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이화그룹 사태로 증권사는 뭇매 맞는데, 한국거래소 책임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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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에서 거래소 잘못 안 따져“한국거래소가 주식 거래를 정지시켰다 곧바로 거래를 다시 허용한 결과 투자 손실이 크게 불어났습니다. 그런데 책임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나요.”
허위 공시 막는 시스템 만들어야
증권부 류은혁 기자
이화전기에 수천만원을 투자했다는 개미 투자자는 최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억울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며 30분 넘게 하소연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화그룹 매매정지 사태를 다룬다고 해서 실시간으로 지켜봤지만 정작 거래소 문제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이번 사건은 거래소가 지난 5월 10일 이화전기에 전·현직 임원 등의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 조회공시를 요구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거래소는 조회공시 요구와 함께 이화전기의 주식 거래를 정지시켰다. 다음날인 11일 이화전기가 회사 대표의 횡령 금액이 약 8억원이라고 공시하자, 거래소는 12일 장 개장과 동시에 거래 정지를 풀었다. 그러자 시장은 이화전기 경영 상황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고, 주가는 곧바로 급등했다. 개미들이 이화그룹 거래 정지가 잠깐 풀린 기간 산 주식 규모만 60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거래소는 같은 날 오후 2시22분께 검찰의 기소 내용과 회사 측 해명 내용이 다르다며 조회공시를 재차 요구하면서 이화전기의 주식 거래를 다시 정지시켰다. 계열사인 이트론과 이아이디 거래도 중단시켰다. 현재 이들 이화그룹 3사는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번 사태는 거래소의 조회공시 제도 허점을 드러냈다. 부실 기업이 조회공시 요구에 불리한 정보를 숨기거나 무성의하게 답변하더라도 거래소는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이화그룹 계열사 거래 정지가 풀렸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라 계열사별 횡령 금액 등을 정리한 문서를 거래소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당초 국회는 이런 문제점에 대한 제도 개선안을 따져볼 계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거래소에 대한 국회 증인은 모두 빠졌다. 대신 이화그룹 계열사 전환사채(CB) 거래와 관련한 불공정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메리츠증권의 최희문 대표만 국회로 불려왔다.
거래소는 이화그룹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지난 6월부터 유관기관들과 ‘조사 정보 공유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고의로 허위 공시를 하는 기업을 걸러내는 등 근본적인 제도 개선안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 제2, 제3의 이화그룹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거래소와 정부, 국회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