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중대 고비' 넘어…美·日 승인이 관건

아시아나 이사회, 화물사업부 매각 결정

대한항공, 시정안 EC에 제출
아시아나에 자금 선지원 결정

화물 매각·알짜 노선 반납에
'합병 후 시너지 감소' 지적도
아시아나항공이 2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화물사업 매각 안건 등을 의결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인천공항 활주로에 있는 두 회사의 항공기. /뉴스1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2일 화물사업부를 분리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2020년부터 추진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속도를 낼 것으로 분석된다. 가장 깐깐한 조건을 요구했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로부터 승인을 받더라도 미국, 일본 당국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과제는 남아 있다.

○이사회, 격론 끝에 매각 결정

서울 반포동 메리어트호텔에서 이날 오전 7시30분 열린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11시까지 격론을 벌였다. 사외이사 가운데 윤창번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의 표가 ‘유효한가’ 여부를 놓고 지난달 30일 임시 이사회에 이어 이날도 장시간 논의가 이어졌다. 아시아나항공은 법무법인 6곳의 자문을 토대로 해당 의결권에 이해 상충의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강혜련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이에 동의하지 않고 중도 퇴장했다. 이사회에 참가한 네 명 중 세 명이 매각에 찬성하면서 오전 11시30분께 이사회를 마쳤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사내이사 1명,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됐다. 아시아나항공의 한 사외이사는 “두 항공사의 합병 당위성과 아시아나항공 자금 사정을 고려해 분리 매각하는 게 맞다는 의견이 우세했다”고 말했다.

한국~유럽 항공 화물노선의 시장 점유율(2022년 기준)은 대한항공 40.6%, 아시아나항공 19.0%로, 양사를 합치면 60%에 육박한다. 이 때문에 화물사업부를 매각하지 않으면 독과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대한항공은 그동안 다양한 경쟁 해소 방안을 제출했지만, EC는 모두 수용하지 않았다.

아시아나항공이 화물사업부를 매각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인수한 기업이 지속적으로 경쟁 구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EC를 설득해야 하는 작업은 남아 있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EC가 화물사업 매각을 강하게 요구한 만큼 이를 수용한 양사의 합병을 승인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대한항공은 이날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끝나자마자 EC에 시정조치 안을 제출했다. 시정조치 안엔 프랑스 파리, 독일 프랑크푸르트,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양사가 중복으로 취항하는 4개 노선을 국내 다른 항공사가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도 담겼다.

EC는 대한항공이 제출한 시정조치 안을 접수하면 바로 홈페이지를 통해 사실을 알린 뒤 심사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심사는 40일 안팎이 걸리는데, 협의에 따라 당겨질 수도 있다. 대한항공은 늦어도 내년 1월 말까지는 EC 승인을 받기 위해 설득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합병 심사가 완료되면 회사 측은 내년 상반기께 통합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유럽 넘으면 美·日 승인받아야

EC에 이어선 미국, 일본 경쟁 당국의 승인 절차가 남아 있다. 두 항공사가 취항하는 14개국 가운데 11개국 경쟁 당국은 이미 합병을 승인했다. 미국 노선은 유럽과 달리 정부의 허가 없이 신고만으로 취항이 가능한 ‘오픈 스카이’다.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EC를 충족하면 미 당국의 심사를 통과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일본 노선은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취항이 많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해도 독과점 우려는 크지 않다.다만 이들 경쟁 당국의 요구에 따라선 대한항공이 노선을 추가로 경쟁사에 넘길 가능성도 있다. 앞서서도 유럽, 중국의 황금노선을 반납하면서 ‘메가 캐리어(초대형 항공사)’로서 시너지가 줄어들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대한항공은 이사회 결정에 우선 안도하는 분위기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사활을 걸고 추진했던 합병 절차가 마무리되면 경영권 안정화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조건으로 8000억원 규모의 한진칼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10.58%를 보유하고 있다.

김재후/강미선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