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여성 페르소나 입은 '노르마'...압도적인 무대, 아쉬운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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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공연에는 타이틀 롤인 소프라노 여지원(노르마)을 비롯해 메조 소프라노 테레사 이에르볼리노(아달지사), 테너 마시모 조르다노(폴리네오), 베이스 박종민(오르베소) 캐스팅으로 진행됐다.이 작품은 2016년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됐다. '천재 연출가'로 불리는 알렉스 오예가 연출을 맡아 이탈리아 작곡가 벨리니(1801~1835)의 오페라 노르마를 현대적으로 각색했다. 사회지도자인 여사제 노르마의 금지된 사랑과 배신, 숭고한 희생이 스토리의 핵심이다.
이날 무대는 175분간 현대적인 연출과 입체적인 캐릭터로 관객들을 압도했다. 연출가 오예가 밝혔듯 "현시대와 호흡하는 오페라"라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무대였다. 그의 말처럼 스토리 곳곳에 현대인이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를 살리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로베르토 아바도가 이끄는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서곡으로 예열했다. 국립심포니는 세심한 꾸밈음과 탁월한 강약 조절, 성악가들과의 수려한 호흡으로 벨칸토 오페라의 아름다움을 살렸다. 사랑의 고통으로 번민하는 주연들이 등장할 때는 목관 파트가 매우 여린 선율로 이들을 뒷받침하며 감정선을 극대화했다.무대나 의상에서는 여러 시대와 국가를 섞어 관객과의 공감대를 찾으려 했다. 종교적인 의식을 치르는 장면은 정통 가톨릭교를 연상케 했다. 노르마를 둘러싼 교도들은 하얀색 고깔모자 복장을 했는데 이는 미국의 KKK단의 복색과 유사했다. 사랑과 화합으로서의 종교가 아닌, 사회적 압제와 폭력으로서의 종교를 표현하고자 하는 듯했다.
이 오페라의 승패는 단연 여주 노르마의 역량에 달려있다. 성악적으로 고난도의 테크닉을 구사해야 하고, 누구보다 복잡다단한 인물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르마의 역할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국내에서는 그간 3번밖에 공연되지 않았다는 뒷말이 나올 정도다.
소프라노 여지원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 높은 위치에서 '정결한 여신'을 불렀다. 그는 여사제다운 성스러움과 사랑으로 불안에 떠는 인간적인 면모를 섬세하게 연기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성량과 음색의 선명함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았다. 표현력은 빼어났지만, 성악적인 기교와 아쉬운 발성으로 여사제다운 압도적인 포스는 덜 부각된 측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공연은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들로 공감을 자아냈다. 노르마뿐 아니라 그의 연적인 아달지사의 캐릭터도 세심하게 그려냈다. 아달지사는 일반적인 연적 캐릭터와 달리, 노르마를 한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연대하려는 인물로 표현됐다. 이들의 케미는 노르마와 아달지사의 이중창에서 잘 드러났다. 두 음색의 상호보완적인 어울림은 스토리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