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색소폰 분 브랜든 최...그걸 품어준 지중배와 한경아르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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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한경아르떼필하모닉 정기연주회딱 200년전인 1823년 10월 26일은 베버의 오페라 '오이리안테'가 초연된 날이다. 지난 2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의 9번째 정기연주회에서는 공연의 첫머리를 '오이리안테' 서곡으로 열었다. 초연 후 200년이라는 의미를 기리기 위함이었는데, 전체적으로 선이 굵으면서도 잘 짜인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 무릎꿇고 앙코르
지중배가 이끈 비창,
설득력 있지만 프레이징 아쉬울 때도
두 번째 순서는 미국의 현대 작곡가 폴 크레스톤의 ‘알토색소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었다. 독주를 맡은 브랜든 최는 시종일관 날렵한 연주를 선보였다. 한국인 클래식 색소포니스트 중 처음으로 미국 링컨센터에서 독주회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를 알려줬다.브랜든 최는 1악장에서 위협적인 관현악에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보여줬고, 2악장에서는 농익은 음색으로 감미로운 연주를 들려줬다. 활기차고 재치있게 연주한 3악장 역시 훌륭했다. 다만 1악장에서는 객석보다 지휘자 쪽을 더 자주 바라보면서 연주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때로 색소폰 독주가 관현악에 묻히는 경향이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현악기나 타악기라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색소폰처럼 방향성이 강한 관악기는 얘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빼어난 솜씨로 연주한 2악장 카덴차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 브랜든 최는 음량이 작은 연주자가 결코 아니기에 이런 인상이 더욱 강해졌다. 오케스트라는 각 악장의 성격(각각 ‘정력적’, ‘명상적’, ‘리듬적’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에 딱 들어맞는 연주를 들려주면서 독주자를 충실히 뒷받침했다.브랜든 최는 앙코르로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장드니 미샤의 ‘코코로’(마음)을 들려주었는데, 특이하게도 무대에 두 무릎을 꿇은 채 연주했다. 곡 자체가 일본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만큼 일본식 정좌 자세로 연주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악상 자체는 꼭 일본적이라기보다는 동아시아 공통의 어법에 더 가깝게 들렸다. 상당히 흥미로운 경험이었고, 농현을 섬세하게 구사한 연주도 훌륭했다.전반부를 비교적 무난하게 이끌어간 지중배 지휘자는 후반부 순서로 연주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제6번, 일명 ‘비창 교향곡’에서 곡의 감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해석을 들려주었다. 1악장만은 제1주제부에서 프레이징이 다소 애매하고 성급했던데다, 발전부 직전에 바순이 전혀 들리지 않아 아쉬웠다. 이 대목의 셈여림이 극단적이기는 하지만(악보에는 무려 ‘pppppp’라고 표기된다), 전혀 들리지 않는다면 역설적으로 그 극단성은 의미를 잃고 만다. 제대로 연주하기가 무척 어려운 대목임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상당히 설득력 있는 해석이었고, 풍부한 현악이 돋보인 2악장이나 활기차고 극적이며 잘 짜인 3악장, 마지막까지 처절하면서 뜨거웠던 4악장 모두 적절한 수준 이상의 연주였다. 앙코르로는 현악 합주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했는데, 어느모로 보나 깔끔하고 정석적인 해석이었으며 공연을 마무리하기에 적당했다.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지중배 지휘자가 나와서 마이크를 잡았다. ‘동양화에는 여백의 미가 있다. 동양화가 아름다운 건 그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우리도 악장 사이에 박수를 자제함으로써 여백의 미를 살려보는 게 어떨까’ 하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지휘자의 재치 있는 표현에 공감하며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굳이 이런 말까지 사전에 해야 할까 싶어 좀 씁쓸하기도 했다.
폴 크레스톤의 협주곡 1악장이 끝나고 작게나마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나온 것은 지휘자의 당부가 꼭 필요한 것이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사고였다. 사전 발언이 소용없게 되지 않았느냐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그런 당부가 없었다면 박수는 더 컸을 것이다. ‘비창’ 3악장이 끝난 다음에 터진 열화와 같은 박수는 좀 달리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이 대목에서 박수가 터지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봐도 비교적 흔한 현상이고, 굳이 참사라고 표현할 일은 아니다. 3악장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얼마든지 박수를 받을 만한 연주이기도 했고 말이다. 최종적으로 4악장이 끝난 뒤 길게 이어졌던 침묵을 생각해 보면, 지휘자가 말한 ‘여백의 미’는 불충분하나마 실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황진규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