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풍력 수요 폭발한다더니"…'시총 98조→26조' 대폭락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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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해상풍력 시장 점유율 1위※[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덴마크 신재생에너지 기업 오스테드에 '역풍'
심상찮은 해상풍력 발전업계-上2021년 750억달러(약 98조원)에 달한 시가총액이 2년여 만에 200억달러 수준으로 급감했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회사의 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대상'에 편입했다. "경영진 미팅 등을 거쳐 신용등급을 BBB로 한 단계 낮출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전 세계 해상풍력 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하는 덴마크 신재생에너지 기업 오스테드에 불어닥친 '역풍'이다.
1991년 덴마크 해안에 세계 최초의 해상풍력 발전 단지가 건설된 이후 해상풍력 산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에 따르면 발전단지 건설 및 운영 비용은 2010년과 2021년 사이에 60% 감소했다. 이 시기에 초저금리로 인해 대형 발전단지 프로젝트에 투자되는 돈이 늘어났고, 발전 효율을 높이는 터빈 크기도 커졌다. 현재는 11개의 풍력터빈만 있어도 22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상풍력 산업은 아직까지는 태동기라 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해상풍력 발전 용량은 약 70기가와트(GW)로, 이는 전력 총생산량의 0.8%에 불과하다는 점에서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 등은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2050년까지 해상풍력 발전 용량이 2000GW 이상으로 늘어나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전 세계에서 신규 설치된 해상풍력 발전 용량이 연간 평균 3GW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글로벌 해상풍력 수요는 앞으로 더욱 폭발할 수밖에 없다.이 전망대로면 해상풍력 시장의 성장세는 탄탄대로일 것만 같지만, 장밋빛 전망 앞에 놓인 현실의 장벽은 컸다. 에너지 컨설팅기업 우드맥킨지는 "오스테드의 최근 위기는 개별 기업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해상풍력 업계를 강타한 역풍의 조짐은 상반기부터 감지됐다. 올해 6월 오스테드가 "미국 뉴저지 해상풍력 프로젝트에서 받을 수 있는 세액공제의 규모가 예상보다 적을 것 같다"고 보고한 게 시작이었다.
오스테드는 급기야 4개월여 만인 지난 1일 "뉴저지 프로젝트 2개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개 프로젝트에서 대략 40억달러의 손상차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는 오스테드가 앞서 밝힌 추정 손실 규모(23억달러)에서 빠르게 불어난 것이다.
오스테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바로 전날 영국 BP와 노르웨이 에퀴노르도 함께 진행 중인 뉴욕주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관해 경고음을 울렸다. 두 회사가 보고한 손상차손 규모는 각각 5억4000만달러, 3억달러에 이른다. BP 관계자는 "미국 해상풍력 산업이 초기 단계부터 망가졌다"며 "근본적인 재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사추세츠주, 코네티컷주 등 미국 내 다른 지역에서 추진되던 프로젝트들도 속속 취소되거나 중단되고 있다.대서양 건너 유럽 대륙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7월 스웨덴 바텐폴은 영국 북해 프로젝트 중단을 선언했다. 영국에선 9월 정부의 해상풍력 부지 입찰에 단 한 곳의 업체도 참여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독일 지멘스에너지는 지난달 말 "정부가 장기 프로젝트들에 최소 10억유로(약 1조5000억원)의 보증을 서달라"며 긴급 구제 요청을 넣었다.이들 기업이 그간 프로젝트에 들인 지출을 매몰비용으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 추가로 위약금을 물면서까지 사업 포기 선언을 하는 데는 공통된 이유들을 꼽고 있다. △작년부터 치솟은 물가상승률 △이를 잡기 위한 중앙은행들의 긴축(금리 인상) △급증하는 해상풍력 수요 대비 풀리지 않는 공급망 병목 △낮은 고정가격에 장기로 묶인 전력 판매 계약 구조(off-take 혹은 PPA) △허가 절차 지연으로 인한 불확실성 △사업 참여자들의 출혈 경쟁 등이다.(*지멘스에너지의 경우 풍력터빈 기술결함 문제도 있음.)
컨설팅기업 KPMG는 "전 세계 해상풍력 프로젝트는 공급망 전 사슬에 걸친 인플레이션, 긴축 기조에 의한 자금조달 비용 급등, 소매 전력 가격 급등을 우려한 정부의 미온한 대처(전력수급계약상 전력 단가 상향 조정 거부) 등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태양광 설비·부품, 전기자동차 배터리에서처럼 저가 중국산의 공세 우려도 이들 앞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