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주저하는 연인과 부부들을 위해

아이 낳아 보기 전에는
자녀가 주는 행복감 몰라

현재를 희생하는 출산과 육아
당장은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누군가로부터 받은 생명
이어가는 고귀한 경험

김진원 IT과학부 기자
지난 9월 29일 오전 1시. 태어난 지 12시간가량 된 신생아는 속싸개에 감겨 다리를 버둥거리다가 혼자 ‘낑낑’ 소리를 냈다. 작고 연약한 신음에 얕은 잠에서 깼다. 어둑한 불빛 아래서 아기를 구경했다. 한참 동안.

아기는 배냇저고리가 턱에 닿자 반사적으로 입을 벌렸다. 혀를 내밀며 젖을 빠는 시늉을 했다. ‘어푸’ 하는 신음으로 잠꼬대했다. 입술을 올리며 배냇웃음을 지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인상을 쓸 때도 있었다. 아기는 울음이 짧았다. 그나마도 옆에서 나지막이 말을 걸어주면 금방 그쳤다. 통통한 볼살은 부드러웠다. 세모 모양으로 벌린 입에선 달큰한 분유 잔향이 났다.겪어보기 전엔 몰랐다.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는 기쁨을. 과거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너무 겁을 먹었다. 당장 잃을 것은 명확해 보였다. 배우자의 출산과 휴직은 즉각적인 소득 감소를 의미했다. 살림살이에 양육 비용이 새로 추가돼 씀씀이를 곱절로 줄여야 할 판이었다.

가정과 회사에 각각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됐다. 난 더욱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할 것이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더욱 빡빡해질 시간표는 버겁게 다가왔다. 반면 얻을 수 있다는 행복은 너무 멀어 아득했다. 아직 세상에 나지 않은 존재를 상상하는 것은 낯설었다. 아이를 갖는 기쁨을 어림잡아 봤지만 어떤 상상력을 동원해 봐도 앞으로 수십 년 인생 행로를 크게 바꿀 수도 있을 결정을 하는 것은 비합리적이었다.

주변을 돌아봐도 그랬다. 유튜브를 열면 ‘금쪽이’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 혼자 산다’는 이들은 근심 걱정 없이 자유로워 보였다. 불과 몇 년 전 마음 편히 걷던 번화가 곳곳에는 이제 ‘노키즈존’을 내걸어 놓은 업장이 수두룩했다. 만원 지하철에서 분홍색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 있는 광경은 지난 1년여간 단언컨대 본 적이 없다.

개인이 아기를 낳기 전에 상상하는 이 모든 명확한 상실과 아득한 행복을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의 표현을 빌려 표현하면, 본인을 위한 ‘생존 본능’과 다음 세대를 위한 ‘재생산 본능’의 충돌일 것이다. 그는 먹거리를 찾기 어려워 경쟁이 심한 곳에서는 생존 자체가 힘들어 재생산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맬서스가 관측한 인류 사회는 오랜 역사 속에서 제도와 문화를 통해 두 본능 사이의 균형을 맞춰 발전해 왔다. 한국 사회는 두 본능의 균형이 깨진 것이 명확했다. 서울 기준 0.53명이라는 합계 출산율은 이를 수치화해 보여주고 있다.출산율 추락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말이 붙었다. 안정된 직장이 아니라서, 집값이 비싸서, 독박 육아 때문에, 저녁이 없는 삶이라서, 영어유치원 교육비가 많이 들어서, 0세반 어린이집이 없어서, 아이가 아플 때 급하게 갈 소아청소년과 병원이 문을 닫아서…. 대부분 생존 본능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이런 조건들이 지금보다 좋지 않았던 1960년대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왜 6명에 달했나. 개인의 생존 본능을 지켜주는 제도만 설계해 만든다면 한국 전체 출산율은 다시 올라갈 것인가. 생존 본능의 위협을 제도적으로 제거함과 동시에 이제는 재생산 본능을 일깨울 문화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할 때가 아닌가.

막상 직접 겪어 보니 한국 사회는 아기를 낳기 나쁘지만은 않은 곳이었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지원하는 정책은 곳곳에 마련돼 있었다. 집 근처 민간 어린이집의 0세반 문은 구하고자 두드리니 내년 3월 열릴 예정이다. 오픈런하지 않아도 되는 자그마한 소아청소년과는 가까운 아파트 상가에 두 군데나 자리하고 있었다.물론 이 모든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순탄했다고 하긴 어렵다. 1순위로 보내고 싶었던 국공립 어린이집의 대기 순번은 100번대에 달했다. 아침 9시2분에 도착한 대형 소아청소년과의 당일 진료 접수가 이미 마감돼 허탈하게 돌아선 경험도 있다. 배우자의 경력 단절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이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큰 행복과 기쁨을 밀어낼 정도는 분명 아니었다.

그러니 혹시라도 지금 이 순간 가수 잔나비의 노래 제목처럼 주저하는 연인과 부부가 있다면, 부디 용기를 내 나아가길 응원한다. 탯줄을 자르고, 태지를 밀어내고, 연약한 10개의 손·발가락을 확인한 뒤, 포대기에 싸 품에 안는, 글자 그대로 행복에 겨워 눈물이 앞을 가리는 인생 최고의 순간을 경험하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