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 이름 내건 8개 호텔...럭셔리와 보내는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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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최지희의 아트앤럭셔리명품을 명품으로 만드는 건 무엇일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 그것을 만들고 지키려는 노력, 그것들이 오래 쌓여 만들어진 역사일터다. 그래서 명품을 소유한다는 건 지나간 시간을 사는 일이자 미래를 사는 일이다. 명품을 사는 행위가 더 나은 나를 만들어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명품 브랜드의 가치와 철학을 이해하는 소비자라면) 단 한번의 경험이 새로운 공간으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명품은 치명적이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극도로 화려한 물질로, 갖고 싶은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동시에 무형의 가치로 우리를 홀리니까. 단순한 제품만을 팔았다면 그 긴 시간 세계인의 마음을 훔칠 수 있었을까. 그래서 명품 마케팅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역사이기도 하다.요즘 럭셔리 마케팅의 정점엔 호텔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물질로부터 자유로운 유일한 시간인 ‘잠자는 시간’마저 유혹하기 시작한 셈이다. 불가리가 시작해 펜디, 아르마니, 샤넬과 루이비통까지…. 세계 곳곳에 자신들의 이름을 건 호텔들이 새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이 만드는 호텔들은 그 공간 자체를 탐닉하는 것만으로 미적이고 지적인 유희가 넘친다. 그 동안 자신들을 존재하게 한 이유들을 한 공간에서 온전히 경험하게 하려는 전략들로 빛난다. 이탈리아 로마의 본사 건물을 일부 호텔 객실로 만들거나(펜디), 세계적인 건축가를 내세워 각 나라 고유의 건축자재로 아낌없이 창의력을 발휘하게 한다거나(불가리), 전설이 된 디자이너의 사적인 공간을 대중들에게 내어주는(샤넬) 등의 과정 그 자체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집이 아닌 곳에서 집처럼 편안하게 럭셔리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소유할 수 없어도 경험하는 것에 열광하는 지금의 소비자들에게 럭셔리 브랜드의 철학이 담긴 호텔은 환상의 장소이자 꿈의 공간이 된다. 단 하룻밤, 24시간 안에 영원한 팬덤을 만드는 전 세계 명품 브랜드 호텔들을 소개한다.
불가리 : 럭셔리 호텔의 대명사1884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럭셔리 주얼리로 시작해 패션, 뷰티로 사업을 펼쳐온 불가리. 2004년부터 불가리는 밀라노에 브랜드 이름을 건 첫 번째 호텔을 열었다. ‘불가리호텔&리조트그룹’을 만들어 발리, 런던, 두바이, 베이징, 상하이, 파리, 가장 최근 문을 연 로마까지 세계 주요 도시에 불가리호텔을 세우고 있다.
불가리호텔의 건축과 인테리어는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안토니오 치테리오가 맡았다. ‘휴양의 섬’ 인도네시아 발리에 세워진 불가리의 두 번째 호텔은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높이 150m의 울루와투 절벽 꼭대기에 세워진 외관만으로 눈을 사로잡는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배경이 된 빠당빠당 해변을 모든 객실에서 볼 수 있는 데다, 투숙객만을 위한 전용 해변도 있어 매년 허니문 여행을 온 커플들로 북적인다. 절벽에서 해변까지 데려다주는 전용 케이블카는 불가리호텔 발리의 트레이드 마크.치테리오는 불가리호텔을 지을 때마다 현지 건축 자재를 고집했다. 호텔이 세워지는 지역의 장인정신과 예술성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기 위한 그만의 방식이었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불가리 로마호텔의 샹들리에, 램프, 크리스털 등 인테리어 소품은 모두 이탈리아산. 불가리 발리호텔의 외관에 쓰인 모든 건축자재 또한 인도네시아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이뤄졌다.
치테리오의 이런 고집 때문에 불가리호텔에선 그 장소 특유의 정취가 묻어난다. 디자인은 다 다르지만 공통점도 있다. 비누 하나까지도 모두 불가리의 뷰티 제품을 사용한다는 것. 그래서 호텔에 머무는 내내 ‘불가리향’을 만끽할 수 있다.
불가리는 내년 미국 마이애미 비치에, 2025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 미국 불가리호텔을 개관한다.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는 2025년 ‘불가리 레스토랑’을 열고 본격적인 외식 사업을 시작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아르마니 :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에 안기다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2010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에 ‘아르마니 호텔’을 열었다. 두바이의 상징 부르즈 칼리파의 3층부터 39층까지 160개 객실을 채워 객실로 만든 것. 어떤 방에 투숙해도 매일 저녁 6시부터 30분 단위로 열리는 두바이 분수쇼와 레이저쇼를 침대에 누워서 관람할 수 있다.
아르마니호텔을 유명하게 만든 건 화려한 뷰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객실에 ‘라이프스타일 매니저’가 한 명씩 배정돼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레스토랑 예약, 객실 준비, 아이 돌봄까지 투숙객에 맞춘 서비스를 제공한다. 입실 전 고객 취향을 상세하게 파악한 후 객실 내부에 비치할 책까지 매번 다르게 구성한다. 낯선 땅에 와서도 ‘집과 같은 경험’을 하게 한다는 목적이다. 이 호텔의 하이라이트는 123층의 ‘아르마니 라운지’다. 깎아지르는 듯한 아찔한 각도로 두바이의 모든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커피, 차, 와인 등을 마련해 놓고 어떤 국가의 손님이 오더라도 취향에 맞춰 서비스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가장 유명한 메뉴는 ‘골든 카푸치노’다. 이름 그대로 커피 위에 순금을 얇게 썰어 올렸다. 아르마니호텔 두바이에서만 판매하는 시그니처 메뉴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이 호텔을 위해 작은 소품 하나하나까지 직접 관여했다. 객실 내부를 채운 가구와 소품들은 아르마니의 가구 브랜드 ‘아르마니 까사’ 제품이다. 골드, 블랙, 화이트, 베이지 네 가지 색만을 주로 사용해 절제된 아르마니만의 매력과 감성을 살렸다. 아르마니는 201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 두 번째 호텔을 개관했다. 현재 ‘아르마니’란 이름을 내건 호텔은 두바이와 밀라노 두 곳에서 만날 수 있다.
바카라 : 뉴욕의 심장에서 빛나는 ‘왕의 크리스털’ 뉴욕 맨해튼의 심장, 뉴욕현대미술관(MoMA) 바로 앞에는 프랑스의 명품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가 2015년 꾸민 화려한 호텔이 있다. 바카라는 1764년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가 왕실 공예품을 만들기 위해 프랑스 마을 ‘바카라’에 유리 공장을 지으며 시작한 브랜드다. ‘왕의 크리스털’이란 브랜드 별칭에 걸맞게 호텔 내부의 모든 공간은 바카라 크리스털로만 꾸몄다.
로비부터 레스토랑, 객실까지 모든 공간을 바카라 크리스털로 장식해 불을 켤 때마다 오묘한 빛을 뿜어낸다. 식기류와 화병 등 투숙객의 손과 눈이 닿는 모든 곳에 바카라 크리스털을 심어놨다. 로비에 있는 대형 샹들리에를 보려는 사람들로 바카라 뉴욕호텔은 언제나 붐빈다. 바카라호텔에서 꼭 해봐야 할 버킷리스트중 하나는 ‘애프터눈 티 세트’ 즐기기다. 1인당 1800달러(약 244만원)의 초고가인데도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다. 인기 이유는 맛이 아닌 ‘접시’에 있다. 이 메뉴를 위해 특별히 주문 제작한 크리스털 3단 트레이에 모든 음식이 올려져 나온다.
미처 예약하지 못한 투숙객을 위해 모든 방에는 주문 제작한 바카라 크리스털 미니바가 준비돼 있다. 몇천만원을 호가하는 잔과 접시에 버블이 톡톡 터지는 샴페인을 채워 마시는 경험은 오직 이곳에서만 할 수 있다.
펜디 : 펜디 로마 본사 건물을 호텔로 내주다 펜디는 호텔을 브랜드의 정체성을 전달하는 도구로 만든 ‘영리한 선택’을 한 명품업체다. 이탈리아 로마 명품 거리에 있는 본사 건물을 객실로 꾸몄기 때문이다. 2016년 펜디는 로마 시내 팔라초 쇼핑거리에 있는 본사 건물 ‘팔라초 펜디’에 호텔을 열고 고객을 맞았다. 1층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펜디 매장이, 2층엔 VIP고객을 위한 라운지가, 3층에는 펜디의 호텔 ‘펜디 프라이빗 스위트’가 자리를 틀었다.
펜디가 이런 선택을 한 데는 ‘본사 건물만큼 브랜드를 잘 보여주는 곳이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 호텔은 7개의 스위트룸만으로 이뤄졌다. ‘럭셔리 호텔’이라면 으레 있을 법한 피트니스 센터나 수영장도 없다. 이 호텔은 고급스러움과 ‘프라이빗’ 서비스로 승부한다. 다른 숙박객들과 절대 마주칠 수 없도록 설계해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의 명소가 됐다. 7개의 객실은 아주 작은 것 하나도 똑같은 게 없다. 이불과 베개 커버, 침대 매트리스 등은 모두 펜디의 가구 브랜드 ‘펜디 까사’ 제품으로 채워졌고, 가구는 펜디가 세계 각국 디자이너들에게 각 방의 콘셉트에 맞게 의뢰한 작품들이다. 대형 호텔처럼 부대시설이 다양하진 않지만 루프톱에 로마 최고의 식당으로 꼽히는 일식 레스토랑과 바를 운영한다. 로마의 명품 거리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세계 최고의 미식을 즐기는 새로운 럭셔리를 경험할 수 있다.
LVMH : 첫 호텔 슈발블랑 파리, 모든 방이 에펠탑 뷰센강 바로 옆에 있어 모든 객실이 ‘센강 뷰’를 자랑하는 슈발블랑 파리. 이곳은 ‘명품 공화국’을 이룬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2년 전 야심차게 내놓은 첫 5성급 호텔이다. 72개의 객실과 스위트룸만을 갖춘 최고급 럭셔리 호텔이다.
슈발블랑은 프랑스 파리의 역사가 그대로 담긴 사마리텐백화점을 16년에 걸쳐 복원해 지어졌다. 거장 건축가 피터 마리노가 디자인을 맡아 모든 객실에 금을 입힌 화이트톤으로 꾸몄다. 호텔과 이어진 곳에 다시 문을 연 사마리텐백화점엔 LVMH가 소유한 브랜드뿐만 아니라 보테가베네타, 프라다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 호텔은 1930년대와 1970년대 프랑스에서 유행한 건축 양식이 담겨 있다. 위층 복도엔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파리에서 활동했던 여성 화가이자 디자이너 소니아 들로네의 컬러풀한 석판화가 여럿 있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퐁뇌프 다리를 내려다보는 구조도 매력적이다. 호텔 가장 위층에 자리한 최고급 객실인 ‘퀸테슨스 스위트룸’은 2층 구조로 만들어졌다. 650㎡ 크기의 이 객실에는 수영장도 있다.
LVMH가 2001년 이 건물을 인수했을 당시만 해도 ‘사마리텐 단지’는 도매상들이 물건을 파는 시장이었다. 파리의 럭셔리 호텔들은 주로 파리 8구역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를 벗어난 지역을 사들여 ‘도박 아니냐’는 평가도 받았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당시 “관광객은 목적지만큼 그곳에서의 경험을 중요시 여긴다”며 “황금 삼각지대를 벗어나더라도 럭셔리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했다. 20년이 지난 뒤 그 말은 현실이 됐다. 요즘 이 지역은 럭셔리 호텔과 백화점이 들어선 새로운 럭셔리 명소가 됐다.
호텔 투숙객들은 몽마르트르의 숨겨진 명소 투어, 파리 보석과 액세서리 세공업 프라이빗 견학 등의 럭셔리 이벤트도 체험할 수 있다. ‘젠틀맨의 날’이라는 이름을 내건 행사에선 남성 고객의 머리를 커트해주는 특급 서비스도 제공한다.슈발블랑 파리의 지하에는 디올 스파가 자리잡고 있다. 파란색 모자이크 타일을 소용돌이 웨이브 무늬로 시공한 수영장이다. 풀장 뒤쪽 벽은 프랑스계 이스라엘 아티스트 오요람이 센강의 물결 모양에 영감을 얻어 만든 비디오와 설치미술 작품으로 꾸몄다. 마치 센강에서 수영하는 듯한 경험을 주기 위해 디자인했다고.
베르사체 : 중동 태양 아래 유럽의 궁전을 짓다 명품 브랜드들이 선보인 호텔들은 화려한 외관 대신 절제된 고급스러움을 택한 경우가 많다. 베르사체는 다른 길을 택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팔라초 베르사체 두바이’는 극강의 화려함을 자랑한다. 2016년 겨울 문을 연 이 호텔은 유럽 궁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콘셉트다. 객실 수는 215개로 야외 수영장만 세 곳을 운영한다. 설계부터 디자인까지 모두 베르사체의 수석디자이너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손길이 닿았다. 객실은 ‘베르사체’의 핵심 컬러인 민트와 블루, 레드 등 강렬한 컬러와 과감한 패턴으로 장식했다. 호텔 로비 등 곳곳에는 메두사 조각과 그림이 걸려 있다. 베르사체라는 브랜드가 “쳐다보는 순간 돌로 변한다”는 신화 속 괴물 메두사에서 영감을 받은 브랜드이기 때문. 보는 순간 전율을 일으킬 만큼 매력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겠다는 브랜드의 포부를 담아 메두사를 상징으로 내세웠고, 호텔 역시 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국내에선 ‘BTS가 다녀간 호텔’로 이름을 알렸다. 베르사체 호텔은 마카오에도 곧 아시아 첫 지점을 낸다.
샤넬 : 카를 라거펠트의 유작, 마카오에 남다호텔이 많은 마카오는 작년 6월 유난히 떠들석했다. ‘샤넬의 아버지’ 카를 라거펠트의 이름을 건 호텔이 문을 열면서다. 이 호텔은 2019년 세상을 떠난 라거펠트가 생전 몰두했던 마지막 프로젝트다. 호텔 입구 간판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자신의 실루엣을 본뜬 로고를 넣을 만큼 호텔에 애정이 깊었다.
그는 호텔의 구석구석 모두 관여했다. 호텔의 콘셉트는 ‘유럽과 중국의 컬래버’. 중화권이 가진 문화적 요소를 유럽풍 호텔 디자인에 입혔다. 객실 271실이 모두 레드, 블랙, 황금색으로 이뤄졌다. 내부의 모든 가구는 중국 전통 양식을 그대로 따랐다. 중국풍 벚꽃 그림이 곳곳에 걸렸고 객실 소품으로 명나라 시기에 만들어진 모자 등이 전시돼 있다.
라거펠트는 로비 벽면에 1000개가 넘는 열쇠를 매달아 놓은 작품을 전시했다. 그가 이 호텔을 만들 때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영감을 받아서다. 입구엔 중국 최고의 도자기 생산지인 징더전에서 제작한 3.5m 높이의 대형 화병이 있다. 화려한 장식과 소품보다 더 화제가 된 공간은 로비에 있는 ‘북 라운지’다. 4000여 권의 책을 읽거나 객실로 빌려갈 수 있는 미니 도서관이다. 이런 특별한 서비스가 생긴 까닭은 책을 사랑했던 라거펠트가 자신의 호텔에 꼭 있어야 할 편의시설로 꼽은 것이 도서관이었기 때문이다. 라거펠트가 파리에 소유하고 있는 서점인 ‘7L’에서 직접 골라온 도서로 서가를 채웠다. 파리에 있는 그의 서재를 그대로 본떠 만들었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