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 게이트·팬데믹 견딘 '벤츠 수호자'…2030년 100% 전기차 전환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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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CEO독일의 자동차 기업 메르세데스벤츠그룹은 전기차로의 대전환을 맞은 회사의 운명을 스웨덴 출신 영업통에 맡겼다. 메르세데스벤츠그룹은 지난 7월 올라 칼레니우스 최고경영자(CEO)의 임기를 2029년까지로 연장했다. 칼레니우스가 CEO로 취임한 뒤 4년 동안 탁월한 재무적 성과를 낸 점을 인정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세계 자동차 기업들은 2030년을 전기차 시대의 승자와 패자를 결정지을 분수령으로 본다. 칼레니우스가 연장된 임기 동안 메르세데스벤츠그룹의 미래를 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는 뜻이다. 칼레니우스는 임기가 연장된 뒤 입사 30년 만에 독일 국적을 취득했고, 자신의 SNS에 “독일에서 가장 인정받는 기업의 미래를 이끌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고 했다.
'왕관의 무게' 견뎌낸 非엔지니어
경영자 육성 프로그램으로 입사 후
30년간 영업·마케팅 책임자로 근무
독일식 관료제 악습 끊어낸 공로 인정
벤츠 전성기에 '차세대 리더'로 낙점
'클래스'가 다른 리더십으로 재신임
디젤게이트·에어백 리콜·코로나…
삼중고 딛고 40조원대 '역대급 이익'
2025년부터 모든 신차 전기차로 출시
자체 개발 차량 OS는 내년부터 적용
업계 분위기는 녹록지 않다. 미국 테슬라는 자율주행을 앞세우고 있고, 베트남 빈패스트는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이르는 시간) 6.5초짜리 402마력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만들어 치고 올라오는 상황이다.
벤츠 왕국 정점에서 CEO 자리에
메르세데스벤츠그룹(당시 다임러)은 2018년 가을 그룹 연구개발부문장이었던 칼레니우스를 차기 CEO로 지명했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메르세데스벤츠그룹의 첫 외국인 CEO였다.당시 메르세데스벤츠그룹은 전임자 디터 제체 회장의 지휘 아래 2010년대 중반부터 BMW를 누르고 명실상부 최고의 고급 차 브랜드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시장 한쪽에선 테슬라가 기하급수적 성장을 시작하며 업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었다. 산업의 격변기를 앞두고 영업통에 가까운 칼레니우스가 차기 CEO로 지명되자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칼레니우스가) 2015년 이사회에 합류했을 때부터 기술적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 제기됐다”고 했다. 칼레니우스는 1993년 경영자 육성 프로그램으로 입사해 주로 미국과 영국 자회사 등에서 경험을 쌓고 본사에서 연구개발, 영업·마케팅 책임자를 지냈다.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기술과 관련한 전문성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스톡홀름경제대에서 재무·회계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문과 출신이다. 제체 전 회장이나 경쟁사 폭스바겐그룹의 토마스 셰퍼 CEO는 엔지니어 출신이다.그런데도 칼레니우스가 CEO로 선택된 이유는 그가 경영진에 합류한 뒤 독일식 관료제의 악습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신제품에 대한 실험적인 접근을 강조하는 등 회사 문화를 변화시킨 성과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초년 직장인 시절을 보낸 그는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회의에 참석하기도 하고, 일반 직원들에게도 아이디어를 내도록 장려했다. 이처럼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고 메르세데스벤츠그룹은 판단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를 넘기다
칼레니우스는 2019년 CEO로 취임하자마자 위기를 맞았다. 디젤 배기가스 조작이 적발돼 미국에서만 22억달러(약 29조7000억원)를 보상해야 했고, 에어백 리콜 문제도 터졌다. 결국 2019년 2분기 12억유로(약 1조7000억원)의 적자를 내며 10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손실을 기록했다. 그해 연간 세전 이익은 전년 111억유로(약 15조7000억원)에서 43억유로(약 6조1000억원)로 60% 이상 감소했다.이듬해엔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해 판매가 급감하고, 생산 차질도 빚어졌다. 메르세데스벤츠그룹은 빠르게 대응해 판매량이 334만 대(2019년)에서 284만 대(2020년)로 15% 가까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세전 이익 66억유로(약 9조3000억원)로 선방했다. FT는 이를 두고 “많은 투자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을 해냈다”고 평가했다. 칼레니우스는 위기를 수습한 뒤 FT와의 인터뷰에서 “팬데믹 초기 재고를 줄여 손실을 막았다”고 설명했다.2021년부터 세계적으로 소비가 살아나고 마진율이 높은 고급 차량 판매가 급증하면서 회사는 2021년 세전이익 290억유로(약 41조2000억원), 2022년 205억유로(약 29조1000억원)의 기록적인 성과를 냈다.
전기차 전환은 ‘현재 진행 중’
칼레니우스의 경영 성과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평도 있다. 재무적으로는 더없이 좋은 실적이지만, 가솔린과 하이브리드 고급차의 판매 호조 덕분이어서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전기차 EQ 시리즈는 혹평받으며 ‘재고 떨이’로 매출을 이어가고 있다. 첫 배터리 전기차인 EQC 모델은 완전 충전 시 309㎞(한국 기준)라는 짧은 주행거리 때문에 조기 단종됐고, 이후 선보인 고급 전기차 EQS 역시 좋지 않은 승차감과 비좁은 뒷좌석 공간, 낮은 인테리어 품질 등으로 비판받고 있다. 당초 기대만큼의 판매량을 올리지 못한 탓에 EQ 시리즈 브랜드를 없앨 가능성도 시장에선 거론된다.그런데도 주주들은 칼레니우스의 전기차 전환 로드맵을 믿고 그를 재신임했다. 회사는 차근차근 전기차 전환에 대비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기업 보쉬, 정보기술(IT)업체 엔비디아는 물론 경쟁사 BMW 등 다양한 파트너와 협력하고 있다. 칼레니우스는 지난 8월 LG에너지솔루션 등을 방문하기 위해 한국을 찾기도 했다. 자율주행을 포함한 차량 통합제어 시스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도 완성 단계다. 회사는 2024년 출시될 새로운 E클래스에 고유의 차량 운영체제(OS)인 MBOS를 적용할 예정이다. 칼레니우스는 미국 전문지 모터트렌드와의 인터뷰에서 “2025년부터 새로운 차종은 순수 전기차로 출시하고, 2030년엔 기존의 모델까지 모두 순수 전기차로 전환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