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성맞춤' 정신과 KOLAS의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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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종욱 국가기술표준원 원장조선시대 경기 안성에는 유기그릇 장인이 많았다. 기술이 워낙 뛰어나 한양의 양반댁 고위층에서도 오래전부터 예약해야만 그릇을 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안성의 유기 장인들은 주문자의 요구는 물론 소비자가 예상하지 못한 것까지 꼼꼼하게 챙겨 제품을 완성해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안성 장인들의 비법은 정확하고 세밀한 규격과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 있었다.
국가기술표준원이 운영 중인 한국인정기구(KOLAS)는 현대판 안성맞춤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시험기관은 제품의 안전성과 성능을 정해진 규격에 따라 시험하고, 성적서를 통해 결과를 증명한다. KOLAS는 이런 시험기관을 국제표준에 따라 공인(평가·승인)해 국제적 신뢰성을 보장해주고 있다.‘KOLAS 인정제도’ 도입 30년을 맞는 올해까지 KOLAS가 공인한 기관은 1000개가 넘었다. 이들 기관에서 연평균 300만 건에 달하는 성적서를 발행하고 있다. 또 2000년 국제인정기구 상호인정협정에 가입해 국내 시험성적서가 해외에 통용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해외 100여 개국 수출에도 활용되고 있다.
최근 세계 각국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저감 기술을 앞다퉈 개발 중이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수입품의 탄소배출을 규제하는 국제 환경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국내 산업에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6종의 수입품에 대해 탄소배출량을 규제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이달 1일 도입했다.
EU 수출기업은 2년 동안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26년에는 공인된 검증기관으로부터 받은 검증서를 제출해야 한다. 제품별 무상 할당 기준을 초과하는 탄소배출량에 대해선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이에 개별 기업의 일방적인 탄소배출 감축만으로는 국제적인 인증을 확보할 수 없다. 탄소배출량을 검증할 수 있는 검증기관이 필요하고 검증기관의 적격성을 보장할 수 있는 국가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국가기술표준원은 국제 환경규제에 따른 기업의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올 1월 국제 표준에 따라 제품 탄소배출 검증기관을 공인해주는 인정 제도를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 적격성 평가가 완료된 민간 검증기관에 대해 KOLAS 공인검증기관 인정서를 지난 17일 교부했다. 해외 검증기관을 활용할 때보다 비용과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것은 물론 기업 비밀 유출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내년까지 KOLAS 공인검증기관의 검증서가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도록 국제상호인정협정에 가입할 계획이다.
기후변화는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도약의 기회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안성맞춤이라는 말을 탄생시켰듯 ‘21세기 안성맞춤 신화’를 KOLAS 공인검증기관 인정제도를 통해 구현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