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LL STREET JOURNAL 칼럼서구가 근·현대사에서 패권을 잡은 이유로 사상의 우월성을 꼽는 경우가 있다. 결국 힘은 정당성을 이기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Gerard Baker WSJ 칼럼니스트
독재와 테러는 한동안, 어쩌면 오랫동안 우위에 설 수 있겠지만 자유와 정의를 향한 인간의 열망을 완전히 꺾지는 못한다. 단 정당함을 향한 열망이 독재자의 강압보다 강하긴 하지만 늘 올바름이 무력을 이기는 건 아니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결국 정의가 승리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를 수 있다.돌아보면 역사는 자유와 평화를 향한 곧은 직선과 같은 여정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진보와 후퇴, 빛과 어둠, 문명과 폭정의 시기를 무작위로 거치는 듯 보일 수 있다. 아테네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지 2000년이 지난 뒤인 16세기에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게 됐다. 로마 공화정은 현대적인 의미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공화정의 법률과 제도는 나중에 현대 미국에 영향을 미쳤다. 로마 공화정은 곧 황제 개인의 독재 체제로 바뀌었고 큰 혼란을 낳았다.
예측 어려운 세계
정의와 자유가 결국 승리를 거둔다는 관념은 최근의 역사에만 들어맞는다고 볼 수도 있다. 지금의 세계는 2차 세계대전과 냉전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이 군사적·전략적으로 승리한 결과다. 서방 동맹이 이겼다. 여기서 자유가 궁극적이고 정의롭게 승리를 거둔 건 필연적이었다는 서사가 생겼다. 하지만 역사는 움직이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시간과 우연, 인간의 천재성 또는 어리석음이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약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1941년 소비에트연방(소련)을 침공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유럽은 나치의 ‘천년 제국’ 100주년을 기념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냉전 시대에 미국의 소프트 파워는 서방의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무력뿐 아니라 가치관이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은 틀리지 않았다.하지만 실질적인 힘이 없었다면 결코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속해서 군사력을 확장하고, 전략을 세우고, 반복해 인명을 희생하지 않았다면 서방은 가치관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프트 파워의 한계
지금 세계 정세를 살펴보면서 이런 진실을 상기해야 한다. 냉전 이후 자유와 번영에 대한 위협이 이토록 복합적인 때는 없었다. 이상과 대의가 정당하다는 감동적인 믿음만으로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다.독재 국가들은 세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이란 그리고 변덕스러운 독재자와 파괴적인 무기를 가진 북한이 그 예다. 이들 국가는 서방의 쇠퇴와 분열 등에 주목하고 있다.최근 이란의 대리인인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서 저지른 잔학한 범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싸워 얻어낸 가치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사상과 가치관만으로는 지금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정신적인 가치 자체가 현실에서 얼마나 취약한지 직시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글은 영어로 작성된 WSJ 칼럼 ‘The Enemies of Freedom Are Deadlier Than Ever’를 한국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