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친구와 바람을 피웠다…그래도 결혼은 계속됐다

르네 마그리트(1898~1967)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좌절된 욕망
초현실적 그림에 담아내다
연인들 1(1928).
“친구, 여기 런던의 상황은 복잡해. 전시 때문에 일이 너무 많아. 내 처지가 어렵다는 걸 아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자네가 잘 설명해 줬으면 하네. 내 아내를 잘 돌봐주게.”

화가는 ‘베프’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바다 건너 벨기에 브뤼셀에 남겨두고 온 아내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녀를 즐겁게 해달라고 부탁한 겁니다. 그만큼 화가는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동화 같은 만남, 전쟁으로 헤어진 후 운명적인 재회, 16년간의 결혼 생활…. 그 오랜 세월 동안 부부는 항상 서로의 버팀목이 돼 현실을 견뎌왔습니다.그래서 더 충격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아내가 꺼낸 첫마디가 “이혼하자”라니. 그것도 내가 편지를 보낸 그 친구 놈과 바람이 났다니…. 오늘은 이 기구한 운명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사랑과 예술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빠지다

골콘다(1953). 남자들은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져 내려오는 것인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인가?
마그리트는 1898년 벨기에의 작은 도시 레신에서 삼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이상적인 가정은 아니었습니다. 사업가인 아버지의 별명은 ‘허풍쟁이’. 말솜씨와 유머 감각이 뛰어났지만, 자기중심적이고 무책임한 데다가 방탕한 성격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습니다. 간혹 사업에 성공해 돈을 많이 벌기도 했지만 금세 돈을 다 날려버리곤 했습니다. 반면 어머니의 성격은 정반대였습니다. 성실하고 신중했지만 지나치게 섬세해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마그리트가 열네 살이던 1912년,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오랫동안 앓았던 우울증 때문이었습니다. 마그리트는 훗날 건조하게 회고했습니다. “1912년, 어머니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강에 몸을 던졌다.” 미친 듯이 웃고 장난치며 놀아주다가도 갑자기 싸늘하게 등을 돌리는 아버지, 가난과 풍족함을 정신없이 오가는 집안 형편, 갑자기 목숨을 끊은 어머니…. 총명하고 감수성 예민한 마그리트에게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마그리트는 어릴 때부터 신비한 것들에 끌렸습니다. 예를 들어 마그리트는 나이가 들어서도 “어린 시절 침대 옆에 있던 보물상자처럼 생긴 상자가 기억난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겨 있던, 그래서 낯설고 불안한 감정을 자아내면서도 어딘가 매력적인 상자였다.” 또 마그리트는 어릴 적 열기구가 집 지붕에 추락했던 사건에 대해서도 종종 얘기했습니다. 갑자기 지붕 위로 떨어진 거대한 풍선, 그리고 귀덮개가 달린 헬멧을 쓰고 기구를 회수하려는 기구 조종사들은 어린 소년에게 하늘과 구름, 잘 이해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매혹을 심어줬습니다.
대가족(1963). 비둘기의 몸이 구름으로 변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구름이 새가 되고 있는 걸까?
마그리트가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도 일종의 신비로운 체험이 계기였습니다. 어린 시절 장난꾸러기였던 그는 동네 친구와 공동묘지와 지하 납골당에서 자주 뛰어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납골당에서 놀다가 지상으로 올라온 마그리트는 햇살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훗날 벨기에 화가 레온 휘긴스로 밝혀짐)를 목격하게 됩니다.납골당이라는 죽음의 공간, 그 위로 올라오자 눈 앞에 펼쳐진 대낮의 풍경과 이를 캔버스에 그리는 화가, 캔버스 속 마법처럼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 각각 떼어놓고 보면 그렇게 특별한 장면들이 아니지만, 이 장면은 어린 마그리트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평범한 것들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얽혀 신비로움을 만들어내고, 마침내 마음을 흔드는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도 이런 경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조건(1933).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그림인가? 마그리트는 이렇게 답했다. "이 이미지 뒤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림의 물감 뒤에는 캔버스가 있습니다. 캔버스 뒤에는 벽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항상 다른 눈에 보이는 것을 숨기지만, 눈에 보이는 이미지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습니다." 이 그림 속 세상은 그저 그림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마그리트가 천부적인 화가의 재능을 타고났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왕립아카데미 드로잉 과목에서 1등을 하는 등 금세 두각을 보였습니다. 전체적인 성적은 그렇게 좋지 않았지만, 철학과 인문학 공부는 열심히 했습니다. 세상의 신비를 파헤치기 위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이를 그림으로 그려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운명적인 사랑, 그리고 초현실주의

빛의 제국(1950). 밤의 주택가 모습과 낮의 하늘이 공존한다.
1913년 8월, 열다섯 살이던 마그리트는 박람회장의 회전목마 앞에서 운명의 사랑을 만났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조르제트 베르제. “같이 한 바퀴 타실까요?” 마그리트는 물었고, 조르제트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게 둘의 풋풋한 사랑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었을까요, 이듬해 독일군의 벨기에 침공으로 둘은 헤어지고 맙니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생사조차 모른 채 떨어져 지내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각자 브뤼셀의 한 식물원을 걷던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친 겁니다. 그날 저녁 마그리트는 장미 두 송이를 종이에 그려 조르제트에게 가져다줬습니다. 그날 이후 둘은 매일 저녁 만나 함께 걸었습니다.

2년 뒤 두 사람은 결혼했습니다. 모아놓은 돈도 물려받을 돈도 없었던 까닭에 마그리트는 벽지를 디자인하고 광고용 포스터를 만드는 등 닥치는 대로 일해 조르제트를 먹여 살렸습니다. 하지만 조르제트와 함께 하는 생활은 행복했습니다. 게다가 이런 상업 미술 경험은 마그리트에게 새로운 창조력을 불어넣고 대중의 눈을 확 잡아끄는 능력을 키워줬습니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고급 자동차, 모피 코트, 담배 등 다양한 회사의 광고에 쓰였습니다.

마그리트가 본격적으로 초현실주의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이 무렵입니다. 우연히 초현실주의의 선구자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품을 보게 된 것이 계기였습니다. “그건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내 눈은 처음으로 사유(思惟)를 봤다.” 낯익은 존재들을 재구성해 보는 이의 허를 찌르고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것. 이를 통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을 생각에 빠지도록 만들고, 이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그리트가 하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길 잃은 기수(1926).
‘암살자의 위협’과 ‘길 잃은 기수’ 등 마그리트가 그린 초현실주의 초기작들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표현력과 깊은 철학을 담은 덕분에 화가들과 비평가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초현실주의야말로 마그리트가 가야 할 길이었고, 그 자신도 ‘뼛속까지 초현실주의자’였습니다.

하지만 초현실주의에 대한 사랑조차도 아내에 대한 사랑에는 못 미쳤습니다. 초현실주의자 모임의 대표 격인 앙드레 브르통이 모임에서 조르제트의 십자가 목걸이에 대해 “낡은 질서와 부르주아의 상징이니 당장 치워 달라”고 모욕적으로 요구하자 마그리트는 조르제트의 손을 잡고 나와버렸고, 초현실주의자 모임에서도 탈퇴했습니다. 마그리트는 말했습니다.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배반하는 남자는 얼마나 행복한가!”

잘못된 만남

가짜 거울(1928).
초현실주의자 모임에서 빠졌지만 마그리트는 점차 명성을 얻었습니다. 후원자와 고정 팬층이 생기면서 경제적 여유가 따라왔고, 상업적인 디자인을 그만두고 예술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습니다. 이로 인한 성과 중 하나가 1938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전시였습니다.

런던에서 마그리트는 매력적인 여성 초현실주의 예술가 쉴라 레그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녀는 젊고 아름다웠으며 지적이었습니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을 비롯한 수많은 남자가 그녀에게 반했습니다. 마그리트도 그녀에게 매력을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친구에게 “그녀는 이상적인 여성이야. 조르제트가 없었으면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을 정도”라고 털어놨으니까요. 이 때문에 마그리트는 오랫동안 그녀와 불륜 관계였다는 오해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황을 분석한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두 사람은 아무 관계가 아니었고, 마그리트의 표현은 단순히 그녀의 예술에 대한 칭찬이었다고 합니다.
전이(1960).
정말로 불륜을 저지른 건 그사이 벨기에에 머무르던 조르제트였습니다. 상대방은 마그리트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시인 폴 콜리넷. 조르제트는 콜리넷과 함께하고 싶다며 마그리트에게 이혼까지 요청했습니다. “아내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콜리넷을 믿었던 만큼 마그리트의 배신감은 극심했습니다.

그런데도 마그리트는 아내의 이혼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운명의 사랑이었던 아내를 이렇게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아내를 용서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가정으로 돌아오라고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설득 끝에 아내는 마그리트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마그리트가 원했던 대로 둘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했습니다.
심금(1960). 아내에게 선물한 그림이다. 솜사탕처럼 달콤하게 결혼 생활을 기념하는 건배의 의미로도, 공허한 빈 잔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겪으며 둘 사이의 소중하고 애틋한 뭔가는 영영 사라져버렸습니다. 늘 그림의 모델이 돼주던 조르제트는 더는 마그리트를 위해 포즈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마그리트는 조르제트의 그림을 그렸지만, 이는 기억 속에 있는 조르제트의 모습이었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려고 하는 불가능한 시도.” 마그리트는 언젠가 조르제트를 그린 자기 작품에 대해 씁쓸하게 말했습니다. 그 말대로, 둘 사이의 불꽃은 사라졌습니다.
향수(1940). 사자와 날개를 접은 남자 모두 이 다리에 있을 아무런 이유나 개연성이 없다.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진정한 삶이란 언제나 지금과 다른,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임을, 그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아는 사람들의 우울을 구현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미지의 배반(1929). 미술사 교과서에 꼭 나오는 작품이다.
이건 마그리트의 유명한 작품, ‘금지된 재현’입니다. 담배 파이프가 그려져 있지요. 하지만 밑에 써 있는 문장은 이렇습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를 그린 그림일 뿐이다. 이런 뜻입니다. 단순한 말장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숨겨진 뜻은 좀 더 심오합니다. 파이프를 아무리 잘 그려도, 그건 파이프 그림일 뿐 파이프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말은 말이고 그림은 그림일 뿐, 아무리 잘 쓰고 그려봤자 대상의 본질 자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겁니다.

한발 더 나아가 볼까요. 어쩌면 우리는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표현하려 해도 결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현실에 비하면 표현과 이해는 언제나 무기력합니다. 먼 나라의 전쟁이 어떻고, 백 년 뒤의 미래가 저떻고 아는 척 떠들면서도 바로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한 치 깊이 마음도 모르는 것처럼. 마그리트가 평생을 사랑한 아내와 친한 친구의 마음조차 들여다볼 수 없었던 것처럼.
대화의 기술(1950). 미셸 푸코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태초의 풍경 속에 아주 작은 두 인물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돌들의 침묵, 돌벽의 침묵이 알아들을 수 없는 웅얼거리는 대화를 곧바로 집어삼킨다. 이 거대한 돌덩어리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이 두 무언의 인물들 위로 우뚝 솟아 있다..."
마그리트는 생전 “나는 그림을 통해 내 생각을 눈으로 보여준다(회화를 이용해 사유를 가시화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표현이라는 것이 결코 본질에 닿을 수 없는 허상이고 헛수고라면, 그림을 그리는 일도 마찬가지로 아무 소용 없는 짓이 됩니다.

그런데도 마그리트는 1967년 69세의 나이로 췌장암에 걸려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가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떠난 유작은 대표 연작인 ‘빛의 제국’이었습니다. “나는 서로 다른 개념들, 즉 밤의 풍경과 낮의 하늘을 재현했다. 이 풍경은 우리에게 밤에 대해, 낮의 하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낮과 밤이 이렇게 동시에 존재한다는 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홀리게 한다. 나는 이런 힘을 시(詩)라고 부른다.”
빛의 제국(미완성). 독일 수집가에게 의뢰받아 제작 중이던 작품으로, 마그리트는 평생에 걸쳐 비슷한 이미지들을 여러 번 그렸다. 이 작품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미완성의 빛의 제국 속, 집 안에서 창 밖으로 흘러나오는 빛은 영원히 그 신비로운 비밀을 간직하게 됐다.
그림 속에서 밤과 낮이 공존하듯, 본질에 닿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간의 모순. 어떻게 보면 그 모순이야말로 삶과 예술의 본질이자 신비와 숭고의 원천이라고, 마그리트는 말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깔끔한 솜씨로 그려낸 그의 초현실적 그림이 낯설고 비인간적이고 때로는 불편한 감정마저 불러일으키는데도, 보는 이들을 강하게 끌어당기며 현대 문화의 중요한 원천이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김연수의 소설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실린 작가의 말 한 토막을 옮기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이번 기사는 Magritte: A Life(Alex Danchev 지음)과 르네 마그리트(마르셀 파케 지음, 김영선 옮김, 마로니에북스-TASCHEN)를 중심으로 Magritte (Suzi Gablik 지음) Keeping an Eye Open: Essays on Art (Julian Barnes 지음), 뉴욕 MoMA 작품설명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