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보다 느린 한국 '물가 둔화' 속도…한은 "고점 낮았기 때문" [강진규의 데이터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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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디스인플레이션(물가 둔화) 속도가 미국과 유로지역에 비해 더딘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물가상승률이 다시 상승하는 등 물가 목표치인 2%에서 더 멀어지고 있다. 중동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오르고, 농산물 가격 상승세가 지속할 경우 물가 둔화가 더 지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미·유럽 중 물가 둔화속도 가장 더뎌

한국은행은 30일 물가동향팀의 BOK이슈노트 '주요국 디스인플레이션 현황 및 평가'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동재·장병훈 과장, 임웅지 차장, 임서하·최열매·김범준 조사역 등이 쓴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소비자물가 목표수렴률은 60.5%로 계산됐다.지난해 7월 6.3%까지 올랐던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지난달 3.7%까지 내려왔다. 월평균 0.19%포인트 하락해 총 2.6%포인트 내렸지만 물가 목표치인 2%에 비해 아직 1.7%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목표치까지 내려오기 위해 4.3%포인트 하락이 필요했는데, 아직 2.6%포인트만 내린 것이다. 이를 진도율로 계산하면 60.5%가 나온다.

이는 비교국가인 미국과 유로지역에 비해 낮은 것이다. 미국의 목표수렴률은 76.1%, 유로지역은 73.3%로 한국보다 높았다. 미국은 지난해 6월 9.1%까지 치솟았던 물가상승률이 지난달 3.7%까지 내려왔다. 월평균 하락폭은 0.36%포인트로, 이 기간 물가상승률이 5.4%포인트 하락했다.

유로지역은 지난해 10월 10.6%를 기록한 후 매달 0.57%포인트씩 낮아져 지난달 4.3%를 기록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주요국의 디스인플레이션 패턴이 대체로 유사한 양상을 나타내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주요국에 비해 빠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물가 목표에서 이탈한 수준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린 기간을 의미하는 '반감기'는 한국과 미국이 9개월, 유로지역은 7개월로 나타났다.

한은은 이와 관련해 "한국의 월평균 물가 둔화 폭이 작은 것은 물가 고점이 다른 국가에 비해 낮아 발생한 테크니컬한 문제"라며 "다른 기준을 감안하면 물가 둔화 속도에서 큰 차이는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한국, 비용상승 압력 지속

물가가 둔화하는 추세는 주요국 대부분이 비슷했지만 이유는 각기 달랐던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 비용상승 압력에 따른 파급영향이 여전히 지속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수요측 압력과 노동시장의 임금상승 압력 등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공급충격보다 수요와 임금 압력이 큰 것으로 평가됐다. 유로지역은 공급충격과 임금상승률이 물가 둔화를 더디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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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전망기관들은 한국의 물가상승률 목표(2%) 달성 시점을 2025년 상반기께로 전망하고 있다. 수요 압력이 약화하면서 내년 이후 목표에 근접해갈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최근 중동전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와, 유가와 환율 상승 가능성 등 물가를 다시 높일 수 있는 요인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초 예상보다 더디게 둔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가와 함께 농산물 가격이 최근과 같은 높은 수준을 이어갈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둔화하는 시점이 지연될 가능성도 제시됐다. 보통 추석 이후 과일과 채소 가격이 떨어지는 게 일반적인 흐름인데 올해는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