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 막히자 '발달지연'…실손보험금 지급 5년새 7배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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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 새는 실손보험금“잘못된 발달지연 치료를 받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아동이 요즘 많아졌습니다. 비전문과 의사와 치료사의 말만 믿다 시간이 안타깝게 흘러간 겁니다.”
(上) 판치는 과잉진료
병원 39개 낀 보험 브로커도
정형외과·안과 의사도 아동 진료
경험 없는 치료사까지 진료 투입
잘못된 치료에 골든타임 놓치고
멀쩡한 어린이도 발달지연 진단
상반기 지급 보험금만 750억 육박
발달지연 전문 치료센터를 운영하는 A씨는 최근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발달지연이 있으면 실손보험 처리가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해 과잉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 크다는 얘기다. A씨는 “증상이 없는 아동도 발달지연이라고 진단하고 있고, 정작 치료받아야 할 아동에겐 엉터리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며 “부모들의 공포심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 치료사로서 안타깝다”고 했다.
발달지연 보험금 역대 최대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화재 DB손해보험 현대해상 메리츠화재 KB손해보험 등 5개 손해보험사가 올해 상반기 아동 발달지연과 관련해 지급한 실손보험금은 746억66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항목 지급액은 2018년 190억5800만원, 2019년 278억2200만원, 2020년 384억9300만원, 2021년 827억4200만원, 지난해 1185억800만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올해 지급액은 작년 규모를 뛰어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발달지연은 또래 아동에 비해 언어, 사고 등의 발달이 더디게 진행되는 경우를 말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마스크를 썼고, 대외 접촉과 소통이 줄어든 탓에 의심 아동 수가 늘어났다. ‘내 아이도 해당할까’ 걱정하는 부모가 증가하면서 관련 센터에서의 치료가 본격적으로 부상했다.실손보험 처리가 가능하다는 것과 맞물려 수요가 늘자 변종 치료센터가 생겨났다. 진료행위라면 실손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 ‘실비센터’까지 나왔다. 이른바 ‘컨설팅업체’가 실비센터 설립 등에 관여하면서 의료기관과의 연결을 주선했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컨설팅업체는 지금까지 드러난 병원 협업 사례만 39건에 달한다.
치료센터에서 의사는 형식적인 초진만 하고, 실제 처방이나 진료는 치료사가 병원과 다른 곳에 세워진 실비센터에서 진행한다. 현재 치료사의 실력을 입증할 공인 자격 체계는 없다. 발달지연 치료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치료사가 아이를 돌보는 일이 늘어난 배경으로 꼽힌다. A씨는 “대학을 갓 졸업해 경험이 전혀 없는 치료사들이 수련 과정도 없이 치료에 투입되고 있다”며 “치료를 받으러 온 아이들이 실습 대상으로 활용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형외과·안과가 발달지연을?
발달지연 여부를 가려내는 역할을 맡은 의사들의 전문성도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사 자격증만 있으면 실손보험금 청구에 활용할 수 있는 진단서 발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컨설팅업체는 의사들의 진료과목을 고려하지 않고 치료센터와 연결해주고 있다.한 보험사의 발달지연 보험금 지급 현황을 보면 정형외과 안과 등 발달지연과 상관없는 진료과의 진단이 크게 증가했다. 발달지연과 관련된 소아과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등이 아닌 다른 진료과의 구성 비율은 2018년 21.7%에서 올 상반기 39.8%로 높아졌다. 정형외과의 경우 2018년 2건에서 2022년 247건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상반기에만 450건에 달했다.수요가 늘자 치료비도 뛰었다. 당초 1회(40분)에 5만원이 평균 시세였지만 이제 7만~13만원을 매기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실손보험금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저항이 크지 않아서다. 결과적으로 장애등급을 받아 보험 처리가 불가능한 중증 발달장애 아동은 치료를 받기 더 어려워졌다.
“다 보장해준다더니…”
보험사들은 최근 발달지연 관련 보험금 지급을 깐깐하게 따져보고 있다. 의사의 개입이 사실상 없는 민간센터에서의 놀이치료 등은 실손보험 처리가 가능한 의료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다 보장해줄 것처럼 광고한 실손보험 자체가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발달지연 아이를 둔 부모들은 전문 의사에게 맞춤형 치료를 받기 어렵고, 발달지연 치료센터의 전문성을 가려내기도 어렵다. 가격도 높아져 발생하는 치료비를 보험으로 처리하지 않고 모두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