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려대 박물관의 '가마우지 실종 사건'…허술한 기증품 관리

창강 조속의 17세기 가마우지 그림 받은 후 분실
박물관서는 지난 6월에야 부총장 보고
감사 후 학예사 1명 사직…도난 신고했지만 경찰도 '속수무책'
고려대 박물관에 2021년 8월 기증됐던 창강 조속의 가마우지 작품. 가정집에 걸려 있던 상황에서 촬영됐다. /기증자 제공
고려대학교 박물관이 기증받은 유물을 분실하고도 이를 2년 동안 학교 당국에 숨겨온 것으로 확인됐다. 분실된 작품은 회화적 가치가 높은 창강(滄江) 조속(趙速, 1595~1668)의 가마우지 그림(사진)으로 알려졌다.

27일 한국경제신문의 취재에 따르면 고려대 박물관은 2021년 8월 고령 박씨의 한 후손에게서 17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유물을 다수 기증받았다. 이후 학교 측은 160여점을 인수했다는 목록을 내부적으로 작성했는데 여기에는 조속의 가마우지 그림 등 값나가는 물건은 빠져 있었다.

조속은 글씨와 그림 등에 두루 능해 ‘시서화 삼절(詩書畫 三絶·시서화가 모두 뛰어난 사람)’로 평가받았다. 특히 화조도가 일품이었고 까치 등 새 그림은 그 중에서도 발군이었다. 그의 작품 중 일부는 국보·보물급으로 평가받아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박물관 등도 소장하고 있다.


○기증품 목록에 가마우지는 없었다


박물관은 통상 기증을 받으면 해당 물품의 가치를 대략적으로 기재하고 기부 영수증을 발급한다. 박물관 측에서는 지난 3월 기증자에게 영수증과 기부증서 등을 보냈지만, 여기에 당연히 첨부됐어야 할 기증물품 목록은 딸려 있지 않았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기증자 측에서 수소문 끝에 지난 5월말 목록을 개인적으로 입수했는데, 이 목록에는 조속의 그림 등이 아예 누락돼 있었다. 실수로 그것만 빠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증자 측에서 나머지 물품은 여행가방에 담아 인계했지만 조속의 작품은 소중하게 생각하여 따로 통에 담아 미리 넘겨주었고, 당시 현장에서 박물관장, 학예사들과 조속의 작품에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 고려대 학예사 한 명은 조속의 가마우지 그림을 알아보고 “이 정도면 관리 잘 한 것”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 측도 작품을 받았던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 고려대 관계자는 “조속의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을 받았으나 현재 없어진 상태라는 점은 맞다”며 “분실물을 찾기 위해 박물관에서 2만점에 달하는 소장품을 전부 뒤졌는데 찾지 못했고, 관리 부실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다만 학교는 “잃어버린 것이 단 한 점”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기증자 측은 “이외에도 갓솔 등 여러 물건이 있었으며 이에 관해 대화한 내용도 기억하고 있으나 현재로선 증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조속의 그림을 검색해 보면 경매시장에 불과 수백만원에도 나온 것이 있다. 그러나 미술계에서는 그런 그림은 상당수 가짜라고 본다. 고려대 측의 해명대로 단순 분실일 수도 있지만, 도난당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진짜’를 찾는 이들의 수요가 항상 있기 때문이다. 기증자 측은 “민가에서 보관했기 때문에 그림상태가 최상은 아니었더라도 화풍, 다른 유물과의 관계, 집안 내력 등을 감안하면 그 그림이 진품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부가 보성전문학교(고려대 전신)를 나온 인연이 있어 기증했는데 이제와서 ‘우리도 왜 잃어버렸는지 모른다’는 식으로 대응해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일단 기증한 후에는 분실했든 어떻든 우리 쪽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는 태도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기증자 항의하자 2년만에 부총장 보고


고려대 박물관은 기증품 분실과 기증자의 목록 요청 사실을 2년 동안 뭉개다가 지난 5월말 개인적으로 물품 목록을 입수한 기증자가 강력히 항의하자 지난 6월 초에 상급자인 부총장에게 알렸다. 고려대 박물관이 정식으로 기증자에게 목록을 발송한 것은 6월 중순이다. 기증자의 요청이 강해질 때까지 목록을 주지 않고 버틴 셈이다.

고려대 측은 2년이 다 되어 가도록 기증물품 목록을 주지 않은 점에 대해 “감정에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조속의 그림이 빠진 부분에 대해서는 “잃어버렸기 때문에 넣을 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했다. 외부 감정을 받는 과정에서 작성된 목록이므로 분실한 물건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이고 의도적으로 빠뜨린 것은 아니라는 해명이다. 그러나 미술계에서는 “기증물품 목록을 기증자에게 바로 만들어 주지 않은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아무리 감정에 시간이 소요된다고 해도 2년이나 걸릴 수는 없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고려대는 지난 여름 관련자 4명에 대한 감사를 실시했다. 한 명의 학예사가 책임을 지고 사직했고, 지난 9월 정기 인사에서 박물관장도 교체됐다. 이원규 고려대 부총장은 “지난 6월에야 기증품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보고받았다”며 “기증자에게는 충분히 사과와 설명을 했다고 생각하고, 경찰서에 분실과 도난 가능성에 대한 수사를 요청한 상태이며 구체적인 내용은 수사를 거쳐야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고려대는 수사 과정에서 학예사 2명 중 한 명은 휴대폰 포렌식을 받았고, 다른 한 명은 이를 거부해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받았으나 특별한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건을 맡고 있는 성북경찰서 관계자는 “조사 당시 담당자들은 공통적으로 ‘그게 없어질 리가 없고, 이유는 알 수 없다’고 진술했다”고 했다. 기증자 측의 진술은 따로 청취하지 않았다. 그는 “현장 모습 등은 고려대 감사관실에서 제출된 것으로 확인했으며, 시간이 흘러 CCTV 자료가 남아있지 않으니 더 확인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