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근의 병영터치] SNS '허위조작정보' 한 방이 폭탄보다 세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서 '인지전' 위력…북한군도 모방 수행 가능성
"5세대 전쟁 새 영역, 중·러 적극 활용"…전략사 창설시 고려해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전쟁에서도 글로벌 소셜미디어(SNS)가 '총성 없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전쟁 당사국들은 각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국제 여론을 이끌고, 상대국 정부와 군대, 국민에게 심리적 타격을 가하려고 생산한 '허위조작정보'를 SNS에 유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행위가 제5세대 전쟁의 새 영역으로 주목되는 '인지전'(認知戰·Cognitive Warfare)의 한 방편이라고 29일 분석했다.

두 전쟁에서 글로벌 SNS를 무기로 하는 인지전 양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가짜뉴스를 포함한 정교한 허위조작정보는 상대 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민심을 교란하며 군대의 사기를 급격히 떨어뜨려 전의(戰意)를 상실토록 하는 목적으로 생산되며 파괴력 또한 상당한 수준이다.

"SNS에서 쏜 허위조작정보 한 방이 폭탄보다 위력이 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 이스라엘 인지전에 된통 당한 하마스 보복전 치열…허위조작정보 SNS에 넘쳐
전문가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러시아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키이우를 버리고 탈출했다거나 이미 항복했다는 가짜 뉴스를 SNS에 올려 우크라이나 정부 인사들과 국민들의 심리적 동요를 유도하려 한 것도 인지전의 대표적 사례로 꼽고 있다. 2년여 전인 2021년 5월 이스라엘과 하마스 교전 때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인지전에 된통 당했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자정 시간대 트위터에 공군과 지상군이 동시에 가자지구를 공격하고 있다는 영문 메시지를 올렸고, 주요 외신들이 지상군이 가자지구로 진입했다고 타전했다.

이스라엘군이 지하에 은신처를 마련한 하마스를 끌어내고자 이런 허위정보를 흘렸고, 주요 외신들이 이를 퍼 나르는 '도구'가 된 셈이다. '하마스의 메트로'로 불리는 지하 터널은 2014년 전쟁 때 이스라엘에게서 참혹한 피해를 본 하마스가 공습 시 피난처, 무기 운반 및 저장용으로 만들어, 그 규모가 수 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결국 허위정보에 속은 하마스와 지하드 조직이 가자지구 지하 시설에 숨겨뒀던 대전차 미사일 부대와 박격포 부대 등을 지상으로 끌어내자, 이스라엘군은 기다렸다는 듯 전투기 160대를 띄워 지하 시설을 파괴했다.

전쟁 상황에서 일방적인 발표 또는 허위조작정보가 일파만파 파문을 불러온 사례는 또 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발생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 폭발 참사와 관련, 하마스는 이스라엘 소행으로 몰아쳤고,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다수 외신이 하마스 주장을 그대로 전달했다.

이후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을 향한 분노가 들불처럼 일었고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라크, 시리아에 있는 미군기지에는 로켓과 드론 공격도 가해졌다.

이스라엘군이 자국군의 공습 흔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이슬라믹 지하드 대원들이 로켓 발사 실패와 관련해 대화하는 감청 정보(SIGINT·시긴트)까지 공개하자 이스라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서방국들이 늘었고, 하마스 주장을 여과 없이 전달했던 유수의 외신들도 자사 보도에 실수가 있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헬리콥터를 격추하는 영상은 비디오 게임을 연출한 것으로 들통났고, 미국이 이스라엘에 80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승인했다는 백악관의 가짜 문서도 퍼졌다.

인형을 소녀로 둔갑시켜 장례식을 치르는 선전용 가짜 영상을 만들었다가 인형의 얼굴이 영상에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거짓으로 드러났고, 엑스(X)에서만 200만 조회수를 기록한 이스라엘군 고위 장성 생포 장면도 아르메니아계 분리독립 세력의 지도자 체포 모습이었다.

◇ 한국군엔 미지의 영역…전문가들 "인지전 대응 및 수행능력 갖춰야"
글로벌 SNS 등을 무기로 하는 인지전은 한국군엔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지난 6월 인지전 수행을 위한 전력증강 방향 연구를 용역 의뢰한 것은 첫걸음으로 볼 수 있다.

이 연구에는 인지전을 수행하는 전투 요원 양성, 수행 플랫폼 종류, 네트워크 등의 전력을 확보 방안이 포함됐다.

지난 23~24일 실시된 국회 국방위원회의 육·해·공군본부 국정감사에서도 최근 전쟁에서 두드러진 인지전에 대한 군의 보고나 의원들의 질의는 전혀 없었다.

대신 인지전과 함께 새 전쟁영역으로 주목되는 전자기스펙트럼 작전에 대비한 조직과 전력을 갖추겠다는 육·해군의 보고는 있었다.

군은 지난 8월 시행된 한미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때 북한이 전시 또는 유사시 유포할 수 있는 가짜뉴스(정보) 대응 시나리오를 처음 적용했다.

이는 인지전 교범까지 갖추고 실제 대응 및 실행하는 미군의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버전 능력이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북한군은 최근 전쟁에서 두드러진 인지전을 모방 수행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군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합참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양상을 분석한 결과, 하마스가 북한과 무기거래, 전술교리, 훈련 등 여러 분야에서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이 가짜뉴스 등으로 공포와 혼란을 조성하는 심리전에도 대응할 수 있는 군사대비태세를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힌 것도 이런 판단에 따른 것이다.
최영찬 합동군사대 교관 등 전문가들은 "5세대 전쟁의 새로운 영역으로 논의되는 인지전에 대해 미국, EU, 중국, 러시아 등이 전략으로 수립하고 분쟁 및 전쟁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면서 "우리 군도 이론적 논의를 넘어 인지전의 역량을 구비하고 필요시 공세적인 인지전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인지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경우 정치·군사 전략적 의도에 부합한 지지 확보와 유리한 상황 조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인지전 수행 능력을 구비하기 위해서는 교리부터 조직, 인력 등 합동전투발전 분야에서 체계적인 준비와 시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진행 중인 전략사령부 창설 작업에서 전자기스펙트럼뿐 아니라 인지전과 관련한 합동 대응 조직 구비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