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석유기업 쉘, 수소사업 축소…탈탄소 열풍 잦아드나

쉘, 수익성 악화하자 사업 축소 추진
美 국민 中 80%, 기후 정책에 염증 느껴
기후 정치로 변질되며 정치적 좌절감 커져
글로벌 에너지 기업 쉘이 탄소 절감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을 추진한다. 수소 에너지 등 저탄소 에너지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어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역행하지만, 실적 개선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미국 여론도 기후 정책에 대한 반발 심리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에 따르면 쉘은 기업 내 저탄소 솔루션 부문(LCS)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LCS 사업부 인력의 15%를 감원하고, 수소 사업 규모를 축소한다. 내년에 200여명을 해고한다. 총 1300여명을 감원하는 게 목표다.쉘 관계자는 로이터에 "운송 및 산업재 사업 등 핵심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LCS 사업부를 혁신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사업의 수익성을 강화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축소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후 정책에 대한 쉘의 입장이 바뀐 것은 올해 1월 신임 최고경영자(CEO)인 와엘 사완이 부임하면서다. 사완 CEO는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량을 늘려 쉘의 부가가치를 늘려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왔다. CEO의 장기적 비전에 따라 이번 구조조정을 시행했다는 평가다.

가장 크게 개편되는 사업부는 수소 사업이다. 당초 쉘은 에너지 기업 중 수소 사업을 선도해왔다. 지난해 네덜란드에 유럽 최대인 연 200MW 규모의 전해조 수소발전기를 신축하기도 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에도 수소 허브를 구축하기 위해 보조금 신청을 했지만 탈락했다.하지만 앞으로 소형 승용차용 수소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는 부서를 통폐합하고 대형 운송 차량용 에너지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방침이다. 수소차가 대중성을 잃어버렸다는 판단에서다. 수소차 대신 리튬 이온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가 부상하자 수소 충전소 수요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수익성이 악화한 쉘은 영국을 비롯해 세계 전역에 있는 수소 충전소를 폐쇄했다.

쉘 대변인은 "(우리는) 가치를 창출하고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사업에만 투자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EPA
기후 대책에 대한 미국 여론도 악화하는 모양새다. 기업뿐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도 기후 정책에 반감이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80%는 기후 변화에 대한 정치적 대립과 반목이 거슬린다고 답했다. 퓨리서치센터는 지난달 25~29일 동안 미국 18세 이상 성인 884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정치 성향에 따라 기후 변화를 바라보는 입장이 크게 엇갈렸다. 공화당 지지자라고 답한 응답자 중 78%는 기후 운동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에선 30%에 그쳤다.
인류가 기후 변화의 원인이라는 관점에도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 지지층은 71%가 인류가 주된 요인이라고 답했고, 공화당 지지층은 19%에 그쳤다.

다만 기후 대책에 있어 개인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데엔 모두 동의했다.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응답자 중 25% 만이 "개인이 행동을 바꿔 기후 변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답했다. 나머지 응답자는 모두 "국가와 기업의 영역"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기후 변화를 둔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대중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후 대책이 '기후 정치'로 변질하고 있어서다. 블룸버그는 "민주당 지지자든 공화당 지지자든 모두가 정치적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며 "기후 대책이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기후 대책으로 개인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