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의 IT인사이드] 사촌이 폰을 싸게 사면 배가 아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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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IT과학부 기자11년 전 일이다. 2012년 9월 어느 주말 삼성전자 갤럭시S3의 가격이 17만원까지 내려갔다. 이 제품의 출고가는 99만4000원. 출시 3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플래그십 제품의 가격이 보급형 제품 수준까지 떨어진 셈이다. 이유는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의 LTE(4세대 이동통신) 가입자 유치 경쟁이었다. 통신사를 옮겨야 하고 고가 요금제를 몇 달 동안 써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 붙었지만 이런 점을 감안해도 ‘역대급’ 할인이었다. LG전자의 ‘옵티머스 LTE2’와 팬택의 ‘베가S5’도 10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통신사의 출혈 경쟁을 보다 못한 통신당국이 칼을 빼 들었다. 석 달 뒤인 2012년 크리스마스이브,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 3사에 각각 3주 안팎의 영업정지 처분과 과징금 총 118억9000만원 부과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보조금 상한선(당시 27만원)을 훌쩍 넘긴 데다 번호이동 가입자에게만 더 많은 돈을 준 게 문제가 됐다. 당시 여론은 둘로 나뉘었다. “돈을 많이 쓴 게 문제냐”는 의견도 있었던 반면 “정보에 밝은 일부 소비자만 값싸게 사는 것은 안 된다”는 반론도 있었다.
'출혈 경쟁' 금지하는 단통법
다시 2년 뒤인 2014년 10월,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이 시행됐다. 법의 취지는 ‘누구나 어디서든 같은 가격으로 휴대폰을 살 수 있도록 하자’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신규가입, 기기변경, 번호이동 등 가입 유형이나 사용하는 요금제 등에 따라 차별적인 지원금을 줘선 안 된다고 명시했다. 방통위가 보조금 상한선을 정하면 통신사가 이를 따라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전까지 가이드라인 수준에서 규제했던 것을 법적인 수준까지 격상했다는 의미도 있다. 정부는 단통법 도입으로 복잡하고 불투명한 통신시장 유통 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통신사의 보조금 경쟁이 줄어들어 여유 자금을 요금제 가격 경쟁에 투입해 통신비가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그로부터 다시 9년이 지났다. 단통법은 금액 제한 등 일부 내용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통신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통신사들은 법을 준수하기 위해 돈을 덜 쓰기 시작했다. 통신 3사의 마케팅 비용은 2014년 8조8220억원에서 지난해 7조9140억원으로 줄었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조6107억원에서 4조3835억원으로 불어났다.
경쟁 사라진 통신시장 수혜자는
휴대폰 시장은 다자간 경쟁 체제에서 양강 구도로 바뀌었다. 팬택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데 이어 LG전자가 휴대폰 사업을 접었다. 국내에서 휴대폰을 판매하는 회사는 사실상 삼성전자와 애플뿐이다. 휴대폰 가격도 가파르게 올랐다. 삼성전자의 현재 최상위 제품인 갤럭시S23울트라의 출고가는 159만9400원이다. 통신업계에선 국내 휴대폰 제조사 간 경쟁이 줄어들면서 이들이 부담했던 보조금 규모도 대폭 감소했다고 주장한다.정리하면 단통법 시행 이후 휴대폰 가격은 올랐지만, 통신사와 제조사의 보조금은 쪼그라들었다. 경쟁이 사라지면서 모두가 비싼 휴대폰을 비싸게 산다는 선택지만 남게 됐다.
시계를 돌려 지난 26일, 방통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통신 3사 자회사 알뜰폰에는 단통법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국회 지적에 “점검하겠다”고 답했다. “과거에는 영세 사업자가 알뜰폰을 했는데 대규모 사업자가 진입하면서 결합 상품까지 하고 있다”고 부연 설명도 덧붙였다. 단통법 대상을 알뜰폰까지 확대하겠다는 얘기다.
알뜰폰은 값싼 요금제 덕분에 올 8월 기준 18.4%까지 점유율이 높아졌다. 단통법을 적용받은 알뜰폰 시장이 어떻게 될까. 지난 9년을 되돌아보면 생각보다 답이 쉽게 나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