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된 '관리종목 지정' 규제 탓…헛힘 쓰는 K바이오
입력
수정
지면A15
K바이오 대해부“신약 개발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인데 관리종목 지정을 피하느라 쓸데없는 기업을 인수했습니다.”
(20) 불합리한 상장 규정
'매출 30억 미만' 피하기 위해
쓸데없는 M&A 나서기도
"신약 개발社 특성 고려해야"
한 신약 개발 바이오기업 대표는 31일 “20년 전 생긴 코스닥시장 상장 규정(매출 30억원 이상) 때문에 최근 인수한 기업에서 막대한 손실이 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바이오업계에선 현 상장제도가 신약 개발 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2004년부터 코스닥시장에서 매출이 30억원 미만인 기업을 관리종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법인세 비용 차감 전 당기순손실’(법차손), 영업손실, 자본잠식 등 세부 규정을 하나라도 어기면 관리종목행이다.
바이오업계에선 이 제도가 제조업 기반으로 설계돼 신약 개발사와는 맞지 않다며 다른 잣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상근부회장은 “신약을 개발하는 데 1조원 이상 투입되고 임상 1~2상에서 기술 수출을 하더라도 3~5년 안에 매출과 이익이 나올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일부 신약 개발사는 매출 기준을 맞추느라 고육지책으로 관련 없는 회사를 인수했다. 레고켐바이오와 큐리언트는 의약품 유통업체를 인수했고, CG인바이츠(옛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을 사들였다. 제넥신은 화장품 원료와 건강기능식품 회사를, 헬릭스미스는 건기식 회사를 인수했다. 한 바이오기업 대표는 “바이오를 미래산업으로 육성하는 주요 7개국(G7) 중 신약 개발사에 이런 상장 제도를 적용한 곳은 없다”고 지적했다.한국은 여러 조건 중 한 가지만 어겨도 관리종목이 되지만 미국은 매출, 순이익, 시가총액 등 여러 조건 중 한 가지만 지켜도 상장이 유지된다. 한 바이오 상장사 대표는 “최근 미국 화이자가 매년 수천억원씩 영업적자를 기록해온 신약 개발사 시젠을 56조원에 인수했다”며 “바이오기업을 재무제표로만 평가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상장 규정을 못 맞춘 신약 개발사들이 올해 사업보고서가 나오는 내년 3월 관리종목으로 대거 지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기술특례상장 바이오기업 중 올해 관리종목 지정 유예(매출 5년, 손실 3년)가 끝나거나 지정 위기에 놓인 곳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8~2020년 기술특례상장 기업 68곳 중 67%(46곳)가 바이오기업이다. 이 부회장은 “무더기로 관리종목에 지정되면 자칫 바이오 신약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안대규/이영애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