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 11만원' 묶자…나주서 일하던 숙련 외국인들 다 떠났다

외국인 250만 시대
(3) 어설픈 임금 통제에 농가 아우성

탁상행정에 인력시장 '텅텅'
시의회 "일당 더 요구하면 신고"
캠페인 벌이자 불법체류자 '썰물'
인력공급 줄며 임금 되레 치솟아

농가 "웃돈 주고 외국인 모셔와
숙련자 못구해 농사 망칠판" 분통
27일 전남 나주 산포면의 베트남인 밀집 거주지역 편의점 앞에 원룸 임대 공고가 붙어 있다. 나주시가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을 제한하자 외국인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원룸 공실이 급증했다. /김우섭 기자
“이 동네에 베트남인이 올초 1000명이었는데 400명으로 줄었습니다.”

지난달 말 전남 나주 일대 배 농가에는 초비상이 걸렸다. 지역 특산물인 배 수확이 한창이지만 일꾼을 구할 수 없어서다. 나주 산포면사무소 인근 K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지난 4월 나주시의회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일당을 11만원으로 제한하자는 캠페인을 한 뒤 외국인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며 “탁상행정식 임금 통제로 농가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외국인 근로자 ‘가격 통제’의 교훈

27일 나주시에 따르면 지역 농가 일손의 90%를 외국인 근로자가 맡고 있다. 연초 기준 나주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3500명에 달했다. 그런데 4월 시의회와 의원연구단체인 ‘농촌 외국인 근로자 도입을 위한 연구회’가 일당을 11만원으로 묶자 인력이 단기간에 급감했다. 시의회는 일당 11만원 이상을 요구하는 외국인을 신고하는 캠페인까지 벌였다. 지역 내 불법체류자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웃돈요구 신고까지 하겠다고 하자 대거 빠져나간 것이다. 배 농사를 하는 이진주 부성농업 실장은 “특산물인 배나무 작업이나 고추 따기 등 농장에 투입되던 외국인 노동자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말했다.

임금은 시의회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4월 11만원으로 잠깐 낮아진 일당은 9월 말부터 15만원 전후까지 치솟았다. 인근 나주 산포면 매성리도 마찬가지였다. 평소라면 일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외국인 노동자로 붐비던 C편의점 앞은 한산했다. 가끔씩 보이는 외국인에게 말을 걸어도 놀란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여러 차례 질문을 받고서야 “불법 체류자가 아니다”라고 한마디 하는 게 전부였다. 한 달 전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서 매성리 거주 외국인 20명을 본국으로 송환해 경계심이 높아졌다고 편의점 직원은 설명했다. 나주 영산동 일대 태국인 밀집 지역도 외국인 대다수가 산업단지가 있는 인근 영암 등지로 빠져나가 썰렁한 모습이었다.

○외국인 이탈에 지역경제 흔들

외국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지역 경제도 타격을 받았다. 당장 원룸 빌라 공실이 크게 늘었다. 매성리 남도부동산 관계자는 “올초만 해도 인근 원룸에 공실이 거의 없었지만 요즘엔 신규 유입자가 없어 공실이 늘었다”며 “월세도 30㎡ 기준으로 2만~3만원 낮아졌다”고 말했다.인건비 하락은커녕 웃돈을 주고 외국인 노동자를 모셔와야 하는 농가는 분통을 터뜨렸다. 인력 부족으로 수확을 제때 못하는 농가가 수두룩했다. 이 실장은 “인력사무소에 일용직 8명을 요구하면 5명도 안 오는 경우가 많다”며 “15만원 이상을 약속해야 겨우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고추 농가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인력의 100%를 불법 체류 외국인으로 고용하는 한 고추농가 관계자는 “고추 농사는 숙련 기간이 필요한데 작년에 가르쳐 놓은 외국인이 다 떠났다”며 “인력 부족으로 수확 시기를 놓칠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특정 지역이 어설프게 가격 통제에 나섰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나주는 조선소가 있는 전남 영암 등이 인접해 있어 인력 이동이 쉬운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인근 개미인력 관계자는 “SNS를 통한 네트워크가 잘 형성돼 있어 돈을 더 주는 일자리를 내국인보다 더 잘 안다”며 “추가 일당 1만~2만원에 강원 정선으로 떠난 외국인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전했다.‘불법 체류 신고’라는 강제 수단으로 억제할 경우 외국인 이탈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주시 관계자는 “시장경제에서 임금통제 정책은 일자리 생태계의 교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나주=김우섭/장강호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