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괴롭힘, 서둘러 가해자 퇴사시켰다가는…

한경 CHO Insight
조상욱 변호사의 '오피스빌런 리포트'
내부 임직원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배임, 영업비밀 침해 등에 관한 비행의 사실관계를 밝히는 노동조사는 그 실행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고 분쟁이 커질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당사자들이 기업의 조사 과정상 절차 위반을 주장하여 분쟁이 생기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한 위험이 현실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기업은 노동조사 전반에 걸쳐 세세한 절차 준수에 유의해야 한다. 법과 내규상 명시적으로 정해진 절차를 지키는 것은 기본이고, 명시적 규정이 없더라도 조사 관여자의 인격권, 방어권 등 권리 보호와 공정성 유지를 위한 합리적 조치를 찾아서 실행해야 한다. 이를 '절차 존중 원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최근 이러한 노동조사상 절차 존중 원칙에 대해 돌아볼 계기가 되는 판결이 있었다.

사안을 요약하면,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 가해자가 잘못을 부인하였는데, 기업 담당자는 그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비밀유지 어려움 등을 이유로 신고인인 피해자에게 가해자 권고사직에 동의하도록 설득, 유도하였다. 결국 피해자는 권고사직에 동의했는데, 나중에야 가해자가 잘못을 부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업이 의견청취의무를 위반하였음을 이유로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법원은 피해자 손을 들어주면서, 의견청취의무를 불성실하게 이행한 것을 이유로 기업에 300만원의 손해배상을 명했다(2022나45458).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5항은 직장 내 성희롱 발생이 확인되면 사업주인 기업이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하고, 사전에 피해자인 근로자 의견을 듣도록 규정한다. 그러내 위 의견 청취 과정에서 기업이 피해자에게 어떤 정보를 어디까지 제공해 주어야 하는지는 정한 바가 없다.하지만 법문에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징계 등 필요한 조치에 관해 의견을 피해자로부터 청취함에 있어, 피해자가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결정 (informed decision)을 할 수 있을만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은 절차 정의상 당연하다.

따라서 가해자가 잘못을 부인함을 피해자에 제대로 알리지 않은 기업은, 설령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권고사직에 동의했더라도 남녀고용평등법상 의견청취의무, 나아가 필요한 조치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 대상판결 법원의 입장이다. 해당 부분 일부를 직접 인용하면, 기업은 의견청취와 관련하여 “신고인이 처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한 선택지를 제공하여 신고인 스스로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가장 만족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하여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대상 법원의 사실 인정과 결론이 정당한지는 최종 대법원 판결까지 지켜봄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할만한 정보를 의견 청취 전 피해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 자체는 타당하다고 보아야 한다.기업 입장에서 본다면,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의 노동조사에서 당사자의 정신적 고통을 최소화하고 기업 질서 문란을 최대한 조기 수습하기 위하여 신속한 사안 종결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이 자진 퇴사하면 피해자는 직장에서 가해자와 영구 분리가 되므로 대체로 만족하고, 직장 내 질서도 회복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조사에 임하는 기업이 가해자 퇴사로 조사를 쉽게 종결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 태도가 정당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은 그런 종결 기회가 오더라도 가해자 퇴사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안일한 판단은 없는지, 너무 서둘러서 의견청취의무 등 절차를 위반할 염려는 없는지 다시 돌아봐야 한다.

노동조사의 주된 대상이 되는 직장 내 성희롱이나 괴롭힘은 날로 발생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대상판결 사안처럼 기업이 조사 과정상 제대로 절차를 준수했는지에 대한 다툼이 일어나는 사안도 함께 증가할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절차 존중 원칙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노동조사에서는 신속성도 중요한 원칙이지만 (신속성과 함께 공정성, 철저성, 기밀성을 노동조사 4대 원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신속성은 절차 존중 원칙이 지켜진 한도에서의 신속성을 의미한다. 기업은 항상 절차가 터잡은 공정성을 유념하는 뒤탈 없는 조사를 이상으로 삼아야 한다.한편, 절차 존중 원칙은 비단 피해자 뿐만 아니라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 권리 보호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은 ①원칙적으로 조사 전 피해자로부터 어떤 주장이 제기되었는지를 미리 고지 받고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②향후 조사 일정에 대해 대략이라도 설명을 들어야 하며 ③본인에 유리한 참고인을 제시하고 조사할 것을 요구할 기회를 받아야 하고 ④특히 잘못이 없다고 밝혀질 경우 중요한 기밀성의 유지를 위한 보호도 받아야 한다. 이 또한 법문에는 없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공정성 유지를 위해 당연히 도출되는 절차적 요구 사항들이다.

결국 절차 존중 원칙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불문하고, 또 노동조사 시작부터 끝까지 전반에 적용되는 노동조사의 대원칙이다. 대상판결이 올바른 노동조사 수행을 위해 고심하는 기업들에게 이 점을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조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