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기업가] 금융 투자의 새로운 길을 만들다 미래에셋금융그룹 창업자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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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서 배운 돈의 무게
박현주 회장은 1958년 전라남도 광산 군(지금은 광주시)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은 농사를 지었어요. 당시에는 고등학 교에 가려면 입학시험을 봤는데 합격 발표가 난 날,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요. 고작 열다섯의 나이에 받은 충격은 너무나 컸어요. 방황하는 그를 잡아 준 것은 책이었어요. 그는 위인전을 비롯해 수많은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그의 어머니도 훌륭한 스승이었어요. 특히 돈에서만큼은 자식 교육이 엄격했죠. 어머니는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아들에게 1년에 딱 한 번만 생활비를 보냈대요. 돈을 계획적으로 쓰고 관리하는 습관을 가르치기 위한 의도였어요. 전셋집을 구할 때도 대학생 아들이 직접 임대 계약을 하도록 했어요. 훗날 박 회장은 “처음엔 암담했지만 계약하고 나서 부동산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주식에 눈뜬 청년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던 박 회장은 2학년 때부터 주식 투자를 했어요.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소문만 믿고 투자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하지만 대학생 박현주는 기업의 실적과 성장성을 꼼꼼히 분석하려고 노력했죠. 어느새 그는 주식 투자를 꽤 잘하는 학생으로 입소문이 났어요. 28세에 증권 회사에 입사한 이후로는 더 열심히 일했어요. 32세에 최연소 지점장이 됐고, 입사 5년 만에 임원이 될 정도로 승승장구했어요.하지만 그는 자기 회사를 경영하고 싶었어요. 1997년, 39세에 미래에셋벤처 캐피탈과 미래에셋투자자문을 설립했어요. 벤처캐피탈이란 작지만 유망한 회사를 발굴해서 돈을 투자한 뒤, 회사가 성장하면 이익을 얻는 투자 회사예요. 미래에셋투자자문은 다른 사람들의 투자에 조언을 해 주거나 투자금을 받아서 대신 투자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회사였죠. 이 회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자산운용사였습니다. 이후 박 회장은 증권사도 세우고 보험사도 인수했어요.
박 회장은 여러 사람의 투자금을 모아서 거대한 돈(펀드)으로 만든 뒤 이것을 펀드매니저(투자 전문가)를 통해 유망한 기업에 투자하는 사업을 했어요. 투자자 들은 마치 저축하듯이 일정한 금액을 쌓아 가며 투자할 수 있었어요. 국내 최초의 적립식 펀드입니다. 1990년대 이후엔 급성장하는 중국과 인도 시장에 주목했 어요. 금융 위기가 닥쳤을 땐 저렴해진 자산을 사들여 투자 이익을 늘렸어요. 미국이나 중국의 대형 부동산을 사들이기도 했어요. 모두 국내 금융업계에선 최초의 일이었습니다.
사람과 미래에 투자
박현주 회장은 금융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인재라고 강조하고 있어요. 2000년 개인 돈 75억 원을 내 미래에셋박현주재 단을 설립했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재단을 통해 장학금을 받고, 해외를 경험하 거나 경제 교육을 받았어요. 금융 전문 가를 키우기 위해 해외에서 공부시켜 주는 ‘글로벌 AMP(선진 관리 프로그램)’도 만들었죠. 그는 늘 “최고의 부자가 되기보다는 최고의 기부자가 되는 게 꿈”이 라고 강조합니다.현재 박 회장은 미래에셋 홍콩의 회장을 맡아 글로벌 투자 전략을 짜는 일에 매진하고 있어요. 한국을 넘어 아시아와 세계 시장을 무대로 투자하기 위해서예요. 그는 많은 사람을 투자의 세계로 안내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금융인입니다.
by 문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