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독일이 '침착함 속의 힘' 보여주려면

외교·군사 정책 리더십 부재에
국내정치 불안, 경기 부진까지

에너지 정책 실패가 가장 타격 커
중국시장 '올인'한 교역도 문제
독일의 성장엔진 다시 가동될까

박종구 초당대 총장
전후 유럽의 번영을 견인해온 독일의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헨리 키신저 박사는 “독일은 유럽에선 너무 크고 세계에서는 너무 작다”고 표현하며 유럽 사회에서 차지하는 독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리더십이 국가 위기관리 측면에서 도전받고 있다.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 정책, 중국과의 관계 정립 등 외교·군사 정책에서 이렇다 할 인상적인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반이민을 주장하는 독일대안당(AfD)의 과격한 행보, 이민 정책을 둘러싼 연정 내 이견, 마이너스 성장까지 우려되는 경기 부진 등이 총리의 통치력에 더 타격을 가하고 있다.숄츠 총리는 46조원 규모의 법인세 감면 등을 제시하며 꺼져가는 성장 모멘텀을 되살리려 하고 있다. 현재 주요 경제지표는 부진하다. 9월 실업률은 5.7%로 4개월째 동일한 상황이다. 올해 성장률은 0% 내외 또는 마이너스 수준으로 전망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와 내년의 독일 성장률 전망치를 -0.3%, 1.5%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게다가 독일은 높은 저축 성향으로 인해 경기 회복을 위한 소비 지출 진작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낡은 사회간접자본 시설도 성장하는 데 애로 요인이 되고 있다.

에너지 정책 실패가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된다. 독일 에너지 정책의 3대 요소는 탈원전, 대체 에너지 활용 및 값싼 러시아 에너지 수입으로 요약된다. 특히 러시아 에너지 수입이 불안정해지면서 심각한 수급 불안과 가격 폭등을 겪어야 했다. 교역을 통한 러시아 변화가 러시아 정책의 근간이었다. 노르트스트림 1, 2관 설치는 친러시아 노선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대러시아 친화 정책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사실상 종언을 고했다. 러시아가 수출을 제한하면서 독일 제조업의 원가가 크게 상승했다. 지역에 따라 전기료가 10배 폭동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재생에너지의 전기 생산 비중이 40%에 달한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유출 사고 이후 시작된 탈원전 정책으로 마지막 원전까지 중단됐다. 1980년 창당한 녹색당이 주요 정당으로 부상해 정치 지형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또 다른 위기는 대중국 무역 비중이 과다하다는 점이다. 중국은 독일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다. 지난해 교역 규모가 3178억달러에 달한다. 중국 시장에 올인한 예상된 부작용이다. 자동차, 화학, 중간재 수출의 주력 시장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16년 재임 기간 11번 중국을 방문했고, 숄츠 총리 역시 따가운 지구촌 여론에도 중국을 방문한 바 있다. 최근 숄츠 정부는 좀 더 강경한 대중 정책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로베르트 하벡 부총리는 “중국은 그동안 독일에 환영받는 교역 상대국이었지만 교역을 왜곡하는 보호무역을 더는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벌어진 심각한 인권 유린 사태, 일대일로 사업 과정에서 일어난 부채 함정 문제, 홍콩의 1국양제 백지화와 대만 침공에 대한 끊임없는 위협,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여준 친러시아 행보 등은 양국의 우호국가 관계 유지가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독일의 중국산 원자재 및 배터리 의존도를 줄이는 정책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을 체제의 라이벌로 규정하고 유럽연합(EU)의 디리스킹 전략을 지지하며 친중 정책을 펴온 메르켈 정부와의 결별이 공식화됐다.

독일도 인구 쓰나미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세계 3대 고령국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2015년 시리아 난민 수용으로 지구촌의 찬사를 받았지만 이주민의 낮은 생산성과 문화인종적 갈등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저임금제 도입에 따른 고용비용 증대, 비정규직 양산, 청년실업 악화 등 녹록지 않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과거 성공 모델에의 집착도 큰 문제다. 일본이 전쟁 전 1940년 국가 총동원체제에 집착하다가 미국에 참패한 역사적 사례를 연상시킨다. 전기차 전환보다 내연기관 자동차 집착이 대표적이다. 중국 시장에의 과다 의존, 서비스산업 경쟁력 부진도 일종의 ‘독일병’이 아닐 수 없다.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이 ‘늙은 유럽’이라는 표현으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메르켈 전 총리의 주장처럼 침착함 속에 힘이 있다. 독일의 성장 엔진이 다시 한번 힘차게 움직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