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MH 회장도 사랑한 마크 로스코, 3m 캔버스에 담은 고독 [지금, 파리 전시 ⑥]

루이비통재단미술관 -

추상표현주의의 거장 마크 로스코
뉴욕 지하철 그림·자화상 등 초기작부터
색의 레이어 느낄 수 있는 추상화까지 총망라
관람객들이 루이비통재단미술관에 걸린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이선아 기자
눈으로 직접 봐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예술작품이 그렇다. 컴퓨터 화면으로 보면 '이게 왜 명작일까. 이런 건 나도 그리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보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많다.

마크 로스코가 바로 그런 작가다. 캔버스에 단색의 페인트를 칠한 게 다인 것 같은데, 그에겐 언제나 '현대미술의 거장', '미술사 흐름을 바꾼 작가'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세계 최고 부자로 손 꼽히는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도 집무실에 로스코의 그림이 걸어놨다고 한다.
마크 로스코 회고전이 개막한 지난 18일 전시장은 밤 늦도록 관람객들로 붐볐다. /이선아 기자
왜 그렇게 다들 로스코에 열광하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전시가 있다. 지금 프랑스 파리의 루이비통재단미술관에서 열리는 '마크 로스코 회고전'이다. 굵직한 예술가들의 전시가 한꺼번에 열리고 있는 파리에서도 단연 인기 있는 전시다.

전시는 로스코의 67년 인생이 담긴 '축소판'이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런던 테이트모던 등 세계 유수 미술관뿐 아니라 로스코 후손이 물려받은 작품, 개인 컬렉터 소장품 등 곳곳에 흩어져있는 로스코 작품 110여 점을 한데 모았다.
전시장에 걸린 마크 로스코의 작품들. /이선아 기자

◆"내 예술은 추상이 아니다"

시작은 지하 1층에 걸린 풍경화다. 그것도 뉴욕의 지하철 그림. 추상화의 대표주자인 로스코가 지하철 풍경을 그렸다니, 의아하지만 지금의 로스코를 만든 건 이 때 작품이었다. 그는 '지하철 그림' 연작을 통해 플랫폼, 천장, 기둥, 난간 등 건축 요소뿐 아니라, 인간의 고독함을 그리는 법을 익혔다. 당시 뉴욕 메트로폴리탄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는 것을 즐겼던 로스코가 그의 영향을 받아 그린 자화상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마크 로스코가 그렸던 뉴욕의 지하철 풍경. /이선아 기자
그를 추상화로 이끈 건 전쟁이었다. 1945년 세계 2차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 미술계에선 추상표현주의가 유행했다. 합리주의와 이성에 대한 반기였다. 그런 흐름 속에서 로스코의 그림도 점점 형태를 잃어갔다. 윗층 전시장에선 비교적 윤곽선이 뚜렷한 초기 추상화부터 점점 안개처럼 퍼져나가는 후기작을 차례로 볼 수 있다.
마크 로스코의 초기작을 보고 있는 관람객들. /이선아 기자
로스코의 추상화는 단색으로 칠해져있는 듯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색깔이 중첩돼있다. 그에게 노란색은 단순한 노란색이 아니다. 그 안에는 밝은 레몬색, 탁한 오렌지색, 흰색이 이리저리 섞여있다. 붉은색도 옅은 살구색과 진한 와인색, 검은색이 여러 겹으로 중첩돼있다. 각도를 바꿀 때마다 새로운 색깔이 보인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 /이선아 기자
하지만 로스코가 정작 추구했던 건 '색'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좇았던 건 '빛'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의 예술을 이렇게 정의한다.

"내 예술은 추상이 아니다. 단지 살아 숨쉴 뿐이다."

◆미술을 음악과 시의 경지로

관람객들이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이선아 기자
전시장은 이런 로스코의 작품을 감상하기 최적의 장소다. 일부러 조명을 어둡게 해서 다른 무엇도 아닌, 작품에만 집중하게 했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수미터 대형 회화는 관람객의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생각에 빠지게 한다.

1960년대 중반 들어서 로스코는 어둠에 이끌렸다. 전시장 후반으로 갈수록 탁하고 어두운 색깔의 작품이 많아지는 이유다. 거기엔 로스코를 괴롭혔던 우울증과 건강이상도 한몫했다. 검은색, 회색이 소용돌이치는 캔버스는 블랙홀처럼 관람객을 압도한다.
이번 전시의 대표 이미지로 쓰인 작품. /이선아 기자
전시의 끝이자, 하이라이트는 미술관 맨 윗층이다. 이곳엔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로스코의 작품이 함께 전시돼있다. '블랙 앤 그레이' 연작을 그릴 때 자코메티에게 영감을 받았던 로스코에 대한 헌정이다. 가느다랗고 어두운 조각을 통해 인간의 고독을 나타낸 자코메티 조각 뒤, 어둠을 고찰한 로스코의 작품이 걸린 모습은 과연 이 블록버스터 전시의 완벽한 끝맺음이라고 할 만하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과 함께 전시된 마크 로스코의 작품. /이선아 기자
1970년 로스코는 결국 우울증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생의 끝자락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벽면에 적힌 그의 생전 말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내가 화가가 된 이유가 있다. 음악와 시가 지닌 깊고 강렬한 감정의 경지로 미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전시는 내년 2월 4일까지 열린다.

파리=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