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는 역시 달랐다"…체코 필이 들려준 드보르자크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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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러시아 출신 명장 세묜 비치코프 지휘
'올 드보르자크 프로그램' 선보여
후지타 마오 협연…유연한 터치로 감정 절제
교향곡 7번 연주…보헤미안 톤 정수 보여줘
음향적 균형감과 견고한 입체감 두드러져
지난 2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어둡던 무대에 조명이 켜지자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첫 곡은 드보르자크가 쓴 연주회용 서곡 3부작 중 ‘인생’이란 주제를 담고 있는 ‘사육제’ 서곡이었다.비치코프는 소문대로였다. 엄격한 지시와 통제로 악단을 극한으로 몰아붙이기보다는 연주자들이 스스로 노래할 수 있도록 일종의 음악적 공간을 만들어주는 섬세한 지휘를 선보였다. 그 덕에 체코 필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두터운 보헤미안 톤이 완연히 살아날 수 있었다. 관현악의 장대하고도 정감 어린 선율과 트라이앵글, 탬버린, 심벌즈 등 특색 있는 타악기들의 활기 넘치는 리듬은 시종일관 예민하게 조형됐다.
이 작품에서 피아노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솔로라기보단 악단과 동등한 선상에 서서 악상을 함께 발전시키는 동반자에 가까운데, 마오는 드보르자크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감미로운 음색과 건반을 스치는 듯한 유연한 터치로 풍부한 양감을 만들면서도 지나친 감정 표현으로 전체의 조화를 깨뜨리는 일은 철저히 통제했다. 다만 셈여림 폭과 강세의 정도를 키우면서 긴장감을 유발해야 하는 순간까지 유려한 흐름을 유지해 다소 밋밋하다는 인상을 남겼다.마지막 작품은 체코인으로서의 애국심과 투쟁 정신을 독일 음악의 형식을 빌려 표현한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이었다. 비치코프와 체코 필은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연주를 들려줬다. 저음 현의 풍부하면서도 장엄한 울림과 고음 현의 부드러우면서도 처절한 음색이 균형을 이루면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고, 그 위로 올라선 금관과 목관은 각자의 선율을 명료히 드러내면서 입체감을 만들어냈다. 1악장에서 비치코프는 심오한 주제와 목가적인 주제를 매끄럽게 넘나들면서 매 장면 새로운 감정을 이끌어냈다. 체코 필은 그의 손끝을 따라 마치 한 몸처럼 움직였다.
"오케스트라가 익명화되고 있는 음악계에서 자신만의 정체성, 음향, 성향 등 고유의 언어를 가진 체코 필의 존재는 매우 소중하다." 이달 내한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비치코프가 한 말이다. '왜 드보르자크는 체코 필하모닉의 소리로 만나야 하는가'를 보여준 연주였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