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카 탈세, 호텔서 법인카드…'사교육 카르텔' 충격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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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학원·대부업 등 246명 세무조사 결과 2200억 추징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위원 경력이 있는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A씨는 한 대형 입시학원으로부터 출제 문제를 판매하는 대가로 거액의 현금을 받았다. A씨는 가족 계좌 등으로 차명·우회 수취해 개인소득세 과세를 피했다. 이 과정에서 학원은 이들의 가족에게 소득을 지급한 것처럼 국세청에 허위 지급명세서를 제출해 탈루행위를 도왔다.
문제 팔고 거액 돈 받은 ‘수능 출제’ 교사도 적발
유명 대형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B씨는 특급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사적 목적으로 법인카드를 썼다. 직원에게 소득을 과다 지급한 후 실제로 지급한 소득은 경비 처리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직접 현금으로 돌려받기도 했다. 문제출제 대가로 현직 교사에게 가족 계좌 등으로 대가를 차명 지급하면서 개인소득세 탈루에도 일조했다.국세청은 작년부터 대형 입시학원과 스타강사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세무조사 결과를 30일 발표했다. 이번 세무조사 결과 입시학원들이 수능 출제 경향 등의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수능 출제위원 경력이 있는 현직 교사에게 금전을 제공하는 식의 ‘사교육 카르텔’의 실체가 드러났다. 현직 교사뿐 아니라 대형학원들과 스타강사들이 법인자금을 개인 지갑처럼 유용하고, 수입금액을 대거 축소하는 등의 탈세 행위도 적발됐다. 이 과정에서 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현직 교사는 200명에 달한다는 것이 국세청 설명이다.
앞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도 현직 교사와 대형 입시학원 유착을 비롯한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관련 총 111명을 수사, 64명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경찰은 지난 8월 말 이들을 상대로 세무조사를 진행하던 국세청을 상대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 대형 입시학원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현직 교사 명단을 확보했다.
정재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심리를 파고들어 사교육을 유도하면서 고수익을 누리고 호화 생활한 학원·강사 등의 탈세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적발된 학원 사업자 및 스타강사의 세부 명단은 공개하지 않았다. 국세기본법 제81조에 따르면 세무조사 관련 자료는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할 수 없다. 다만 이번 세무조사에서 학원 30여곳의 탈세 행위가 적발됐다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다.국세청에 따르면 일부 학원 사업자는 엄청난 수익을 누리면서도 학원 자금을 개인 지갑처럼 유용하고, 가족의 부를 늘리는 데 이용했다. 학원비를 현금·차명 수취해 수입금액을 신고누락했고, 학원 내 소규모 과외를 운영하면서 과외비는 자녀 계좌로 수취해 우회 증여한 사례도 적발됐다. 직원에게 소득을 과다 지급하거나 직원 가족에게 가공 지급한 후 지급금액 중 일부를 현금 출금하도록 해 학원 사주가 페이백으로 수취하기도 했다.
일부 스타강사들은 유명세와 고수익을 누리면서도 법인에 소득을 분산하는 방법 등으로 탈루한 사례가 적발됐다. 국세청에 따르면 스타강사 C씨는 가족이 주주로 있는 특수관계법인을 설립했다. 자신이 받아야 할 교재 저작권 관련 수익을 이 법인에 귀속시켜 가족에게 우회・편법 증여한 것이다. 자신 명의로 받아야 하는 전속계약금도 이 법인에 지급하도록 해 수입금액 신고도 누락했다.
C씨는 업무와 무관한 고가 미술품, 명품 의류 등 개인 사치품 구입비도 법인 비용으로 처리했다. 여러 대의 호화 슈퍼카도 이 법인의 업무용 승용차로 둔갑시켜 탈세를 자행했다. 법인에 등록된 업무용 승용차는 구입비와 보험료, 유류비 등을 모두 법인이 부담하고 세금 감면 혜택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용 취약계층서 연 9000% 고리대금 착취한 악덕 대부업자
가맹점서 대금 착취해 사주 일가 이익 챙긴 프랜차이즈
국세청은 학원업뿐 아니라 △대부업 △장례업 △프랜차이즈 △도박업 등에 대해서도 고강도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지난달까지 246명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해 2200여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는 것이 국세청 설명이다.신용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연 9000%가 넘는 초고율 이자로 자금을 빌려주면서 조직원이 수급한 이자 수입은 신고 누락하고, 호화 요트 등을 차명으로 구입해 재산을 은닉한 악덕 대부업자도 이번 세무조사에서 적발됐다.
생계형 가맹점으로부터 가맹비, 교육비 등 여러 명목으로 대금을 착취하면서 사주일가 이익을 챙긴 프랜차이즈 본부의 탈루행위도 확인됐다. 고가의 장례대금을 현금으로 수치하면서 신고를 누락하고, 지인 등 차명계좌로 장지 분양대금을 받은 장례업자도 탈루행위도 적발됐다. 국세청은 신종 수법을 활용한 지능적 탈세가 계속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탈세 혐의자 105명에 대한 추가 세무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대상은 △투자 붐을 악용해 개미투자자를 울리는 주식·코인 리딩방 운영업자 (41명) △미술품 렌탈 페이백 등 탈세 일삼는 병·의원 및 가담업체 (12명) △자금줄이 막힌 서민에게 고리 이자를 뜯어간 불법 대부업자 (19명) △고물가에 편승한 식료품 제조업체 등 폭리 탈세자 (33명) 등이다.
정 국장은 “악의적이고 지능적인 탈루행위에 대해서는 금융거래 현장 확인, 포렌식 등 모든 세무조사 수단을 활용해 탈루 세금을 추징할 계획”이라며 “조세 포탈 또는 세법 질서 위반 행위가 확인되면 조세범 처벌법에 따라 고발하는 등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