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사장이 제일 많은 동네' 절박함 통했다…'대반전'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수정
강소기업으론 안된다…첨단강소기업으로 ②강소기업으론 안된다..첨단강소기업으로①에서 계속 일본에서 가장 존재감이 약한 지역 가운데 하나인 후쿠이현의 기업들은 '일본 강소기업의 성공 모델'로 성장했다.
中 저가공세에 섬유·안경산업 '반토막'
모태산업 '넘버원' 대신 진화 택했다
"AI시대에도 기술력은 통한다" 자신감 접목
'안경·섬유→의료기기·우주항공'으로 변신
'변두리로켓' 모델 기업 의료용 패치 개발
하지만 1990년 버블(거품)경제 붕괴 이후 후쿠이 지역 기업들은 강소기업에 안주해서는 생존이 불투명한 시대가 왔음을 실감하게 됐다.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몰려드는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제품을 기술력 만으로는 따라잡기는 벅찬 시대가 된 탓이다. 인터넷, 인공지능(AI), 전기차 등 기존에 없던 기술이 등장하면서 산업 구조의 변화 속도 또한 예상을 뛰어넘었다. 한때 후쿠이현은 '일본에서 사장이 제일 많은 현'으로 불릴 정도로 중소기업이 번성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의 파고가 높아지는 시대에 고만고만한 중소기업의 난립은 오히려 약점이 됐다.
1992년 4996억엔(약 4조5227억원)이었던 이 지역의 섬유 출하액은 오늘날 절반 이하로 줄었다. 1998년 호쿠리쿠 지역 3개 현에 총 2000여대가 있었던 방직기는 2018년 1000대를 밑돌고 있다. 사바에시에 따르면 안경 관련 제조업 매출도 1992년 1144억엔에서 2011년 539억엔으로 반토막났다. 900여개였던 관련 기업의 숫자도 500곳으로 감소했다. 후쿠이 지역 중소기업들이 모태사업에서 '넘버 원'을 지키는 강소기업을 넘어 차세대 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한 '첨단 강소기업'이 되지 못하면 무너진다는 위기감을 공유하는 배경이다.변두리로켓의 쓰쿠다제작소가 그랬던 것처럼 후쿠이 지역 중소기업들도 기술력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산업 구조가 아무리 빨리 바뀌어도 대를 이어 갈고 닦아온 기술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안경 산업은 신체에 착용감이 좋은 제품을 만드는 설계력과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티탄을 가공하는 기술이 결합된 산업이다. 의료기기가 요구하는 기술력과 딱 들어맞았다. 후쿠이현의 안경 기업들이 의료·헬스케어와 우주·항공 산업에서 살 길을 찾은 이유다. 실을 뽑고, 짜고, 가열하고, 물들이는 섬유산업의 공정은 제조기술의 백화점으로 불린다. 표면적으로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의료나 항공·우주산업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이유다. 구체적인 사례를 몇가지만 살펴보자. 쓰쿠다제작소의 모델인 후쿠이다테아미흥업은 지난해 오사카의과약과대학, 섬유회사 데이진과 공동으로 심장 혈관 재생 패치 'OFT-G1'을 개발했다.
심장에서 폐로 이어지는 동맥이 부분적으로 좁아지는 선천성심장질환에 사용되는 패치다. 치료를 하려면 혈관을 절개해 직경을 확대하는 수술이 필요하다. 절개한 혈관의 결손 부위를 매우는데 쓰이는 의료 기구가 심장·혈관 재생 패치다. 이 수술은 어릴 때 하는 사례가 많다. 패치가 성장하는 어린이의 체내에 오랜 기간 부착돼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소의 심막이나 의료용 인공소재 등을 사용했지만 면역 거절 반응이나 열화를 일으키는 문제가 있었다.
패치의 신축성이 떨어지면 재생 부위가 환자의 성장 속도를 따르지 못한다. 패치가 혈관을 다시 좁게 만들기 때문에 재수술이 필요한 사례도 많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OTF-G1은 후쿠이아미다테의 경편 기술을 살린 제품이다. 경편으로 제작한 섬유는 일반 직물보다 신축성과 강도가 뛰어나다. 후쿠이아미다테는 두 종류의 의료용 소재로 만든 실을 경편 방식으로 짜고, 젤라틴막으로 코팅했다.
수술이 끝나면 조금씩 재생되는 환자의 세포가 경편 방식으로 짠 패치의 틈으로 스며든다. 패치와 신체조직이 일체화되는 것이다. 코팅한 제라틴막은 세포가 패치에 제대로 정착할 때까지 패치 틈으로 혈액이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보호한다. OTF-G1 패치는 수술 당시보다 세로·가로 방향으로 여러 배 늘어날 정도로 신축성이 뛰어나다. 수술을 받은 아이의 성장에 맞춰 늘어나기 때문에 혈관 재협착의 가능성을 크게 낮췄다. 세포가 제대로 정착하면 패치는 효소에 의해 저절로 분해된다. 후쿠이다테아미는 비단을 사용한 인공혈관, 구멍이 난 심장을 재생시키는 소아용 패치도 개발 중이다. 강소기업으론 안된다..첨단강소기업으로③으로 이어집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