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어서 달콤하고 씁쓸한 그 맛…영화 '고독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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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장준우의 씨네마 브런치‘가족’이란 단어가 주는 묘한 울림이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군가에겐 따스함을, 누군가에겐 애뜻함을, 또다른 누군가에겐 분노나 서글픔을 주는 단어다.
행복해보이기만 한 가족도 나름의 사연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문제가 많아 보이지만 의외로 끈끈한 가족애를 갖고 있는 가족도 있다. 가족이라고 해서 서로 간에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용서가 되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가치중립적이지만 저마다 갖는 가족의 의미는 이 땅 위에 발을 얹고 사는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채롭다.칠순을 맞이하는 린 여사에게 가족은 마치 그가 일생 동안 만들어온 새우튀김 같은 맛이었다. 고생스럽게 새우를 다지고 양념을 하고 옷을 입혀 튀겨내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고소하고 달콤한 맛은 그간의 노고를 잊게 하는 마력이 있다. 일찍이 집나간 남편 없이 20년 넘게 세 딸과 사업체를 홀로 키워낸 린 여사에겐 더 바랄게 없어 보인다. 문제의 그 일이 없었다면.
린 여사의 칠순잔치가 열리는 날 하필 연락을 끊고 산 남편의 부고 소식이 날아든다. 오래전 처가에 큰 빚을 지고 바람까지 피운 남편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며 이혼 서류를 들이 밀었지만 린 여사는 이혼 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언젠가 남편이 정신을 차리고 돌아 올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는지, 결코 남편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서류상 가족으로 되어 있기에 린 여사가 장례를 치러야 할 상황에 놓인다. 그동안의 울분을 풀고 싶었던 것일까. 린 여사는 다른 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고집대로 장례를 밀어 붙인다. 남편이 죽기 전 집(타이베이)에 가고 싶다는 유언을 했지만 고향인 타이난에서 빈소를 마련하고, 불교도로 생을 마감했지만 과거엔 도교를 믿었다며 도교식으로 장례를 치른다. 지금껏 자신이 남편 대신 딸들을 키워왔는데, 딸들이 평생 떨어져 지낸 아버지에 대해 연민을 표하자 린 여사는 더욱 서운함을 느끼며 고집을 부린다. 이 과정에서 가족 간에 해묵은 감정이 서서히 드러나고 새로운 갈등을 겪는다. 여느 가족들처럼.린 여사 입장에선 세 딸과 남편이 야속하게만 느껴지겠지만, 딸들은 나름대로 각자가 가진 문제들로 삶이 버겁다. 아버지를 닮아 자유로운 영혼처럼 사는 큰 딸은 암이 재발하고, 둘째 딸은 의사가 되었지만 딸의 학업에 모든걸 쏟아 부으며 삶의 공허함을 달랜다. 막내딸은 린 여사의 식당을 물려받으려 하지만 어머니의 존재감에 눌려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다. 각자가 처한 문제들로 골치가 아픈 딸들은 어머니의 고집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충돌한다.
각자의 문제와 고민을 갖고 있는 한 우리는 세상 무엇보다 고독한 존재다. 남편에게 버림받았지만 한 때 사랑했던 시절을 잊지 못해 애증의 회한으로 고집을 부린 여사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린 여사와 딸 들이 겪는 갈등은 어찌보면 가족이란 한 공간 안에 있다보니 뾰족해진 개인들이 얽히고 설키며 서로에게 생채기를 낼 수 밖에 없는, 가족이기에 겪는 필연적인 딜레마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각자가 고독한 개인이 모인 가족은 허울 뿐이고 가족애란 결국 허상에 불과한 것일까. 장례식장에서 겪는 린 여사와 딸들의 갈등은 오히려 남편에 대한 원망을 하나씩 벗겨내고 이해하고 종국에는 용서하는 과정으로 승화된다. 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직면하는 동시에 가족이 겪는 일을 다 같이 공감하며 헤쳐나가게 되면서 본인들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힘을 얻는다. 영화 말미에 린 여사가 택시 안에서 부르는 ‘고독의 맛’ 노래 가사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바람이 뺨을 스치자 눈물이 뚝뚝 떨어지네 / 꽃은 피건 지건 향기가 가득하지” 유난히 그 대목이 눈에 밟힌 건 힘든 시련이 와도 결국 가족이란 꽃은 피건 지건 향기가 남는다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남편에 대한 원망 섞인 그리움으로 평생 고독하게 지낸 린 여사지만 실로 고독하지만은 않았다. 고독의 반대말은 가족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