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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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강선애의 스무살 하콘 기획자 노트머리가 지끈거리고 숨이 턱턱 막힌다. ‘제출’ 버튼을 누를까 하다가 다시 서류를 열어 부족한 곳이 없는지 보고 또 본다. 마감 시간이 임박했다. 끝까지 수정하겠다고 아등바등하다 제출 버튼을 누르는 순간에 마감 시간이 지나버렸던 몇 년 전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래, 이제 와 수정할 곳이 눈에 보인다 한들 어쩌겠나 하는 심정으로 눈을 꼭 감고 버튼을 누른다. 이제는 내 손을 떠났다. 정말 끝이다. 안녕, 바이바이.
ㅡ귀하의 지원신청서가 접수되었습니다.신청서가 접수되었다는 컴퓨터 화면 속 문구를 확인하고서야 금방 컴퓨터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던 몸을 의자에 뉘었다. 며칠간 끙끙 앓은 체증이 한 번에 다 가라앉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지원금과 씨름하는 기획자의 하소연이다.
하콘은 2008년에 처음으로 국가 지원금을 받았다. 그전까지 5년 정도는 박창수 선생님의 사비로 공연을 진행했다. 개런티는 물론이고 하우스콘서트에 사용하는 장비도, 공연 후 와인파티의 재료까지도 이왕이면 좋은 걸로 하자는 선생님의 고집을 말릴 수가 없었으니, 들어오는 입장료보다 나가는 돈이 몇 곱절이나 더 많았다. 보다 못한 내가 스태프들과 작당 모의를 해 2007년 가을, 선생님 몰래 다음 해를 위한 문예진흥기금을 신청했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당시까지 했던 공연의 실적을 단정하게 정리하고, 컬러 출력까지 해서 기관에 직접 제출하던 그해 늦가을의 공기는 아직도 선명하게 코끝을 스치는 촉감으로 남아있다. 물론, 인터뷰 심사까지 보러 가야 했던 선생님의 “내가 왜 이런데 앉아 있어야 하냐”는 호통의 기억도 함께다. 한 번 주고 그다음은 안 줄 바에야 차라리 처음부터 안 받는 게 낫다던 생각이셨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선정결과가 나오던 날, 상기된 채 하콘의 이름을 확인하던 그 순간의 기쁨은 더더욱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그해 처음으로 3천만 원이라는 전에 없던 일 년의 예산을 만들어 냈다.매년 이맘때면 나는 이 과정을 반복한다. 다행히도 대체로 지원 선정이 되어 왔지만 몇 번쯤은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2021년의 기억은 사뭇 강렬하다. 하콘의 여름 축제인 줄라이 페스티벌의 낙방이었다.
지원서를 작성하다 보면 당해 연도의 계획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이전의 성과인데, 2020년에 시작된 줄라이 페스티벌은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31일간 매일 공연을 열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13시간 릴레이 연주를 선보이는 등 전무후무한 공연의 형식과 예술적 성과를 보여왔다고 자부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 마음으로 2021년도의 지원금을 신청했는데, 너무 자신했던 걸까. 선정 결과 날 쓰디쓴 아픔을 맛봐야 했다.
“우리 이름이 없는데?”
“잘못 본 거 아니야? 다시 확인해 봐.”급한 마음에 놓친 것이길 바라는 심정으로 다시 찬찬히 살폈다. 가나다순으로, 위아래를 수차례 훑어가며.
“…… 정말… 없어.”
공연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나온 결과가 ‘미선정’이라니 눈앞이 깜깜했다. 이제 와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 무대에 함께하기로 한 연주자와 관객과의 약속이라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기에 예정대로 그해의 페스티벌을 진행했다. 팬데믹으로 더욱 축소된 관객 정원은 그나마의 티켓수입마저도 기대할 수 없게 했지만, 소식을 접한 분들의 많은 응원과 도움을 받으며 무사히 공연을 치러냈다. 그 노력이 가상했던 걸까. 페스티벌을 끝내고 몇 달 후, 하콘에 사후 지원금이 도착했다.이 시기를 거친 이후, 지원금 마감 시즌만 되면 나는 비상 상황을 선언한다. 지원 선정이 안 되었을 때를 최근 너무 철저히 학습한 데가, 그 패배의 쓴맛을 또다시 보고 싶지는 않아서다. 연말에 가까워져 올수록 공연은 많아지고, 각종 정산과 다음 해의 계획 같은 것이 혼재된 상황 속에서, 예산의 삭감이든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꼭 선정되도록 써내야 한다는 그 압박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이것이 우리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다음 해 일 년을 위한 곡식창고를 채우기 위해 모든 예술단체가 우리와 같은 시간을 걷고 있을 것이기에.
한 해의 살림을 책임지는 것 또한 기획자의 몫이다. 매해 선정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 지원금이라고 할지라도, 관리와 정산이 무척 까다로움에도, 여기에 할 수 있는 총력을 다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티켓 수입 외의 다른 어떠한 수입원을 고심하더라도 전체 예산을 충당하기 어려운 것이 기초예술 분야가 가진 태생적인 한계이기 때문이다. 스타 음악가만으로 공연하거나 대중성을 고려한다면 수익창출에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만 하콘이 지금까지 해온 일은 가능성 있는 연주자들을 발굴하고, 신진부터 원로까지 다양한 세대의 연주자를 소개하고, 전에 없는 형식에 도전하고 실험하는 일이었으니… 우리로서는 지원금이 주는 무게와 중요성이 상당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매해 힘든 과정을 그렇게 한 번쯤 거쳐 갈 수 밖에.
참, 그런데 아까 제출했던 지원서 잘 접수가 된 걸까? 불안한 마음에 다시 시스템에 접속했다. ‘신청완료’라는 글씨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안도한다. 오늘은 발 뻗고 잘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