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약한 고리' 위협하는 큐텐의 '큰 그림'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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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e커머스를 뿌리내린 숱한 인물 중에서 살아남은 창업자는 단 2명이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과 구영배 큐텐 대표다. 지금 한국 유통 산업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될 명장면의 무대를 앞두고 있다. 연결 지점이 거의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의 조우다.큐텐은 티몬·위메프·인터파크쇼핑을 아우른 ‘티메파크’ 연합을 결성했다. SK그룹과 아마존의 후광을 안고 있는 11번가마저 품기 일보 직전이다. 11번가의 최대 주주인 SK스퀘어와 큐텐을 공동 경영하는 방안을 두고 막판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 거래가 성사된다면 김 의장과 구 사장의 외나무다리 혈투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구 사장은 1999년 인터파크의 자회사로 G마켓을 설립했다. 2001년 G마켓 대표로 취임, 2009년에 이베이에 보유 지분을 매각함으로써 수천억 원의 현금을 손에 쥐었다. 그 역시 주로 해외에서 활동한다. 아내가 인도 크샤트리아 계급 출신이라 주로 인도와 싱가포르에서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큐텐을 창업했고, 서울대 자원공학과 출신이라는 이력을 살려 유통업계에 뛰어들기 전엔 인도네시아 에너지 기업에서 근무했었다. 아시아 전역에 걸쳐 있는 그의 네트워크는 가공할만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김 의장과 구 사장은 글로벌 유통 산업이 e커머스로 빠르게 전환되는 과정을 누구보다 면밀히 지켜봤다. 한국이라는 우물 속에 갇혀 있던 ‘유통업자’들과는 달랐다. 둘은 산 정상에 올라 멀리 조망하듯, 유통 산업의 미래를 그렸다. 둘의 목표는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 ‘아시아 최고의 유통기업’이다. 그들이 상정한 경쟁 상대는 롯데쇼핑이나 신세계가 아니라 중국의 알리바바, 미국의 아마존이다.
먼저 칼을 뺀 건 김 의장이다. 쿠팡은 2021년 3월 뉴욕증시에 깜짝 데뷔했다. 상장 첫날 시가총액이 100조원에 육박했다. 지난해 매출 27조원, 와우 회원 1100만명을 기록하며 매년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전국에 걸쳐 대규모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e커머스에 빠른 배송을 무기로 장착한 쿠팡의 비즈니스 모델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국내 전통의 유통 강자들을 압도했다.
객관적인 전략만 놓고 보면, 큐텐 군단의 위력은 아직 태풍급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11번가를 합쳐도 거래액이 20조원(작년 말 기준) 규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9월 말 GMV(총 상품 판매량) 기준으로 대략 추산했을 때 11번가를 합친 큐텐 군단의 규모는 쿠팡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말했다.
외형뿐만 아니라 시너지 효과라는 측면에서도 큐텐 군단은 ‘간판만 여러 개인 오합지졸’이라는 평가도 없지 않다. 쿠팡이 다양한 고객 서비스로 국내 유통산업에서 가장 강력한 멤버십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데 비해 큐텐은 여러 구슬을 하나로 묶을 ‘한방’이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그렇다면 구 사장이 그리는 큰 그림은 무엇일까. 최근 그를 만난 이들은 그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무뚝뚝하지만 자신감이 넘치고, 무엇보다 뚝심이 강하다” 구 사장은 자신만의 청사진을 만들어 놓고, 이를 차근차근 실현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 소비재 제조사들 사이에선 이런 얘기가 회자한다. “내일의 쿠팡이 가장 두렵다” 지금도 쿠팡의 위세가 대단한데 점유율이 더 높아진 미래의 쿠팡은 가공할 수준의 상대라는 것이다. CJ제일제당 등이 ‘신세계 연합군’ 참여를 자청한 것도 쿠팡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대기업이건 중소 상인이건 구사장은 셀러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유통업자다. G마켓이 국내 e커머스 시장을 평정할 때 G마켓은 ‘그때의 갑(甲)’이었다. 한 중소 셀러는 “다른 e커머스 플랫폼에서 물건을 한창 잘 팔고 있으면 으레 G마켓 본부장의 호출이 있었다”며 “그때의 G마켓이 쿠팡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쿠팡보다 아시아 네트워크가 넓다는 것도 큐텐의 경쟁력이다. 한국 셀러들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관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면 큐텐 군단은 강력한 돈줄을 쥘 수 있다. 셀러를 한데 모을 수 있어야 광고 비즈니스가 가능하다. 쿠팡이 강력한 배송망을 통해 회원 수를 확보한 뒤, 그 다음 타깃으로 삼고 있는 것이 셀러 마켓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구글, 메타, 아마존의 주요 수입도 광고다.김 의장과 구 사장의 외나무다리 혈투가 벌어진다면, 국내 유통 산업은 또 한 번 요동칠 것이다. 신세계, 롯데, 이랜드 등 전통의 유통 강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의 전략 변화 또한 지켜봐야 할 관전 포인트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정글에서 살아남은 e커머스 창업자 2인
구 사장과 김 의장 모두 국내엔 은둔의 경영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만 활동을 하지 않을 뿐, 두 사람 모두 엄청난 활동력을 자랑한다. 그들의 무대는 해외다. 2010년 쿠팡을 창업한 김 의장은 국내 기업 최초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쿠팡을 상장시킨 성공 신화를 쓴 이후에도 미국, 대만 등을 오가며 쿠팡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김 의장은 미국 월가와 벤처캐피탈 업계가 주목하는 아시아의 주요 인물 중 한명이다.구 사장은 1999년 인터파크의 자회사로 G마켓을 설립했다. 2001년 G마켓 대표로 취임, 2009년에 이베이에 보유 지분을 매각함으로써 수천억 원의 현금을 손에 쥐었다. 그 역시 주로 해외에서 활동한다. 아내가 인도 크샤트리아 계급 출신이라 주로 인도와 싱가포르에서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큐텐을 창업했고, 서울대 자원공학과 출신이라는 이력을 살려 유통업계에 뛰어들기 전엔 인도네시아 에너지 기업에서 근무했었다. 아시아 전역에 걸쳐 있는 그의 네트워크는 가공할만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김 의장과 구 사장은 글로벌 유통 산업이 e커머스로 빠르게 전환되는 과정을 누구보다 면밀히 지켜봤다. 한국이라는 우물 속에 갇혀 있던 ‘유통업자’들과는 달랐다. 둘은 산 정상에 올라 멀리 조망하듯, 유통 산업의 미래를 그렸다. 둘의 목표는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 ‘아시아 최고의 유통기업’이다. 그들이 상정한 경쟁 상대는 롯데쇼핑이나 신세계가 아니라 중국의 알리바바, 미국의 아마존이다.
먼저 칼을 뺀 건 김 의장이다. 쿠팡은 2021년 3월 뉴욕증시에 깜짝 데뷔했다. 상장 첫날 시가총액이 100조원에 육박했다. 지난해 매출 27조원, 와우 회원 1100만명을 기록하며 매년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전국에 걸쳐 대규모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e커머스에 빠른 배송을 무기로 장착한 쿠팡의 비즈니스 모델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국내 전통의 유통 강자들을 압도했다.
오합지졸 연합이던 큐텐의 승부수
김 의장은 마치 삼국지의 조조와 같았다. 조조는 당시로선 탁월한 보병 전술을 전장에 투입함으로써 중원을 장악했다. 그가 보기에 나머지 약소 유통 플랫폼들은 쿠팡의 위세에 눌려 자멸할 터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큰 그림을 망칠 수도 있는 훼방꾼의 존재를 간과했다. 구 사장이 호시탐탐 한국 복귀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구 사장은 일본 큐텐을 이베이에 매각하면서 겸업 금지 각서를 썼다. G마켓을 매각할 때도 그랬다. 이 모든 족쇄가 올해 풀렸다. 구 사장은 한국 유통 산업이 ‘정리 단계’로 진행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티몬, 위메프의 경영권을 돈 한 푼 안 들이고 추수한 데 이어 인터파크커머스를 인수하고, 11번가까지 노리고 있다.객관적인 전략만 놓고 보면, 큐텐 군단의 위력은 아직 태풍급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11번가를 합쳐도 거래액이 20조원(작년 말 기준) 규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9월 말 GMV(총 상품 판매량) 기준으로 대략 추산했을 때 11번가를 합친 큐텐 군단의 규모는 쿠팡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말했다.
외형뿐만 아니라 시너지 효과라는 측면에서도 큐텐 군단은 ‘간판만 여러 개인 오합지졸’이라는 평가도 없지 않다. 쿠팡이 다양한 고객 서비스로 국내 유통산업에서 가장 강력한 멤버십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데 비해 큐텐은 여러 구슬을 하나로 묶을 ‘한방’이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그렇다면 구 사장이 그리는 큰 그림은 무엇일까. 최근 그를 만난 이들은 그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무뚝뚝하지만 자신감이 넘치고, 무엇보다 뚝심이 강하다” 구 사장은 자신만의 청사진을 만들어 놓고, 이를 차근차근 실현하고 있다는 얘기다.
유통산업 또 한번의 지각변동, 롯데 신세계의 전략 수정 불가
큐텐이 노리는 지점은 쿠팡의 약한 고리다. 쿠팡이 커질수록 쿠팡과의 협상에서 굴욕을 맛볼 수밖에 없는 제조사들, 다시 말해 판매상(셀러)가 큐텐의 주요 타깃이다. 식음료 업계 관계자는 “큐텐이 CJ제일제당, LG생활건강 등 주요 제조사와 이미 접촉 중”이라고 말했다. 두 회사는 쿠팡과 수수료율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또 다른 식음료 업계 관계자는 “최근에 LG생활건강이 쿠팡에 재입점하려다가 쿠팡의 고압적인 자세에 포기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국내 소비재 제조사들 사이에선 이런 얘기가 회자한다. “내일의 쿠팡이 가장 두렵다” 지금도 쿠팡의 위세가 대단한데 점유율이 더 높아진 미래의 쿠팡은 가공할 수준의 상대라는 것이다. CJ제일제당 등이 ‘신세계 연합군’ 참여를 자청한 것도 쿠팡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대기업이건 중소 상인이건 구사장은 셀러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유통업자다. G마켓이 국내 e커머스 시장을 평정할 때 G마켓은 ‘그때의 갑(甲)’이었다. 한 중소 셀러는 “다른 e커머스 플랫폼에서 물건을 한창 잘 팔고 있으면 으레 G마켓 본부장의 호출이 있었다”며 “그때의 G마켓이 쿠팡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쿠팡보다 아시아 네트워크가 넓다는 것도 큐텐의 경쟁력이다. 한국 셀러들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관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면 큐텐 군단은 강력한 돈줄을 쥘 수 있다. 셀러를 한데 모을 수 있어야 광고 비즈니스가 가능하다. 쿠팡이 강력한 배송망을 통해 회원 수를 확보한 뒤, 그 다음 타깃으로 삼고 있는 것이 셀러 마켓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구글, 메타, 아마존의 주요 수입도 광고다.김 의장과 구 사장의 외나무다리 혈투가 벌어진다면, 국내 유통 산업은 또 한 번 요동칠 것이다. 신세계, 롯데, 이랜드 등 전통의 유통 강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의 전략 변화 또한 지켜봐야 할 관전 포인트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