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독도는 우리 땅' 외치려면 울릉도 유적부터 보존해야

일제 독도 침탈 야욕 드러낸
'해저케이블 유적' 등 방치돼

안시욱 문화부 기자
지난 21일 찾은 울릉도에서 ‘일제 해저케이블 육양(부설) 지점’ 표지석을 만난 건 해안가 도로변에 아무렇게나 자란 잡초들을 5분 넘게 헤치고 나간 뒤였다. 닿을 수 있는 길도 없고, 관광안내 지도에도 없는 유적. 대체 어떤 유적이길래 이런 푸대접을 받나 싶었다.

표지석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1904년 일본이 포설한 해저케이블이 이곳에 육양된 바 있다. 이는 울릉도가 극동의 통신 요충지였음을 뜻하는 것이며, 이런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이곳에 표지석을 세운다.” 기자를 이곳까지 안내해준 조건 한일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에게 무슨 뜻인지 물었더니 이런 답을 들려줬다. “해저케이블은 일본이 독도에 관심을 가진 1900년대 중반 러·일전쟁 전후로 울릉도와 독도를 침탈하고자 한 증거입니다. 이런 중요한 유적이 방치되는 게 안타까워서 언론에 알린 겁니다.”10월 25일은 ‘독도의 날’이다. 독도가 우리 땅이란 걸 선언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가 123년 전 바로 이날 제정된 걸 기린 기념일이다. 표지석이 암시하는 것처럼 일본이 독도에 눈독을 들인 건 그 이후인데도 일본은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고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일본의 억지를 무너뜨리려면 이런 유적부터 잘 보존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울릉도에는 방치된 유적이 한둘이 아니다. 비단 독도와 관련된 유적 외에도 오래전부터 개척민들이 남긴 유적이 길가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19세기 울릉도를 불법 점거한 이들을 수색·토벌하기 위해 파견된 수토사가 남긴 태하리 각석문과 통일신라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현포리 고분군도 훼손에 무방비한 상태였다.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선 먼저 울릉도 유적부터 보존해야 한다. 국제법상 오랫동안 무인도로 있던 섬은 이웃하는 큰 섬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영국 간 영토 분쟁이 벌어진 ‘망키에·에크르오’섬 사건의 경우 영국 저지섬과 관계성이 깊어 영국 영토라는 판결이 나왔다.

독도가 일본 오키섬에 비해 울릉도와 역사적·지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잔해뿐인 석포의 북쪽 망루를 개발해 독도가 일본의 침탈과 관련 깊은 곳이라는 사실을 후대에 전해야 한다”(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교육홍보실장)는 전문가들의 얘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