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혼란에도…사우디·러시아, 원유 감산 기조 연말까지 유지

사우디, 네옴시티 비용 충당하려 감산 유지 전망
러시아는 전쟁 비용 조달
사진=AP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연말까지 원유 감산 기조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러시아도 추가 감산 정책을 고수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으로 인해 중동 지역 내 혼란이 가중되면서 국제 원유 시장의 불확실성은 더 커질 전망이다.

5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연말까지 원유 감산과 공급 감축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사우디 에너지부는 올해 말까지 하루 100만 배럴씩의 자발적 감산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사우디가 유가 하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원유 감산에 나선 건 지난 7월부터다. 지난 9월 사우디는 연말까지 감산을 지속한다고 밝힌 바 있으며 이번에 기존 방침을 재확인한 셈이다.

러시아도 하루 30만 배럴 감산을 통해 원유 공급량을 줄이는 방침을 유지한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이날 "올해 9∼10월 발효한 원유 및 석유 제품 공급 감축 결정을 올해 12월 말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유 시장 내 불확실성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이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이란으로 확전될 것이란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감산 정책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공급이 더디게 증가할 것이란 설명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감산으로 인한 유가 상승이 세계 각국의 인플레이션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시장의 우려에도 양국은 감산 기조를 장기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인 '네옴 시티'를 추진하기 위해 대규모 예산이 필요한 상황이다. 영국 프로축구 리그인 프리미어리그, 골프 대회 등 굵직한 스포츠 대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여기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려면 최소 배럴당 100달러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3일 미국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12월물)은 전일 대비 2.36% 하락한 배럴당 80.5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실제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 장관은 지난달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콘퍼런스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수출 전략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는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원유 가격을 올려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는 최근 악화하고 있다. 사우디 통계청은 전날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기 대비 4.5%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2020년 이후 최대폭으로 감소했다. 비석유 부문 GDP 증가율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3.6% 증가했지만, 석유 부문이 17.3% 줄었다. 자발적 감산의 여파로 풀이된다.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마켓 인텔리전스(GMI)의 중동·북아프리카 경제 분석 책임자 랠프 위거트는 "사우디가 세계 경기둔화에 따른 원유 시장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감산에 나섰다"며 "사우디가 감산을 2025년까지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 기조를 이어가도 경제 반등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세계 경제가 둔화하기 시작하면서 원유 수요가 감소할 것이란 설명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사우디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지난해의 9분의 1 수준으로 축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IMF는 지난해 8.7% 폭등했던 사우디 GDP 증가율은 올해 0.8%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