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 아우성에 공매도 전격 금지…멀어지는 韓 자본시장 선진화

내년 상반기까지 중단

메가서울 이어 총선 표심 잡기
고위당정회의 때도 안건 올라

MSCI 선진국지수 편입엔 악재
"정치 논리에 韓증시 신뢰 잃어"

공매도 제도개선 후 재개 검
금융위원회는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6일부터 내년 6월 말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다고 5일 발표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금융감독당국은 5일 공매도 한시적 전면 금지를 전격 발표하면서 ‘시장 신뢰 회복’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실상은 총선을 앞둔 여권의 압박에 그간 기조를 뒤집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 금융위원회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자본시장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선 공매도를 전면 재개해 정상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달 들어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국내 증시 부진에 개인투자자의 불만이 커지자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여권이 공매도 제한 조치를 강하게 밀어붙인 영향을 받은 결과다.

‘속도전’ 밀어붙인 여권

금융당국과 여당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대통령실을 비롯한 당정은 비공개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공매도 전면 중단안을 논의했다. 원래는 공개 형식으로 통신비 부담 완화 방안 등을 논의하려 했으나 국민의힘이 공매도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계획이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당정협의회 직후 금융위는 임시회의를 당일 소집해 공매도 전면 중단 결정을 내렸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중순부터 공매도 전면 중단을 주요 의제로 밀었다. 공매도 제도를 개선해달라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동의자 5만 명을 넘긴 영향이다. 지난 3일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간사인 송언석 의원이 같은 당 장동혁 의원에게 ‘김포 다음 공매도로 포커싱(집중)하려고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불법 무차입 거래 등 시장에 불공정행위가 만연해 있다”며 “지금은 국소 치료가 아니라 마취 수술이 필요한 시기여서 공매도 한시 중단을 추진한 것”이라고 했다.

“‘선진 증시’ 멀어졌다”

이번 조치는 자본시장 선진화 면에선 ‘뒷걸음질’이라는 게 금융투자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거시경제 변수와는 거리가 먼 이유를 들어 공매도를 갑자기 금지해서다. 글로벌 시장과 동떨어진 단독 행동이 해외 투자자의 국내 시장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정이 앞서 추진한 MSCI 선진국지수 편입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공매도 규제는 자본시장 선진성을 따질 때 국제기구와 기관 등이 눈여겨보는 지표 중 하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이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공매도를 전면 제한한 뒤 이듬해 초까지 제한을 풀지 않자 ‘한국 경제 상황을 볼 때 공매도 재개가 가능한 시점’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당국이 검토하겠다는 제도 개선안도 선진 증시와는 거리가 멀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기관의 대차와 개인의 대주는 차입 조건 등이 완벽하게 동일하지 않다”며 “근본적인 대안을 찾겠다”고 했다. 하지만 신용도가 높은 기관과 일반 개미투자자에게 같은 조건을 적용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 증권가의 지적이다.

더 꼬인 공매도 정상화

증권업계에선 공매도 전면 중단이 내년 상반기를 넘어 기약 없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조치는 내년 하반기부터 자동 해제되는 것이 아니다. 금융위와 국민의힘 등은 내년 상반기까지 제도 개선 실행 현황을 살펴 그때 가서 재개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이상하게 하고 있다는 얘기가 안 나올 정도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충분한 개선 후 재개’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앞서 공매도 완전 전산화,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불법 공매도 세력에 대한 신속한 과징금 부과와 이익 환수 등을 요구했다. 대부분 현실적으로 완전 시행되기 어려운 조치다. 국내 사무소 및 지사뿐만 아니라 미국 홍콩 등 글로벌 IB의 본사까지 거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수 있어서다. 공매도 전면 정상화가 더 멀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