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내다보고 여기에 투자"…일본 최대 VC가 꼽은 미래 기술은?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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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시부야는 '스타트업의 성지'로 불립니다. 2019년 11월 롯폰기힐스에 있던 구글 재팬이 시부야스트림 빌딩으로 사옥을 이전하는 동시에 이곳에 액셀러레이터 공간인 '구글 포 스타트업'을 만들며 시부야의 존재감을 단적으로 보여줬죠.
일본에서 가장 활발하게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인 글로벌브레인도 시부야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최근 신한금융그룹과 500억원 규모 벤처펀드를 공동 결성하기도 했는데요. 한경 긱스(Geeks)가 유리모토 야스히코 글로벌브레인 대표를 직접 만나, 일본 벤처투자 시장 상황과 유망 기술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글로벌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일본 최대 벤처캐피털(VC)이 10년 뒤를 내다본 미래 기술로 양자 컴퓨터를 지목했다. 생명과학, 푸드테크, 기후테크도 지금 주목하는 기술 분야로 꼽았다.유리모토 야스히코 글로벌브레인 창업자 겸 대표는 "10년 전에 투자한 우주, 로보틱스, AI 분야는 어느새 현실화가 됐다"며 "앞으로 5년, 10년을 내다보고 가장 주목하는 기술 중 하나는 양자컴퓨터"라고 말했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에 비해 엄청난 연산 및 소인수분해 속도를 자랑한다. 기존 암호체계를 완전히 바꿀 기술로, 신약 개발에서도 엄청난 성과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매켄지는 양자기술 시장이 지난해 총 8조6656억원에서 2030년 101조2414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리모토 대표는 지난 25일 일본 도쿄 시부야 본사에서 진행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운용 자산의 40% 정도를 해외 스타트업에 투자한다"며 "딥테크 기술은 해외 시장에서 통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전 세계 스타트업을 다 놓고 비교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미국 영국 인도 한국 등 전 세계 10곳에 거점을 두고 있는 글로벌브레인이 한해 검토하는 초기 스타트업만 5000개가 넘는다. 그중 2~3% 정도만 실제 투자로 이어지는 셈이다.
1998년 설립된 글로벌브레인은 2001년 10억엔(약 90억원) 규모로 첫 벤처펀드를 결성한 이후, 올해 10월 기준 운용자산이 2604억엔(약 2조3400억원)으로 260배 커졌다. 이중 절반 이상이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펀드다. 회사는 일본 통신사 KDDI, 미쓰비시일렉트릭, 기린 등 14개 사의 CVC를 운용하고 있다.
대기업과 은행이 주도하는 일본 스타트업 투자 시장은 2020년 5554억엔에서 지난해 8774억엔 규모로 증가했다. 여기에 기시다 후미오 정부가 2027년까지 스타트업 투자 시장을 10조엔으로 10배 이상 키우는 내용의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지원사격에 나섰다.Q. 어떻게 보수적인 '은행맨'에서 가장 모험적인 벤처캐피털리스트로 변신하게 됐나요?
A. 지금은 도쿄 시부야가 스타트업의 성지이지만 예전엔 아키하바라에 창업가들이 많았어요. 1990년 초 후지은행(현 미즈호 은행) 아키하바라에서 기업 대출 업무를 담당했는데, 그때 소프맵(Sofmap) 같은 스타트업의 창업가를 만나면서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이후 씨티은행 프라이빗뱅킹(PB) 설립멤버로 합류하면서 부동산 디벨로퍼 모리트러스트의 모리 아키라 회장님을 만나게 됐죠. '누구도 하지 않으니깐 지금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매우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제안하자, 아키라 회장님이 투자를 결정했어요. 그렇게 1998년 글로벌브레인을 만들었습니다.
Q. 지난 25년간 일본 벤처 시장은 어떤 변화를 겪었나요?
A.1999년 도쿄증권거래소에 스타트업 상장시장인 마더스가 설립됐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비상장 투자가 활발하지 않았어요. 글로벌브레인이 2001년 처음으로 결성한 벤처펀드가 10억엔 규모였죠.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일본 벤처 시장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호리에 라이브도어 그룹 대표가 2006년 분식회계로 기소돼 IT업계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죠.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시장이 전반적으로 힘들었어요.일본 벤처 시장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예요. 미국과 유럽 벤처 시장이 얼어붙은 지난해까지도 9조원가량이 벤처 시장에 투자됐어요. 하지만 올해 8월부터는 일본도 투자금액이 떨어지면서 '투자 겨울'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Q. 8월부터 일본에도 '투자 한파'가 불기 시작한 것 같다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까요?
A.어려운 시기에 기회가 있습니다. 인식의 전환이 중요해요. 2008년 리먼 쇼크 이후 우버, 슬랙이 탄생했어요. 일본의 메루카리, 라크스루, 베이스푸드도 모두 리먼 쇼크 이후 성장한 기업이에요.
시장이 어려울 때면 경쟁 관계가 바뀌고 인재가 여기저기 옮겨 다니니까 좋은 회사가 생겨나기 유리합니다. 그때 움츠리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야 해요. 하지만 겨울일수록 출자자(LP)도 실적을 입증한 VC에 몰리기 때문에, VC도 10년, 20년 이어가면서 실적을 내는 게 중요합니다.
Q. 기시다 후미오 정부의 '스타트업 5개년 계획'이 어떤 도움이 되고 있나요?
A. 8월부터 벤처 투자가 줄어든 게 계속 이어질지에 예의 주시하고 있는데요. 정부도 스타트업 투자 예산을 늘린다고 했으니 그 자금이 버팀목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한국 벤처투자 시장이 모태펀드 중심인 것과 달리 일본은 벤처펀드 LP가 대부분 은행과 대기업입니다. 정부 예산까지 투입되면 투자 겨울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일본은 CVC가 왜 활발한가요?
A. 대기업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거나 기술 확보 차원에서 스타트업 투자를 많이 하고 있어요. 자체 CVC를 두는 곳도 있고 우리 같은 VC에 CVC 펀드 운용을 맡기기도 하죠. 결국 관건은 해당 분야를 얼마나 잘 아는 전문가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가예요. 규모가 작으면 리서치 인력이나 볼 수 있는 영역이 제한적이겠죠.
Q. 글로벌브레인은 지난해 일본 VC 중 투자 금액 1위였는데요. 올해는 어떤가요?
A. 지난해 150개 회사에 288억엔을 투자했는데요. 올해 투자 건수는 125개로 줄어들 것 같은데 투자금액은 비슷한 수준입니다. 다른 VC들이 위축돼 있기 때문에 우리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2001년 10억엔 규모로 시작한 펀드가 지금은 운용자산 2600억엔으로 260배 늘어났습니다. 세계 10대 VC가 되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운용자산을 더 많이 늘려야죠.Q. 해외 거점만 10곳을 두고 있는데요. 왜 해외투자에 집중하나요?
A. 전체 운용자산의 40% 정도를 해외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딥테크는 해외 시장에서 통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전 세계 스타트업을 다 놓고 비교해 봐야 합니다. 글로벌브레인이 한해 검토하는 전 세계 스타트업이 5000개입니다. 그중 2~3% 정도만 실제 투자로 이어지는 셈이죠.
VC는 '로컬 비즈니스'라고 하죠. 현지 대학, 기업과 네트워크를 몇 년간 쌓아놔야, 일본 투자기업이 해외 진출을 할 때 제대로 지원할 수 있게 됩니다. 또 그 안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내부에서 어떤 기회와 리스크가 있는지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뉴스만 보면 위기인 것 같지만 현지에 사람이 있으면 기회가 보이거든요.
Q. 신한벤처투자와 공동으로 일본 펀드 결성했는데요. 어떤 기업에 투자할 계획인가요?
A. 한국 일본 모두 딥테크 기업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특히 한국은 콘텐츠 분야도 좋게 보고 있습니다. 한국 스타트업을 만나보면 글로벌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헝그리 정신'이 있더군요. 시작부터 해외 진출을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일본 스타트업은 내수 시장만 겨냥해도 상장할 수 있기 때문에,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지 않은 기업도 많거든요.
Q. 10년 전과 비교해 지금 주목하는 기술은 무엇인가요?
A. 10년 전에 우주 로보틱스 AI에 투자했는데 지금 정말로 현실화가 됐습니다. 앞으로 5년, 10년을 내다보고 가장 주목하는 기술 중 하나는 양자 컴퓨터입니다. 라이프사이언스, 푸드테크, 기후 테크, 생성 AI도 지금 주목하는 기술들입니다.Q. 올해 투자한 기업 2곳을 꼽는다면요?
A. 카페 로봇을 운영하는 뉴이노베이션과 글로벌 주식투자 및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르모증권이 대표적입니다. 모두 직접 발굴한 회사입니다. 25년간 VC 대표를 맡고 있지만 직접 기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게 여전히 즐겁습니다.
도쿄=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