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옴시티에 '펑펑' 쓴 빈살만…기름값 올려 적자 메우나

유가 하락에 재정적자 커지는 사우디
세출 8% 줄었지만 세입 18% 더 줄어
석유생산 10% 줄였지만 유가도 9% 하락
2026년까지 계속 적자 "재정개혁할 것"

"적자 피하기위해 유가 올릴 것" 관측도
최근 감소한 아시아 원유 수요가 변수
이스라엘 전쟁에 미국발 '증산 훈풍' 꺼져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리야드에서 열린 E스포츠 월드컵 출범식에 참석하고 있다. SPA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 3분기 큰 폭의 재정 적자를 기록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경제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가 계속되는 가운데 유가가 떨어져 세수가 줄어든 결과다. 사우디가 미래투자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석유 추가 감산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분기보다 재정적자 7배 늘어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사우디 재무부는 지난 7~9월 358억리알(약12조8000억원)의 재정 적자를 기록했다고 1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전 분기보다 적자 폭은 7배 가량 늘었다. 세출은 전년 동기 대비 8% 감소한 2585억리알이었지만 세입이 18% 줄며 재정 적자로 이어졌다. 세입 감소에는 유가 하락의 여파가 작용했다. 석유 수출은 1470억리알로 지난해 같은 분기 대비 36% 감소했다. 올해 3분기 두바이유 월 평균 가격은 배럴 당 86.66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 가량 하락했다. 여기에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의 감산 합의에 따라 사우디가 일일 원유 생산량을 1000만 배럴에서 900만배럴로 줄이며 원유 수입은 더 감소했다.

반면 비석유부문 세입은 1115억리알로 전년 동기 대비 53% 증가했다. 사우디는 지난 2016년 석유 중심 경제에서 벗어나 사우디 경제를 다각화하겠다는 '비전2030' 계획을 발표한 이후 이에 대한 투자를 이어나가고 있다. 5000억달러(약 670조원) 규모의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인 '네옴시티'에 더해 에너지, 전기차, 스포츠 산업 등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1일(현지시간) 텍사스주 카네스시 인근에서 해질 무렵 트럭 한 대가 석유 시추시설을 지나가고 있다. AP
사우디는 2026년까지 예산적자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2024년 국내총생산(GDP)의 1.9%, 2025년 1.6%, 2026년 2.3% 규모의 예산 적자를 전망했다. 무함마드 알-자단 사우디 재무부 장관은 "비전 2030에 명시된 목표에 따라 경제다각화 여정에 꾸준히 착수하면서 재정 및 구조 개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우디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석유 부문이 17% 감소하며 전년 동기 대비 4.5% 감소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3년만에 가장 큰 감소폭이다.

"적자 피하려면 유가 100달러까지 올려야"

사우디가 재정 적자를 극복하기 위해 추가 원유 감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지아드 다우드 블룸버그 신흥시장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사우디는 재정 적자를 피하기 위해 배럴 당 100달러에 가까운 유가가 필요하다"라며 "OPEC+의 리더로서 개별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생산량을 제한해 원유 가격을 올리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우디는 지난 7월부터 러시아와 함께 하루 100만배럴 가량 석유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다만 중국 등 동아시아 시장의 원유 수요가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유가를 띄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블룸버그는 전날 트레이더와 정유업체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다음달 사우디 국영석유기업 아람코가 아시아에 판매하는 아랍 경질유 가격이 6개월만에 동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근 아시아 지역 원유 정제 마진이 줄어들면서 원유 화물에 대한 수요가 감소했다는 이유다.
무함마드 빈 살만(왼쪽)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9년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디지털 경제 관련 행사에서 대화하고 있다. AP

증산 '훈풍' 불었지만 이스라엘 전쟁으로 물거품

감산 결정은 사우디가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달려있기도 하다. 사우디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미국의 증산 요청을 거부하고 러시아와 발맞춰 감산을 이어왔다.

이러한 입장은 미국의 '중동 데탕트(대화해)' 정책으로 인해 전환점을 맞았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수교하는 대신 미국이 사우디에 무기를 판매하고 상업용 원자로 건설을 지원하는 방안이 협상 테이블 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며 이러한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7일 사우디가 미국에 증산 의사를 통보했다고 보도했지만 5일 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연말까지 러시아와 사우디가 감산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반박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