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놀이를 가야 하는 의학적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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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최윤경의 탐나는 책무더위, 열대야, 높은 습도, 모기…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겨울보다 여름을 선호하는 이유는 오직 해가 길어서다. 나는 하지 다음 날부터 짧아지는 해를 아쉬워하다가, 추분부터 본격적으로 우울해지는 사람이다. 줄어든 낮 길이만큼 인생을 누군가에게 뺏긴 것 같은 기분이다. 누군가는 ‘거 과장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영국의 박물학자인 에마 미첼이라면 내 이야기에 적극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자연의 항우울제’를 찾아 숲으로 가라고.
, 에마 미첼, 신소희 옮김, 2020년, 심심
<야생의 위로>는 생의 절반을 우울증 환자로 살아온 에마 미첼이 1년간 산책길에서 관찰하고 수집한 동식물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반평생 우울과 싸우며 겪어온 좌절, 고통, 무기력, 회복과 희망에 관한 고백이다. 저자는 책의 머리말에서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기분 저하를 완화하며, 식물이 우울증과 불안 스트레스 인지도를 낮춘다’는 엑서터대학교의 연구를 인용하는데, 이 책은 그 연구를 몸소 입증한 결과물이기도 하다.우울의 하강 나선에 들어서는 순간 “이 어둡고 아찔하고 미끄러운 구덩이에 빠져들지 않도록 발 디딜 곳을 찾아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집안일을 하지도, 작업에 몰두하지도,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죄책감”에 짓눌려 최악의 상태로 치달을 때, 자살 충동에 휩싸인 채 차를 몰아가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중앙분리대에서 자라나던 작은 묘목들이었다. “눈앞을 스치는 푸른 잎사귀와 엔진의 규칙적인 진동이 내면의 참담한 소음을 가라앉힌다…. 자연 속에서 치유를 구하는 뇌의 일부분이 깨어난다.”
식물이 뿜어내는 휘발성 화합물인 피톤치드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감염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사람에게도 같은 작용을 한단다. 또한 우울증 환자의 경우 기분 조절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분비가 감소하는데, 자연과의 접촉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채집 황홀’이라 부르는 것이다. 인간이 새로운 환경을 탐험하고 자원을 찾아나설 때 우리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어 보상작용을 하는데, 산책하며 낙엽을 주워 모으는 행위 역시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겨울이 다가올수록 사라져가는 색채들을 소유하고픈 욕망으로 더욱 채집에 몰두한다. 책의 곳곳에 나뭇잎, 열매, 꽃, 새의 깃털 등 저자가 채집한 각종 자연물과 산책길에 만난 동식물의 모습을 아름다운 사진과 일러스트로 담아내, 마치 산책길에 동행한 듯한 기분이 든다.춥고 어두운 겨울을 지나 봄이 되어도,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이 기지개를 켜기에는 아직 성급하다. 그렇지만 분명 변화는 시작되었다. 저자는 낙엽 덮인 숲길에서 작은 새순을 발견하고 이렇게 적는다. “새로 자란 이 식물들은 겨우내 자리를 지키면서 기온이 영상에 머무는 한 느리게나마 자라날 것이다.”
나는 이 말이 이렇게 읽힌다. “우울의 터널을 지나는 중에도 살아 있는 한 느리게나마 회복할 것이다.” 그러니, 이 저무는 계절의 햇살과 자연은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가. 우리가 지금 이 시기를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단풍 구경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