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사람 없어 문 일찍 닫아요"…시한폭탄 된 독일 인력난 [위기의 독일경제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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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독일경제 ⑥-'시한 폭탄'된 인력난독일 수도인 베를린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단 한 대의 비행기도 날지 않는 활주로가 있다. 2008년 운영이 중단됐지만 그후 15년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온 ‘템펠호프(Tempelhof) 공항’ 얘기다. 나치 독일이 한때 유럽의 최대 규모로 확장하려 했던 이 공항의 면적은 877에이커(약355만㎡)로, 미국 뉴욕의 센트럴 파크보다 크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베를린에 주둔한 구소련이 서베를린을 봉쇄하자, 연합군은 이 공항을 통해 200만 명에 달하는 서베를린 주민에게 생필품을 전달하는 공수 작전을 펼쳤다.통일 이후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신(新)공항이 들어서면서 템펠호프 공항은 문을 닫았다. 부동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베를린시 정부는 공항 부지를 대규모 주택 단지로 개발할 계획이었으나 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하지만 오늘날 이곳은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 튀르키예, 우크라이나 등에서 온 이민자들의 거주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2015년 난민 위기 당시 앙겔라 메르켈 정부는 템펠호프 공항 격납고(hangar) 주변에 독일 최대 규모 수용 시설을 만들고 7000여 명의 난민을 들였다.지난 7일(현지시간) 오전 템펠호프 공항에는 관광객들과 조깅하는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고, 이들과 한두 겹의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빨랫감을 널거나 생수통을 옮기는 난민들의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수용 시설 출입은 보안요원들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됐고, 입구에서 난민 신분이 확인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철조망 너머로 만난 우크라이나 출신의 악사나(32‧여)씨는 “이곳에 산 지 5개월 정도 됐다”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독일어를 배우는 중”이라고 말했다. 독일 연방통계청(데스티타스)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독일로 유입된 이민자 수는 600만 명이 넘는다. 2022년 기준 독일 전체 인구의 18.3%, 즉 5명 중 1명이 이민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마이너스 성장에 직면한 독일 정부는 난민들을 노동시장에 성공적으로 융합시키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장관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올해 자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4%로 제시하면서 노동력 부족을 “가장 시급히 해결돼야 할 구조적 문제”로 꼽았다. 그는 “구인에 실패한 수공예 업체들은 주문을 취소하고, 상점‧식당은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일이 허다하다”며 “더 많은 이민자가 노동시장에 편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독일 IFO경제연구소 조사에서 절반 이상의 기업들이 인력 부족으로 사업에 지장이 있었다고 답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독일 경제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중소기업(미텔슈탄트)들이 최대 걸림돌로 꼽은 것도 인력 부족이었다. 이는 독일 사회의 심각한 고령화에서 비롯된다. 2차 대전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전후 재건 등에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베이비붐’이 뒤늦게 찾아왔고, 이 때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시기도 이제서야 도래한 상황이다. 독일의 생산가능인구 비율은 64%로 미국과 같지만, 평균 연령은 45세로 미국(39세)보다 6세 더 높다. 독일 노동청 산하 고용연구소(IAB)는 대량의 이민자가 유입되지 않을 경우 독일의 노동인구(고용률이 일정하다고 가정)가 2020년 기준 4740만명에서 2060년 3130만명까지 쪼그라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 수준의 노동력을 유지하려면 매년 40만 명이 독일로 이주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유입된 이민자들이 독일 사회에 얼마나 잘 통합되느냐도 관건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난민 위기 당시 독일로 유입된 난민 중 절반만 5년 내 일자리를 구했다. 독일은 고유의 직업 훈련 제도나 독일어 사용 가능 여부 등을 중시한다는 점 때문에 이들이 정상적으로 노동시장에 편입되기까지 시차가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다른 선진국 대비 고숙련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낮아 인력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독일의 소득 상위 10%의 임금은 중위소득의 2.1배로, 미국(2.7배), 캐나다(2.5배), 영국(2.3배)보다 낮다. 홀거 슈미딩 베렌베르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은 이민자들을 자국 사회에 완전히 통합하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투자를 단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를린=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마이너스 성장에 직면한 독일 정부는 난민들을 노동시장에 성공적으로 융합시키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장관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올해 자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4%로 제시하면서 노동력 부족을 “가장 시급히 해결돼야 할 구조적 문제”로 꼽았다. 그는 “구인에 실패한 수공예 업체들은 주문을 취소하고, 상점‧식당은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일이 허다하다”며 “더 많은 이민자가 노동시장에 편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독일 IFO경제연구소 조사에서 절반 이상의 기업들이 인력 부족으로 사업에 지장이 있었다고 답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독일 경제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중소기업(미텔슈탄트)들이 최대 걸림돌로 꼽은 것도 인력 부족이었다. 이는 독일 사회의 심각한 고령화에서 비롯된다. 2차 대전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전후 재건 등에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베이비붐’이 뒤늦게 찾아왔고, 이 때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시기도 이제서야 도래한 상황이다. 독일의 생산가능인구 비율은 64%로 미국과 같지만, 평균 연령은 45세로 미국(39세)보다 6세 더 높다. 독일 노동청 산하 고용연구소(IAB)는 대량의 이민자가 유입되지 않을 경우 독일의 노동인구(고용률이 일정하다고 가정)가 2020년 기준 4740만명에서 2060년 3130만명까지 쪼그라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 수준의 노동력을 유지하려면 매년 40만 명이 독일로 이주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유입된 이민자들이 독일 사회에 얼마나 잘 통합되느냐도 관건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난민 위기 당시 독일로 유입된 난민 중 절반만 5년 내 일자리를 구했다. 독일은 고유의 직업 훈련 제도나 독일어 사용 가능 여부 등을 중시한다는 점 때문에 이들이 정상적으로 노동시장에 편입되기까지 시차가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다른 선진국 대비 고숙련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낮아 인력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독일의 소득 상위 10%의 임금은 중위소득의 2.1배로, 미국(2.7배), 캐나다(2.5배), 영국(2.3배)보다 낮다. 홀거 슈미딩 베렌베르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은 이민자들을 자국 사회에 완전히 통합하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투자를 단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를린=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