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음까지 데려갈 배가 오네"... 5학년 아이의 詩에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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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임지영의 '예썰' 재밌고 만만한 예술썰 풀기지난주 한 초등학교 예술 수업때 4학년 여학생이 느닷없이 울었다. 그림을 보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발표할 때였다.
ㅡ이 그림이 인상깊었던 까닭은 우리 엄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데, 나중에 엄마가 생각하는대로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나는 그냥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ㅡ아이는 처음엔 울먹이며 읽었는데 나중엔 거의 흐느꼈다. 반 친구들은 모두 당황했고 나도 놀랐지만 티내지 않았다. 그저 우리가 감정 표현을 평소에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 내 진심을 표현할 때 나도 모르게 뭉클할 때도 있다고 어깨를 살짝 토닥여주고, 다음 친구로 넘어갔다.
짧은 글에는 아이의 내면 감정이 다 드러나 있었다. 엄마에 대한 사랑, 엄마의 기대에 대한 부담, 어쩌면 엄마보다 더 깊은 삶에 대한 통찰. 아이는 그림 한 점을 통해 온갖 다양한 감정을 지닌 자신의 얼굴을 직면한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터진 것이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아이 얼굴이 맑아져 있었다.
예술 수업을 하다 보면 많은 분들의 눈물을 만난다. 때때로 오열까지도 나간다. 이번처럼 아이가 우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의미같아서, 이럴 때마다 동요된다.나도 감정선이 매우 취약하다. 툭하면 눈물 줄줄. 그런데 예술 수업을 할 때만큼은 담대한 마음, 다정한 눈빛을 장착한다. 짧은 시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기에 튼튼한 중심을 잡아야 하므로. 그런데 그림 한 점이 뭐라고 그를 통해 한사람의 심연이 고스란히 쏟아져나올 때 가슴이 벅차다.
며칠 전에는 다른 초등학교에 출강한 선생님이 수업중 겪은 일로 상담을 해오셨다. 5학년 아이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_삶의 단계들>을 보고 쓴 글이었는데 엄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것은 놀랍도록 잘 쓴 시였고 가슴이 저미도록 슬픈 시였다. 그 선생님은 그 글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고 한다. 무방비 상태로 슬픔이 훅 밀려와 그리됐다고, 이럴 때에는 어떻게 공감해줘야 하냐고 물어오셨다. 아이가 쓴 '삶의 단계' 일부다.
ㅡ나를 죽음까지 데려갈 배가 오네
그래도 나는 저 배에 타는 게 두렵지 않아
왜냐하면 인간은 언젠가 죽게 될테니까
내가 7살이 되던 해 이 말을 했던 사람이 있지
그 사람은 1년 전에 이 배를 타고 나간
우리 엄마ㅡ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_삶의 단계들
뭉클을 너머 아이의 슬픔이 그대로 와닿는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아버린 생의 공허도 고스란하다. 하지만 담대하고 다정하게!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누군가 감정이 폭발할 때 그를 위로한다고 긴 시간을 할애하거나 함께 울거나 크게 연민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수업 중이고 뒤에 발표할 사람도 있고. 다만 깊은 내면을 맞닦뜨린 이의 솔직함에 공감해주고, 그리 할 수 있는 순수를 응원해주고, 나의 진심을 눈빛에 담아 끄덕끄덕하면 된다. 섣불리 동요하거나 연민해선 안된다. 공감 이상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모든 예술은 언어다. 문학뿐 아니라 그림도, 음악도, 춤도 궁극의 언어고 깊은 소통이다. 예술이 공감과 소통의 매개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지만 실제 예술이 내게로 와서 무엇이 되는지 알기 어려웠다. 예술을 접한 후 뭔가 가슴이 말캉하고 부드러운 것들로 차오르는 것 같았지만 그 뿐. 전시장이나 공연장을 나오는 순간부터 감흥은 휘발됐다. 동행이 있어도 예술을 주제로 오래 대화하기는 힘들었다. "음악 너무 감동이었어"라거나 "그 그림 정말 좋더라"처럼 두 마디 이상 벅찬 감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게 영 자연스럽지 않았다.이렇게 예술이라는 언어를 직접 '쓰기' 시작하자 우리는 예술의 주인공이 됐다. 단순한 수혜자에서 적극적 개입자로 참여하면서 스스로 재미와 의미를 만들어냈다. 어린 줄만 알았던 아이들의 깊은 사유가 쏟아지기도 하고, 밝은 줄로만 알았던 친구의 오랜 아픔이 드러나기도 한다. 예술 수업을 하면서 더 좋은 어른,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간다 느낄 때가 많다. 그림이 뭐라고 글이 뭐라고, 가장 안쪽에 있는 자기의 마음을 꺼내어 보여줄 때, 우리는 착한 눈이 되어 서로 고마움을 전하고 또 전하곤 한다.
나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던 아이를 수업이 끝난 후 살짝 불러 꼭 안아주고 선물을 주고 왔다. 자신의 내면 아이를 마주하는 일은 정말 귀하고 소중한 경험이다. 용기있는 사람만이 그렇게 한다. 글에 쓴 대로 너 진짜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 될거야. 그리고 이미 그렇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