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의 시인'이 그려낸 광대한 시공간…곽효환 새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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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시집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말도/ 먹먹한 슬픔과 울음으로 삼키는 잠들지 못하는 밤 / 열차는 먼 곳으로 끝없이 흘러가고 / 광막한 시베리아 벌판에 붉은빛이 든다. "(곽효환 시 '시베리아 횡단열차 3'에서)
시인 곽효환에게 있어 북방(北方)은 특히 의미가 큰 공간이다.
'지도에 없는 집'(2010)에서부터 꾸준히 이어져 온 시원(始原)과 궁극을 찾으려는 시인의 북방 여정은 그의 다섯 번째 시집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에서도 계속된다.
시인은 연해주, 북만주 등 북방을 여행하며 쓴 시들에서 북방이 가진 광대한 시원의 이미지를 독자들의 마음에 서늘하게 새겨냈다. "길고 혹독한 겨울과 질척질척한 짧은 여름을 / 수없이 건너가고 건너온 뭇사람들의 / 엇갈리고 뒤틀리고 사나운 그 밤도 / 섬섬히 반짝이는 별들만이 희망이었으리라."(시 '시베리아 횡단열차 4'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 객실에 앉아 시인은 북방의 산과 들에 깃든 민초의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백석·윤동주·이용악 등 북방에 고향을 둔 시인들, 그리고 시베리아에서 활동했던 여성 혁명가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까지 역사 속 인물들도 불러낸다.
"가랑나무 우거진 아늑하고 커다란 마을 / 교회당 옆 큰 기와집 윤씨네 큰아들은 /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린 햇빛을 보며 / 첨탑 끝에 매달린 시대를 괴로워했을 텐데"(시 '중국조선족애국시인 윤동주'에서)
나아가 시인은 북방의 시공간을 여전히 떠돌고 있을 것 같은 "그리운 무명의 사람들"의 이름도 하나씩 호명한다. 강제이주 정책으로 횡단 열차를 타야 했던 고려인들, 흐르는 강 위에서 평생을 흘려보낸 뱃사람들까지, 막연했던 북방의 과거는 시인이 현장에서 길어 올린 시어들에 실려 구체적이고 생생한 얼굴이 되어 다가온다.
시인의 별명이 '북방의 시인'이라는 걸 새삼 일깨워주는 시집이다.
그러나 언제나 여행지에만 머물 수는 없는 노릇. 한국문학번역원장으로 재직 중인 '생활인'이기도 한 그는 근대 북방에 가닿았던 시선을 지금 여기에도 드리운다. "흐르는 것들은 모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 가슴 속 깊이 고인 슬픔의 물꼬를 열어 / 조금씩 떠나보내는 실개천 같은 것인가 봅니다 "(시 '청계천'에서)
동시대의 길을 찬찬히 걸으며 그 위에 선 사람과 장소를 더듬는 시선은 따뜻하다.
함께 울어주고 말없이 보듬어주는 게 시인의 숙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냥 곁에 앉아 그와 함께 울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끝없이 흐르는 혹은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의 등을 쓸어주며 작은 온기를 흘려보내고 두 팔을 벌려 너덜너덜해졌을 그의 마음을 보듬어주어야 할 것 같다"(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에서)
바람과 별이 가득한 북방과 사람들이 복작거리며 사는 서울 한복판까지 두루 훑은 시인의 다음 시선이 어디에, 누구에게 닿을지 궁금해진다. 문학과지성사. 190쪽.
/연합뉴스
시인 곽효환에게 있어 북방(北方)은 특히 의미가 큰 공간이다.
'지도에 없는 집'(2010)에서부터 꾸준히 이어져 온 시원(始原)과 궁극을 찾으려는 시인의 북방 여정은 그의 다섯 번째 시집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에서도 계속된다.
시인은 연해주, 북만주 등 북방을 여행하며 쓴 시들에서 북방이 가진 광대한 시원의 이미지를 독자들의 마음에 서늘하게 새겨냈다. "길고 혹독한 겨울과 질척질척한 짧은 여름을 / 수없이 건너가고 건너온 뭇사람들의 / 엇갈리고 뒤틀리고 사나운 그 밤도 / 섬섬히 반짝이는 별들만이 희망이었으리라."(시 '시베리아 횡단열차 4'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 객실에 앉아 시인은 북방의 산과 들에 깃든 민초의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백석·윤동주·이용악 등 북방에 고향을 둔 시인들, 그리고 시베리아에서 활동했던 여성 혁명가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까지 역사 속 인물들도 불러낸다.
"가랑나무 우거진 아늑하고 커다란 마을 / 교회당 옆 큰 기와집 윤씨네 큰아들은 /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린 햇빛을 보며 / 첨탑 끝에 매달린 시대를 괴로워했을 텐데"(시 '중국조선족애국시인 윤동주'에서)
나아가 시인은 북방의 시공간을 여전히 떠돌고 있을 것 같은 "그리운 무명의 사람들"의 이름도 하나씩 호명한다. 강제이주 정책으로 횡단 열차를 타야 했던 고려인들, 흐르는 강 위에서 평생을 흘려보낸 뱃사람들까지, 막연했던 북방의 과거는 시인이 현장에서 길어 올린 시어들에 실려 구체적이고 생생한 얼굴이 되어 다가온다.
시인의 별명이 '북방의 시인'이라는 걸 새삼 일깨워주는 시집이다.
그러나 언제나 여행지에만 머물 수는 없는 노릇. 한국문학번역원장으로 재직 중인 '생활인'이기도 한 그는 근대 북방에 가닿았던 시선을 지금 여기에도 드리운다. "흐르는 것들은 모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 가슴 속 깊이 고인 슬픔의 물꼬를 열어 / 조금씩 떠나보내는 실개천 같은 것인가 봅니다 "(시 '청계천'에서)
동시대의 길을 찬찬히 걸으며 그 위에 선 사람과 장소를 더듬는 시선은 따뜻하다.
함께 울어주고 말없이 보듬어주는 게 시인의 숙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냥 곁에 앉아 그와 함께 울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끝없이 흐르는 혹은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의 등을 쓸어주며 작은 온기를 흘려보내고 두 팔을 벌려 너덜너덜해졌을 그의 마음을 보듬어주어야 할 것 같다"(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에서)
바람과 별이 가득한 북방과 사람들이 복작거리며 사는 서울 한복판까지 두루 훑은 시인의 다음 시선이 어디에, 누구에게 닿을지 궁금해진다. 문학과지성사. 190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