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는 원래 '나물'이 아니라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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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현호의 바벨의 도서관
우주의 모든 생명과 사물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인간의 언어로 명명되는데, 자의적으로(특별한 약속이나 규칙도 없이 처음 짓는 사람에 의해) 주어지는 것에 비하면 매우 강력한 힘을 갖습니다. 때로는 그 짝지어짐에 따라 낙인(스티그마, Stigma) 찍히기도, 소중한 존재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 비둘기의 색
지금부터 집 앞 나무에 둥지를 틀었던 비둘기의 모성애(또는 부성애)를 본 이후 기울었던 마음이 바뀐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주로 재택근무를 했을 당시, 아이들도 학교에 가는 대신 원격수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우연히 그 때 창 너머에 멧비둘기가 둥지를 짓고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자주 관찰하며 온 가족이 모여 부화하는 순간만을 기다렸는데 태풍이 지나간 어느 날 보니 뭔가 달랐습니다. 이상할 만큼 추운 날씨가 이어졌기 때문이었는지 열심히 품었던 알은 부화하지 못했고 겉으로 보기에도 부패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바람 결에 날아갔는지 며칠이 지나자 알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는데, 어미 비둘기는 계절이 바뀐 이후에도 종종 빈 둥지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한겨울이 될 때까지 (내가 듣기에) 구슬프게 구구구 소리 내기를 반복했습니다.그 때부터였을까요? 비둘기는 ‘날개를 푸드덕 거리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만드는 새였으나, 편견을 접고 바라보니 영롱한 빛깔을 뽐내는 동물이자 소중하게 지켜내고 추억할 줄 아는 이웃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때로는 언어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특별한 시간’과 ‘경험’이 쌓여 낙인을 극복하게 만들기도 하는가 봅니다.
물론 비둘기는 도심 속 숲에서도 쉽게 관찰되는 직박구리, 참새, 박새에 비해 빛깔이 아름다운 산새는 아닙니다. 하지만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둘기도 그 자체로 고유의 색깔을 뽐냅니다. 혐오의 시선을 거두면, 멧비둘기의 목덜미와 날개는 단청과 기와처럼 보이고, 집비둘기의 다양한 회색도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만약 외투나 목도리의 색상을 선택해야 한다면, 언제라도 멧비둘기색이나 집비둘기색을 선택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 파는 꽃을 피우고
우리 주변의 수많은 식물 가운데 그것이 ‘언어’로 표기되었을 때, 땅에 뿌리를 내린 모습보다 식탁 위의 먹거리로 인식되는 편이 자연스러운 종들이 있습니다.사과, 배, 딸기처럼 향기가 느껴지는 열매는 물론이고 수박, 단감처럼 껍질 단단한 과일도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향긋한 열매를 맺는 식물이니 꽃을 연상하는 일이 자연스러운데 파는 좀 다릅니다. 각종 반찬에 어울려 감칠맛을 더해주는 식재료인 파를 바라보며 꽃을 연상하기는 참 쉽지 않습니다. 파와 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인간의 편견이겠지만 말입니다. 꿀벌을 품은 파꽃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의 작품처럼 몽글몽글해서 난초의 끝에 솜뭉치를 달아 놓은 듯 푸근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피트 아우돌프는 뉴욕의 공중보행로 하이라인파크부터 시카고 루리가든을 설계한 정원가로 유명합니다. 그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도 제주도 베케, 평강수목원, 일곱계절의 정원처럼 여러해살이풀과 이끼 등을 조화롭게 배치한 정원이 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제한된 공간에 자연 환경을 갖춰 ‘작은 생태계’를 가꾸는 ‘비바리움’과 ‘테라리움’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 고사리는 원래 나무다
고생대부터 살아온 양치식물 고사리는 우리에게 나물 반찬이나 해장국 재료로 익숙하지만, 무럭무럭 자랄 경우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그늘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고사리류로 분류되는 나무고사리와 우리가 먹는 고사리는 다른 것입니다. 그 뿌리가 같습니다)공룡들도 나무고사리를 스치며 거닐었을 상상을 하니 두근거립니다. 지난 겨울, 호주 빅토리아주의 단데농 레인지스 국립공원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야생 앵무새 서너 마리가 자리를 잡았던 한 나무는 마치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것처럼 정교하고 빛을 아름답게 투과했습니다. 유칼립투스나무와 같이 호주의 자생 식물이겠거니 생각했던 나무가 다름 아닌 나무고사리였습니다. 앞으로 육개장이나 비빔밥을 먹을 때마다 생각이 스칠 듯합니다. ‘고사리는 나물이 아니라 나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