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지도 저러지도"…美 태양광 업계의 脫중국 딜레마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먹구름 드리운 태양광 업계-中
사진=AFP
올해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업계는 자금 사정이 좋지 못했다. 긴축(금리 인상)에 의한 고금리 등이 원인이 됐다. 좀체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선노바, 선런 등 미국 태양광 발전 기업들의 주가가 올해 7월 잠시 반등하는 일이 발생했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에 발묶인 중국산 태양광 패널 물량이 일부 풀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미 정부는 작년 6월부터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진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효했는데, 태양광 패널 소재인 폴리실리콘은 대부분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해당 법안으로 인해 태양광 패널 공급망의 병목 현상이 심각해졌고, 이에 미국 정부가 지난 7월 제한 조치를 완화하는 일종의 '백기'를 든 것이다.

친환경 목표 달성과 중국산 배제 사이의 딜레마

이는 태양광 분야에서 중국산 의존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꼽힌다. 포르투갈 신재생에너지 기업 EDP은 약 900MW(메가와트) 규모의 미국 태양광 발전소 개발을 내년까지 연기해야 했다. 중국 융기실리콘자재로부터 제품 수입이 지연된 탓이다. 미구엘 스틸웰 단드라데 EDP 최고경영자(CEO)는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해 공급망의 위험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그는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려면 경쟁력 있고 저렴한 태양광 패널 공급원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EDP는 중국산에 대한 대안으로 미국 내 프로젝트를 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의 공급업체로부터 제품을 조달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독일 최대 전력회사인 RWE도 올해 초 "위구르족 강제노동 금지법 도입 이후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 개발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과 유럽 정부가 공통적으로 처한 딜레마다. 친환경 에너지 공급망에서 중국산을 배제하고 싶으면서도, 탄소중립 시간표를 맞추려면 당장에 중국산 없이는 달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조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태양광 발전 설비가 오는 2025년부터 연간 60GW(기가와트) 이상으로 현재보다 3배 이상 증가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자체 모듈 생산 능력만 봐도 작년 말 기준으로 연간 태양광 설치량의 3분의1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수입해오는 실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1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 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자체 태양광 공급망을 육성하기 위해 바이든 정부가 꺼내든 카드 중 하나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다. 태양광 등 청정에너지 시설을 건립할 경우 30%의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는 생산세액공제(AMPC) 혜택을 담고 있다. 여기에 올해 5월 미 재무부는 IRA에 따른 '국내 콘텐츠 보너스' 규정을 공개했다. 미국 태양광 발전 시설에 미국 현지에서 생산된 부품을 40% 이상 사용할 경우 10% 세금 감면 혜택을 추가로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합치면 태양광 시설 사업체는 최대 40%에 달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

'先공급망 육성 後중국산 배제' 관측도

미국청정전력협회(ACP)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IRA 발효 이후 올해 7월 말까지 미국 내에서는 태양광 제조 시설을 확장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52개 이상 발표됐다. 여기엔 연간 62GW(기가와트)의 신규 모듈 설비(현재 7GW 수준)와 35GW의 셀 설비(현재 3GW 수준)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 등과 달리 태양광 공급망에선 중국산을 엄격하게 배제하지 않은 게 변수로 꼽힌다. '미국산 40%' 조건을 충족시키면 중국산 부품이 사용돼도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는 점에서다. 이를 두고 미국 정부 역시 태양광 업계의 탈(脫)중국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비용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 값싼 중국산 수입품에 의존하는 태양광 시설 사업자들과 중국과 경쟁해 사업을 확장하길 원하는 제조업체들의 상충되는 입장 사이에서 도출한 타협안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사진=REUTERS
이에 따라 미국 등에서는 앞으로도 모듈 생산에 집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를 위해 중국 기업의 미국 현지 모듈 공장 건설이 잇따르고, 대신 셀 제조 공정까지는 중국산을 수입하는 방법 등을 통해 '중국 의존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중국 융기실리콘자재는 최근 오하이오주에 5GW급 모듈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한 EDP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셀 제조에는 더 많은 화학 처리 공정과 더 많은 전문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부지 선정이나 허가 및 물류 절차가 모두 더욱 복잡하다"며 "이 때문에 미국에 모듈 공장을 짓는 계획은 셀 공장 등에 비해 급속도로 늘고 있다"고 전했다.일각에서는 어느 정도 공급망 자립이 확보되면 종국에는 중국산을 완전히 금지할 것이란 전망도 계속되고 있다. FTI컨설팅의 에너지 전환 수석 이사인 쉬 첸은 "공급망의 현재 상태와 모듈 구성 요소의 비용 분석을 검토했을 때 일반적으로 미국산 셀을 사용하는 모듈만이 '미국산 40%'이라는 국내 콘텐츠 보너스 규정을 준수한 것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