준이 남다르기 때문입니다. 미국 내 휘발유 소매가격을 좌우하는 국제유가는 서부텍사스산(WTI) 원유입니다. WTI는 중동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을 가장 덜 받습니다. 반면 두바이유는 중동 정세에 취약하고 북해산브렌트유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결론적으로 유종만 놓고 보자면 미국이 지정학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곳입니다. 텍사스만 주변에서 많은 기름을 조달받기 때문에 기름을 쓰는 미국 소비자들이 전쟁 영향을 가장 덜 받는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미국 언론들은 헤지펀드 얘기를 많이 합니다. 국제원유를 비롯한 상품 시장만큼 투기적 수요가 강한 곳이 없습니다. 현물이 아니라 선물 시장이 크기 때문에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왝더독' 현상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동안 헤지펀드들은 원유선물을 마구 사들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 매수 포지션을 취할만한 여력이 없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와 러시아의 감산 이후 헤지펀드들의 매수세가 극에 달해 전쟁이 나도 더 이상 매수할 만한 자금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겨울 전쟁에 강한 미국
계절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전통적으로 늦가을부터 미국은 기름 소비 비수기입니다. 추워져서 사람들이 덜 돌아다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나 인도에 비해 인구는 적어도 미국인들의 차량 이동거리는 세계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3억5000만명 인구가 하루에 10㎞만 덜 움직여도 아끼는 휘발유량이 어마어마합니다.이런 계절적 요인 때문에 10월부터 미국 기름 소비량은 줄어듭니다. 겨울로 갈수록 휘발유보다는 난방유 소비량이 늘어납니다.
미국 정부의 강력한 인플레 통제책도 영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민들은 그 어느 나라 국민보다 기름값에 민감합니다. 대도시를 빼고 대중교통망이 취약해 자가용이 제 1의 이동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기름값에 미국 정부의 입김이 약해질 때엔 미국 정부는 전략 비축유도 방출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원유 수입선도 다변화돼있습니다. 미국의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이자 1위 원유 수입국입니다. 텍사스산원유 외에 새로운 곳에서 기름을 조달할 수 있는 메이저 정유사들이 즐비해 있습니다. 내년이면 신흥 산유국들의 원유 공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란과 베네수엘라, 가이아나 등이 대표적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우디와 러시아의 감산 약발이 약해질 전망입니다.
이런 유리한 조건에 있기 때문에 미국의 평균 기름값은 세계에서 최상위권입니다. 한국은 중간 정도 순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강달러 고금리는 미국의 소원?
유가만 오르고 있는 게 아닙니다. 미 국채금리는 2006년 이래 최고치를 날마다 경신하고 있습니다. 달러 가치도 연일 상승하고 있습니다.많은 나라들은 고유가보다 고금리와 고환율에 더 취약합니다. 세계적 흐름에서 이탈하기 쉽지 않아 각국 정부가 손 쓸 방도가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변동금리에 변동환율제를 택해 금리와 달러가치 변동에 일희일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어떻습니까. 미 국채금리가 올라도 정작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가장 많은 돈을 지출하는 모기지 금리는 30년 고정금리이기 때문입니다. 금리 상승 리스크는 지역은행 같은 리스크 관리가 취약한 일부 금융사만 지고 있습니다.
달러 가치가 오를수록 미국민들은 더 즐겁습니다. 소비 지향적이고 세계 최대 수입국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는 "해외 여행하기 좋다"거나 "해외에 나가면 가격이 너무 싸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리스크는 있다
그렇다고 미국인들이 영원히 전쟁 무풍지대에서 살 수 있을까요.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원유 생산과 관련성이 떨어지지만 이란이나 주변국으로 전장이 확대되면 미국 내 기름값도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텍사스산 원유가 중심이라도 두바이유 생산이 줄면 연쇄적으로 텍사스산 원유로 수요가 몰릴 가능성이 큽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두 개의 전쟁을 치를만큼 미국은 강하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 과연 그럴까요. 두 개의 전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의회에 1000억달러(약 135조원)를 요청했는데 공화당 내분으로 '식물의회'가 된 미 하원이 순순히 내줄까요. 모기지 금리는 30년 고정금리지만 자동차 대출 같은 다른 대출은 변동금리입니다. 금리가 오른 만큼 이자도 늘고 이는 소비여력 감소로 이어집니다.
미국은 가계보다 기업과 정부가 더 문제입니다. 특히 정부는 국채금리가 오르면 이자부담이 눈덩이처럼 늘어납니다. 이런 취약한 구조 때문에 미 국채금리는 더 오르고 있습니다.
미국의 고성장…유럽의 저성장
이미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으로 6000명이 사망하고 2만명 가량이 다쳤습니다. 이란과 헤즈볼라도 참전할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상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고 있습니다.이런 상황 때문에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도 최근 들어 지정학적 리스크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이번주에도 전쟁 상황에 따라 금리와 유가, 환율이 춤을 출 예정입니다. 덩달아 뉴욕증시도 요동칠 전망입니다. 살얼음판인 금융환경에 대해 파월 의장은 어떻게 평가할까요. 25일 오후에 미국 워싱턴DC 한 행사에서 연설을 합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지만 미국 경제는 여전히 강합니다.
26일 발표되는 미국의 3분기 성장률은 탄탄한 미국 경제를 잘 보여줄 전망입니다. 3분기 미국의 실질 GDP 증가율은 전 분기대비 4.2%(연율 기준)로 시장에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애틀랜타 연방은행의 실시간 GDP 전망치 집계 플랫폼인 'GDP나우'는 무려 5.4%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 수치에 근접한다면 2분기(2.1%)보다 미국의 3분기 성장률은 두 배 이상으로 커집니다. 긴축 장기화를 더욱 굳어지게 만들 지표입니다.
미국 외에 대부분의 나라가 그런 것처럼 유럽 경제도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유럽중앙은행(ECB)은 26일 연 4.5%인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해 7월 이후 10회 연속 기준금리를 올리다 1년 3개월 만에 긴축을 일단 중단하는 것입니다. 현재까지 전쟁 후폭풍은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확전이 되면 겉잡을 수 없게 됩니다. 이미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중동에서 반미 및 반이스라엘 시위가 이어지고 있고 미국 내에서도 반 유대인 정서가 커지고 있습니다. 첨예한 갈등과 반목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느냐가 장기전으로 가느냐 마느냐를 결정할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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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