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봇이 서면 작성…'AI 중재시대' 빨라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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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태 ADR 콘퍼런스“인공지능(AI) 등 신기술 발전으로 법률가들도 미지의 영역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국제중재 시장 또한 새 시대에 적응해야 합니다.”
저연차 업무 인공지능이 대신
베테랑 변호사 수요 크게 늘어
"아직은 자기 논리 설명 못해"
일각선 도입 시기상조 주장도
싱가포르, 중재시장 존재감 커져
지난 1일 서울 삼성동 소노펠리체 컨벤션에서 열린 ‘제12회 아시아·태평양 대체적 분쟁 해결(ADR) 콘퍼런스’에 참가한 중재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대전환기에 대비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ADR이란 소송을 거치지 않고 중재나 조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말한다.법무부, 대한상사중재원,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가 주최한 이번 콘퍼런스는 ‘새로운 세계, 지도는 없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3년 만에 완전한 대면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세계 주요국 중재기관의 전문가 200여 명이 참석했다.
거세지는 신기술 열풍
이날 전문가들은 “빠르게 성장하는 AI 기술이 곧 중재를 포함한 세계 법률시장을 뒤흔들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면 작성과 데이터 분석에 AI를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만큼 판도 변화가 뒤따를 것이란 의견이 주를 이뤘다. 싱가포르 로펌 웡파트너십의 챈혹켕 변호사는 토론 현장에서 AI 챗봇이 직접 서면을 작성하는 과정을 보여줬다.미국 로펌 퀸이매뉴얼어콰트앤드설리번의 존 리 변호사는 “변호사 업무를 기계가 대체하면 특히 저연차 변호사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며 “이와 반대로 법률 검토를 담당할 베테랑 변호사 수요가 증가하는 병목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중재 실무에 AI를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나왔다. 매튜 크리스텐슨 김앤장 선임외국변호사는 “현재 AI는 자신의 논리를 설명할 수 없다”며 “중재 판정문은 한쪽이 패소한 이유를 납득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결론에 도달하는 논리가 없다면 사법적 정의에 어긋날 수 있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시장의 급성장이 국제중재 시장에 변화를 미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다국적 로펌인 허버트스미스프리힐즈의 마이크 맥클러 변호사는 “영국에서는 소비자 보호법이 중재 대상이 아니다 보니 암호화폐 중개인과 플랫폼 사이에서 벌어진 중재에 관한 판정 집행 자체가 무산되기도 했다”며 “암호화폐 관련 사건은 중재 절차에 앞서 국가별 법률 현황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로펌 프레시필즈브룩하우스데링거의 존 충 변호사는 “중국처럼 암호화폐를 법정 화폐로 인정하지 않는 곳이 중재지인 경우에는 당사자가 보유한 암호화폐가 불법 자산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중재 유치전 더 치열해질 듯
국제중재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세계 각국 중재기관 간 경쟁도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지난해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등 세계 주요 15개 중재기관에 접수된 중재 사건은 7554건으로 2013년(4960건) 후 9년간 52.3% 늘었다.이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이 장악해온 국제중재 시장에 싱가포르가 새로운 경쟁자로 급부상했다. 최근 중국의 홍콩 통제로 더욱 주목받는 분위기다. 케빈 내시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 사무총장은 “1991년만 해도 SIAC가 맡은 분쟁은 두 건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00여 건에 달한다”며 “온라인 접근성을 더 높여 중재 사건 유치를 늘릴 것”이라고 강조했다.마이클 리 전 미국중재센터(AAA) 부대표는 “뉴욕은 10년 전부터 싱가포르에 밀리고 있다”며 “미국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최근 빠르게 증가하는 남미 중재 사건을 적극 유치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박시온/민경진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