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레터] 미국의 반ESG 운동은 지속가능할까

[한경ESG] 편집장 레터

미국에서는 올해도 ‘ESG’가 집중 포화를 받고 있습니다. 상반기에만 미국 각주에서 156건의 반ESG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공격은 주로 ESG 투자를 주도해온 금융사로 향하고 있습니다. 블랙록을 이끌고 있는 래리 핑크 회장은 1년 이상 계속된 집요한 공세에 ESG라는 용어가 너무 정치화됐다며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미국의 반ESG 운동은 공화당과 보수계 싱크탱크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ESG 요소를 고려한 기업평가와 투자 결정에 반기를 듭니다. 고객 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 등 금융회사는 오직 금전적 요인에 근거해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기후변화 대응처럼 거창한 주제는 금융회사가 아닌 정부가 맡아야 할 역할이라며, ESG가 투자에 ‘정치’를 끌어들였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유독 미국에서만 반ESG 운동이 불붙은 이유를 이해하려면 정치적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ESG 입법이 활발한 곳은 미국 내에서도 화석연료 산업이 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텍사스 등 공화당 우세 지역입니다. 탈탄소 전환이 일자리 상실과 삶의 위기로 다가와 ESG에 대한 반감이 팽배한 곳입니다. 이런 가운데 내년 11월 대통령 선거와 연방의회 선거, 주지사 선거를 앞두고 화석연료 산업의 지지를 얻으려는 일부 정치인이 반ESG 운동에 발 벗고 나선 걸로 보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양극단으로 치닫는 미국의 여론 지형입니다. 올해 갤럽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은 78%가 경제보다 환경이 중요하다고 답했지만, 공화당 지지층은 20%에 불과했습니다. 1984년 이후 최대 격차입니다. 양당 지지자의 가치관 차이는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심각합니다.

이렇게 보면 미국 내 반ESG 운동은 일시적 현상으로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특히 내년 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할 경우 새로운 반ESG 규제가 도입되고, 미국이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재탈퇴하는 일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반ESG 운동도 결국은 세계적 ESG 중시 흐름에 수렴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습니다. ESG 요소는 이미 시장과 산업, 비즈니스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SG를 고려한 투자 금지는 더 많은 리스크와 투자 기회 상실을 의미할 뿐입니다. 반ESG법을 제정한 텍사스주는 8개월간 3억 달러 이상 추가 지출에 직면했습니다. 인디애나주 공무원퇴직연금은 ESG 투자가 금지되면 10년간 67억 달러의 수익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합니다.대다수 미국 기업은 반ESG 운동과 상관없이 탈탄소 전환과 탄소중립을 위해 혁신적 노력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경제 규모가 세계 5위인 캘리포니아주는 가장 앞선 기후공시법을 제정해 10월부터 시행 중입니다. 우리 기업도 반ESG 운동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ESG 경영 기조가 미국의 정치 동향에 좌우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합니다. 돈과 사람, 기술은 미래를 향해 흘러갑니다.
장승규 〈한경ESG〉 편집장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